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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Apr 05. 2025

킹덤 오브 헤븐 | Kingdom of Heaven 3

겁도 없이 써보는 영화 리뷰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는 과정은 결코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지휘부는 끝없는 권력 다툼과 영지 배분 문제로 으르렁거렸고, 병사들은 땅따먹기로 밍기적거리는 지휘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 냈습니다. 여기다 이권을 둘러싼 중간 상인들의 농간과 민중 십자군의 파행까지 더해지자, 십자군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애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성전으로 포장하는 것은 그 전쟁에 휘말려 희생된 사람들 모두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애당초 어느 쪽 신이든 자기 이름 팔아 벌이는 전쟁을 기꺼워하실리 없습니다.



Hospitaller & Templar

구호 슬롯과 성당 슬롯

슬롯둘이 싸우면 둘 다 망할 각인데..

딱히 우리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개념이 없다 보니 Hospitaller의 번역은 구호 기사단, 병원 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 구호사 등등 여러 가지입니다. Templar 역시 사정은 비슷해서 성당 기사단, 성전 기사단, 성전 기사 수도회, 성전사, 템플러 등 번역이 제각각이구요. 이슬람과 싸우는 기사단이라는 큰 틀에 묶여 있고, 일당백의 용사들이라거나, 잘 안 씻는다거나, 결혼을 못한다거나 하는 공통점도 많았지만, 사실 구호 슬롯과 성당 슬롯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될 즈음..

슬롯영화처럼 두 슬롯은 내전 직전까지 갔습니다.

구호 슬롯은 비둘기파인 레몽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대상인들에게 세금 떼서 먹고사는 나라입니다. 전쟁이 나면 길이 막히고, 길이 막히면 먹고살기 힘듭니다. 게다가 땅은 좁지 인구는 적지 주변에는 황무지뿐입니다. 십자군이 몽기사르에서 대승을 거뒀다고 하지만 그건 어쩌다 기습이 성공한 것이고, 예루살렘 군도 1/3이나 사상자가 났습니다. 이런 상황에 함부로 칼 뽑으면 예루살렘이 먼저 망한다…라는 게 구호 슬롯의 입장입니다.


반면 성당 슬롯은 매파인 기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 군대는 숫자만 많을 뿐, 슬롯이 돌격하기만 하면 늘 양 떼처럼 뿔뿔이 흩어집니다. 몽기사르에서 거둔 대승이 증명하듯 십자군에게는 홀리 버프가 디폴트로 깔려 있잖아요. 무엇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시니, 하루라도 빨리 적을 무찔러야 하는데, 잔뜩 쫀 레몽은 도무지 싸울 생각을 안 하니 답답한 노릇입니다...라는 입장이구요.


그래도 보두앵 4세가 왕이었을 때는 두 기사단이 티격대는 정도였지만, 기의 쿠데타로 갈등이 심해지자 구호 슬롯과 성당 슬롯은 칼 뽑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Tiberias (Raymond III of Tripoli)

티베리아스 = 레몽 3세

슬롯티베리아스 = 레몽3세 = 망했어요.

가끔, 어떻게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1187년 5월에 레몽에게 일어난 일이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의 왕 보두앵 4세는 “기는 왕이 될 수 없다.”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습니다. 보두앵 4세는 레몽을 섭정으로 임명해 아직 9살인 보두앵 5세를 보좌하도록 했지만, 기는 레몽이 잠시 왕궁을 비운 틈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대관식을 치러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레몽의 현재 지위가 섭정이라는 약점을 찌른 것이죠. 기는 참.. 손대는 모든 일을 망치는 놈이 이런 쪽으로만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기의 쿠데타를 진압하려고 집결했던 영주들은 기가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자 "분하다! 칵퉤칵퉤"를 외치며 각자의 영지로 돌아갔습니다. 기에게 학을 뗀 레몽도 이때부터는 아예 예루살렘에 신경을 끊고, 자신의 영지인 트리폴리와 티베리아스 경영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멸망을 향해 한걸음을 더 디뎠습니다.


왕이 된 기의 첫 번째 출정은 눈엣가시 같던 레몽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레몽은 트리폴리의 영주, 레몽의 아내는 티베리아스의 영주였습니다. 기가 티베리아스를 치러 진군하자, 깜딱 놀란 발리앙은 필사적으로 기를 막아섰습니다. '살라딘 앞에 두고 내전을 벌이면, 예루살렘은 얄짤없이 멸망한다.'는 발리앙의 설득에 퍼뜩 정신이 든 기는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무쓸모한 삽질로 기와 레몽은 완전히 척을 졌고, 살라딘은 슬슬 예루살렘을 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The Battle of Cresson

크레송 전투 | 레몽에게는 재앙입니다.


1187년 5월. 살라딘은 레몽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냅니다. 자신의 기병대가 티베리아스 근처를 지날 수 있게 허락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레몽과 살라딘은 별도의 평화 협정을 맺었으니, 뭐 좀 찜찜하긴 해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슬롯은 레몽과 살라딘이 협정을 맺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돌격은 Attack 이라고 쓰고, Suicide 라고 읽습니다.

1187년 5월 1일 아침. 성당 슬롯장 제라르와 구호 슬롯장 로제, 그리고 150기 정도의 슬롯은 우연히 살라딘의 정찰대와 마주쳤습니다. 살라딘의 병력이 무려 7,000기에 이르는 것을 본 성당 슬롯의 참모들과 구호 슬롯장 로제는 퇴각을 주장했지만, 상남자 로제는 닥치고 돌격을 명령했습니다.


단장의 용감한 돌격에 나머지 기사들도 덩달아 돌격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슬롯은 용감하게 몰살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단장 제라드를 포함해 단 세 명 뿐이었습니다. 살라딘은 성당 슬롯의 지휘관급 전원과 구호슬롯 단장을 잡는 초대형 잭팟을 터트렸구요.


이 무쓸모한 돌격은 엉뚱한 곳에도 불똥을 튀겼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만 보면, 성당 슬롯장 제라르가 무쓸모한 돌격을 해서 몰살당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약간만 양념을 치고, 말 조금 붙이면 "비열한 레몽이 살라딘을 끌어들여서, 앙숙이던 성당 슬롯을 쳤다."라는 그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타이틀로 반역죄를 걸면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딱히 뭐 크게 잘못한 건 없는데.. 어쨌든 배신자로 몰린 레몽은 기에게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었고, 십자군 전열의 제일 앞줄에 끌려들어 가게 됩니다. 네. 망했어요.


르노는 이슬람 상단을 학살하고, 살라딘의 누이를 살해합니다.

6월. 마침내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측에서는 계속해서 협정을 위반하고 이슬람 상인들을 학살하고 있었습니다. 기는 이런 상황을 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있었구요. 이제는 이슬람 쪽에서도 싸워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었습니다. 참고 참던 살라딘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The Battle of Harttin

하틴 전투


살라딘의 첫 수는 예루살렘 근처의 작은 도시 티베리아스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티베리아스는 레몽의 아내가 영주로 있는 도시입니다. 티베리아스가 포위되자 예루살렘에서는 '티베리아스를 구원해야 한다.'와 '티베리아스를 구원하기보다는 예루살렘 본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뉩니다.


레몽은 아내가 있는 티베리아스를 구원하기보다, 예루살렘 본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여름 더위에 사막을 가로질러 2만의 대병력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어차피 살라딘의 목표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슬롯장 제라르와 르노는 티베리아스 구원을 주장합니다. 이때 르노가 했다는 말이 아주 인상적인데, 십자군은 거세게 타는 불이고 이슬람 군대는 불 앞의 장작과 같은데, 장작의 양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레몽을 비웃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실제 전투도 거센 불이 장작을 태우는 것처럼 돌아갔습니다. 장작이 예루살렘 군이어서 문제지.


참 십자가를 앞세우고 당당하게 출정했습니다만..

티베리아스를 구원하겠다며 예루살렘을 나온 십자군은 갈증에 시달리다 이틀 만에 전멸당했습니다. 선봉으로 끌려 들어갔던 레몽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이미 시작부터 꼬인 싸움입니다. 레몽을 호위하던 기사들 역시 하나 둘 쓰러지고 겨우 열두 명이 남게 되자, 레몽은 탈출을 지시합니다. 레몽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살라딘은 슬쩍 포위망을 열어 주고 레몽을 뒤쫓지 못하게 했습니다.


레몽은 무사히 트리폴리로 도망쳤습니다만, 울분에 시달리다 고열로 쓰러졌습니다. 얼마 뒤, 고열은 폐렴으로 번졌고 레몽은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원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티베리아스는 성문을 열고 항복했습니다. 곧이어 아크레가 항복하고 아스칼롱,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주요 요새들이 차례로 항복하면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고립됩니다.






Knights Hospitaller

The Order of Knights of the Hospital of Saint John of Jerusalem

예루살렘의 성 요한의 구호의 슬롯. 짧게 구호 슬롯.


구호 슬롯은 예루살렘을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세에 다른 나라를 여행한다는 건 반쯤 목숨 내놓고 하는 모험이었거든요. 노독이 나거나, 믈 갈아 마시고 탈이 나거나, 도적떼를 만나 부상을 당하는 등 사람들은 갖가지 이유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다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다가 정식으로 슬롯에 임명된 것이 구호 슬롯입니다. 구호 슬롯은 검은색 바탕에 하얀 십자가를 새겨 넣은 로브를 입었습니다.



Roger de Moulins.

구호 슬롯 단장 | 로제 드 물랭. (생년미상 - 1187)

이름없는 구호슬롯원. 아마도 로제 드 물랭에서 따왔을 겁니다..

기는 쿠데타에 성공해 예루살렘을 장악했지만, 정식으로 왕이 되려면 대관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왕관은 금고에 들어 있었는데, 이 금고는 세 개의 자물쇠로 잠겨 있습니다. 각각의 열쇠는 대주교, 성당 슬롯장, 구호 슬롯장이 나누어 보관하는 중입니다. 대주교와 성당 슬롯은 기의 편에 섰지만, 구호 슬롯은 이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레몽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는 하루라도 빨리 대관식을 해야 하는데, 구호 슬롯장은 열쇠를 내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심히 쫄리는 성당 슬롯은 결국 이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이참에 구호 슬롯과의 해묵은 갈등도 정리할 겸, 구호 슬롯을 치고 열쇠를 빼앗을 준비를 시작합니다.


구호 기사단 단장인 로제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구호 슬롯과 성당 슬롯은 모두 야전에서 구르던 최정예입니다. 갑옷을 뚤뚤 두른 두 기사단은 예루살렘 군대의 핵심 전력이기도 하구요. 두 기사단이 제대로 맞붙는다면 양쪽 모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습니다. 그럼 최종 승자는 살라딘이 될 겁니다.


고민하던 로제는 "에잇! 네 놈들 중 누구도 이 열쇠를 갖지 못할 것이다! 칵퉤 칵퉤!"라고 외치며, 열쇠를 창문 밖으로 휙! 던져 버렸습니다. 이미 반쯤 칼을 뽑았던 성당 슬롯은 얼른 열쇠를 주워 갔구요. 사실 정말로 칼 뽑기 부담스러운 건 성당 슬롯 역시 마찬가지라, 성당 슬롯은 이 만화 같은 사건을 구호 슬롯이 항복한 것으로 대충 인정하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사실 로제는 현명하고 균형감 있는 지휘관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입니다. 대놓고 항복을 하자니 너무 모냥이 빠지고, 그렇다고 성당 슬롯과 싸우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라, 대략 자존심 지키며 항복할 수 있는 묘안이 열쇠를 던지는 방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왕이 된 기가 결국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내전을 벌여서라도 열쇠를 지키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로제..아아..열쇠를 버릴 거면 어디 아파트 같은데 갖다 버렸어야지..


The Battle of Cresson

크레송 전투 | 로제 드 물랭의 의미 없는 죽음


1187년 5 월 1일. 성당 슬롯장 제라르는 티베리아스를 지나는 살라딘의 정찰대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로제는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제라르는 로제를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돌격해 버렸습니다. 얼결에 휘말린 로제와 두 명의 구호 슬롯, 그리고 150명의 성당 슬롯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만, 제라르는 용케 목숨을 건져 도망쳤습니다..




Knights Templar

Poor Fellow-Soldiers of Christ and of the Temple of Solomon

그리스도와 솔로몬 신전의 청빈한 병사들. 성당 슬롯


자! 이슬람 상인들을 향해 돌격!!

성당 슬롯은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상징입니다. 청빈한 병사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장 부유한 슬롯 중 하나였고, 보험, 대출, 전당포 비슷한 사업으로 자산을 불리다가 나중에는 국제 금융 회사가 됩니다.


120년쯤 뒤, 종교를 등에 업고, 자산도 많은데 칼까지 든 이 다국적기업은 뿌랑스 왕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했습니다. 마침 돈 들어갈 일이 많았던 필리프 4세는 성당 슬롯에게 여러 누명을 씌워 슬롯을 처형하고 재산을 싹 몰수해 버렸습니다.



Gerard de Ridefort.

성당 슬롯 단장 | 제라르 드 리데포르. (1140 - 1189)

이 냥반은 배역명도 없습니다만, 제라르 일거구요.

보두앵 4세가 죽은 뒤, 예루살렘 왕국은 두 세력으로 갈라졌습니다. 비둘기파인 레몽과 매파인 기. 성당 슬롯장 제라르는 기를 편을 들어, 사사건건 레몽에게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둘 사이에는 사연이 좀 있었거든요..


아유. 한참 예쁠때다. 연애는 또 언제 했데?

성당 슬롯장인 제라르는 원래 레몽을 섬기던 기사였습니다. 레몽의 가신 중 하나인 군소 영주의 딸 루시아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구요. 제라르와 루시아는 정말로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레몽 역시 흔쾌히 둘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구요.


내가 딱히 금이 탐나서 그러는건 아니고..크흠..

하지만 피사 출신의 대상인이 끼어들면서 일이 꼬입니다. 대상인은 자신과 루시아를 결혼시켜 주면 신부 몸무게만큼의 금을 지참금으로 내놓겠다 제안했고, (25년 3월 기준으로 90억 정도 나오네요..) 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레몽은 루시아를 대상인에게 시집보냅니다. 제라르 미안.


자네..혹시 루시아를 아직 못 잊은건 아니..

크게 상심한 제라르는 레몽에게 바쳤던 충성 서약을 거두고, 성당 기사단에 들어갔습니다. ( = 성당 기사단은 결혼 못합니다.) 레몽은 자기가 한 짓도 있고, 성당 기사단이라는 게 원래 사망률 높은 직업이라 제라르를 내버려 두었습니다. 1185년. 성군 보두앵 4세가 죽던 그 해, 제라르는 성당 기사단의 단장이 됩니다.


레몽에게 원한이 있던 제라르에게는 참 통쾌한 복수였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즈음 기 주변에서 한자리하고 있던 인물들이 다 그렇듯, 제라르 역시 말에 비해 실력이 한참 모자라는 인물이었습니다.




The Battle of Cresson

크레송 전투 | 제라르 드 리데포르. 아군인가 적군인가?


1187년 5월. 제라르는 겨우 150기의 기사들과 함께 7,000명에 이르는 살라딘의 정찰대를 기습했다가 중상을 입고 목숨만 건져 도망쳤습니다. 왜때문인지 모를 무쓸모한 돌격으로 성당 슬롯은 부단장과 핵심 참모들 전원, 고위 사제까지 직급 높은 순으로 150명을 한 방에 잘라먹었습니다. 애꿎은 구호 슬롯장 로제까지 끌고 들어가 전사시킨 바람에 단장 로제는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였습니다.



The Battle of Harttin

하틴 전투


1187년 6월. 십자군과 이슬람 사이에는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집니다. 포위된 티베리아스를 구원하겠다며 당당히 나선 십자군은 살라딘에게 탈탈탈탈 털리고 전멸당했습니다. 이 패배로 예루살렘 국왕 기, 성당 기사단장 제라르, 주요 영주들 대부분이 포로가 되었고, 대주교는 전사했습니다. 참십자가 (영화에도 나오는 금색 십자가로 그리스도가 못 박혔다고 알려진 십자가입니다만, 가짜라는 게 정설입니다.) 역시 빼앗겼구요.


대승을 거둔 살라딘은 몸 값을 받고 대부분의 포로들을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제라르에게는 몸값대신 다른 조건을 걸었는데. '가자에서 항전 중인 기사들을 항복시키면, 너는 풀어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제라르는 바로 콜을 외쳤고, 살라딘은 깔끔하게 가자를 접수했습니다. 제라르는 늘 이슬람과 싸우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하던 사람입니다만, 네.. 그래도 자기 목숨은 소중하니까요.


참고로 살라딘은 늘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고, 자선과 기사도로 이름이 높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성당 슬롯과 구호 슬롯만큼은 포로로 잡지 않고, 가능하면 반드시 죽였습니다. 중무장한 십자군 기사 한 명을 상대하려면, 이슬람 전사 4~6명이 필요했다고 하니, 슬롯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건 송양지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1188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약속을 받고 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당연히 기는 풀려나자마자 약속 따위 우주 멀리 차 버렸구요. 먼저 풀려나 있던 제라르는 기를 찾아와 합류합니다. 그러나 십자군에 속한 그 어떤 도시도 기와 제라르를 반기는 곳은 없었습니다. 기와 제라르는 이제 길바닥에서 잘 판입니다. 제라르는 가까운 아크레를 공격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아크레는 얼마 전까지도 십자군의 도시였고, 성전 슬롯이 신경 써서 가꿔 놓은 요새였습니다.


1189년.

당연히 아크레 공격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싶었던 기는 퇴각을 결정합니다만 왜때문인지 제라르는 '나 혼자라도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또 고집을 부리던, 정말로 혼자서 성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뚜까 맞고 포로로 잡았습니다...


살라딘은 또다시 사로잡힌 제라르의 목을 쳤습니다.




FIN.



킹덤 오브 헤븐의 리뷰 3/4편은 제가 봐도 영화 리뷰는 아니라, 본의 아니게 낚이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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