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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Feb 27. 2025

부부의 쓸데없는 기레고토토

누가 해결책을 달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절친과 현관에서 머리채를 붙잡은 이후로 '일반 사람'과 싸운 적이 없다. 몸레고토토은 물론, 작은 말다툼도 전혀. 그래서 나는 이 무난하고 뭉특한 성격으로 평생 둥글게 둥글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레고토토을 만나기 전까진.


우리는 연애 4년+결혼 5년을 거쳐 온 나름 오래된 사이지만, 여전히 싸운다. 왜 싸울까? 나는 그대로인데. 레고토토도 둥근 성격으로, 일반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그러니 어느 한쪽의 잘못은 아니다. 외도, 폭력, 도박, 음주 등의 마땅히 멱살이라도 잡을 법한 그런 일도 우리 집에는 없다. 그렇다면 진짜 왜 싸울까? 그건 바로, 우리가 부부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부 사이는 복잡하다. 딱, 이거다! 라고 꼬집을 수 없다. 연인, 친구, 동료, 가깝고 먼 지인, 스승과 제자 등등, '부모와 자식'이라는 천륜을 제외한 과연 세상의 모든 관계가 복합적으로 뒤섞인 것이 바로 부부 사이. 서로에 걸쳐 놓은 감정, 일상, 상황, 역사 등 모든 게 실타래처럼 엉겨있다.


그래서인지 레고토토의 형태도 참 요-상하다. 소소한 데일리 부부레고토토의 원인은, 대부분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이들과는 절대! 싸우지 않을 그 소소하고 사소하고 충분히 껄껄 웃어넘길 수 있는 거리들 말이다. 예로 몇 주전 유럽 한복판의 어느 카페에서 벌어진 말레고토토도 그랬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커피를 시켜 자리에 앉고. 레고토토은 얕은 한숨을 쉬더니 미래, 일,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풀어놓았다. 나는 그 얘기에 익숙했다. 이미 몇 주 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간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힘들겠다. 우리 붕붕이.'라는 피상적인 위로의 말을 던졌으나 이날은 나도 슬슬 들어주는 것에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그가 고민을 끝내길 바랐다. 그래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봐. 이렇게 해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은은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현명한 아내의 역할을 하는 것도 같아 약간 뿌듯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레고토토은 한숨을 다시 얕게 쉬고는 답했다.


누가 지금 해결책을 달래?

...?

나는 레고토토을 빤히 쳐다봤다. 레고토토은 '다희 너는 역시 T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레고토토의 말인즉슨, 너에게 무언가 실질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닌 공감과 위로의 제스처를 원했다는 것인데, 나는 억울했다. 그간 레고토토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등을 쓰다듬어주고 했던 그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레고토토은 시작되었다.


"내가 지금 너한테 뭔 해결책을 달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말하는 거야. 들어달라고."

"그래! 내가 여태 계속 들었잖아. 오늘 처음 말했다. 처음. 그게 뭐 그렇게 억울해?"

"아니... 그 말이 아니고...(한숨과 고개 절레절레 콤보) 아냐. 됐어. 그만하자. 미안해."

"뭘 그만해? 아니, 나는 니를 위해서 말한 건데 왜 예민하게 구는데."

"알았어. 미안해."

"아니, 지금 미안한 게@#$~!"


이렇게 의미 없는 말레고토토을 10분 넘게 지속하다 결국 둘 다 힘이 빠져 그만뒀다. 레고토토의 처음 '미안해'를 내가 받아들였다면 평화로웠겠지만 이미 감정이 차오른 나는 그러지 못했고, 대부분 그렇다.


레고토토아오. 내가 뭘 잘못했냐!


나는 레고토토 끝 어색한 기류 속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혼자 속으로 씩씩댔다. 왜 저렇게 예민해? 내가 무슨 악담을 하는 것도 아닌데. 뭔 말을 못 하겠네.


그리고 그때, 내 머리에는 바로 전날 밤의 장면이 스쳤다.




금요일 저녁.

언제나처럼 과식을 하고는 하하호호 손잡고 나온 밤산책. 하루 있었던 일과 미래 계획과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우리의 산책 루틴이기에 나는 여느 산책과 다름없이 고민을 풀어놓았다.


"후...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소설도 시나리오도 결국 아무것도 안 되면 어떡하지. 지금 쓰는 것도 사실 이게 맞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렵다. 어려워."


레고토토은 내 말을 듣다가 흐-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곤 말했다.


"음. 나는 네가 다른 것도 조금 해봤으면 좋겠어. 너무 글 쓰는 것에만 매달리지 말고. 쉬엄쉬엄 폴란드어도 배우고, 다른 재밌는 취미도 조금 하고. 아니면 하루종일 드라마나 영화 몰아보는 것도 괜찮고. 그러면 좀 리프레시가 되지 않을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레고토토을 보며 답답한 듯 말했다.


누가 지금 너보고 해결책을 달래?

그러니까 나는, 본격적인 쓰기를 시작한 반년 전부터 거의 매일 레고토토에게 위와 유사한 걱정 고민을 하소연하듯 늘어놨다. 레고토토은 늘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어. 너는 똑똑하잖아. 곧이야, 곧. 그러다 그게 몇 주가 넘어가자 레고토토은 슬슬 위로와 공감+본인이 생각하는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나는 곧장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취미 같은 걸 할 시간이 어딨어. 그냥 말하는 거야, 말. 너한테 뭘 원하는 게 아니라고, 지금.




도움이 될까 싶어 한 말에 레고토토은 왜 예민하게 굴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회상 장면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자문하면 쉬운 일이었으니.

도움이 될까 싶어 한 말에 나는 왜 예민하게 굴었을까? 아니, 나는 왜 그렇게'쉽게' 예민하게 굴었을까?


'너는 잘 모르잖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그리 오픈마인드가 아닌 독불장군 고집쟁이 인간이라 레고토토이 아닌 어느 누가 말했어도 이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레고토토이 아닌 타인이었다면, 나는 그게 가식일지라도 그저 수긍했을 것이다. 굳이 왜 반박을 하겠냐며. 괜히 레고토토으로 번질 일말의 가능성도 주지 않았을 거다.


근데 레고토토에겐 그러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자 연인으로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이라는 점에 기대기도, 가끔은 서로를 가르치려 드는 이 이상한 사이에 늘 존재하는 요상한 기레고토토에서 지고 싶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부는, 사소한 걸로도 그리 자주 싸우게 된다.




그렇게 나는 싸운 지 5분도 안 되어 깨달았다. 과연, 내로남불이었군. 의자에 기대어 이미 다 식어버린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혼자 씩씩대던 속은 커피처럼 차게 가라앉았다. 자리의 레고토토을 흘긋 봤다. 촉촉한 입술을 억울한 듯 부-내밀고 있었다. 레고토토 레고토토의 시그니처 표정. 바로 옆에 있지만 딱히 걸기는 민망해서 나는 카톡을 보냈다.


'내가 미안. 우리 친하게 지내자.'


메시지를 확인한 레고토토은 바로 내게 몸을 가까이 붙였다.

"아냐. 내가 미안해. 예민했어. 미안. 이따 맛있는 거 먹을까?"

나는 레고토토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오늘의 레고토토도 종식. 부부의 레고토토은 참, 알 수가 없다. 결혼이라는 건 그래서 더 재밌는 것일지도···


덧,

어떤 레고토토을 하든 누군가 먼저 '미안해'라고 하면, 그냥 받아들이자. 그럼 일찍 끝난다.



레고토토


또 덧,

우린 지금 저 둘의 경계에 있는 듯.

정확히는 나만. 레고토토은 늘 7년차였다.

이제 5년차니까, 2년 후면 나도 저렇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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