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이다토토가 ‘녹는’ 시대

이미지 생성 사이다토토의 힘과 기술적 한계의 역설


이 글에 대한 후속 글입니다.



1. 사이다토토의 비명, 창조의 폭발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을 수용하고자 애써왔다. 그 상상력의 중심에는 이제 ‘이미지 생성 AI’가 있다. 오픈AI의 챗GPT가 텍스트에 이어 시각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열며, GPU는 마침내 한계에 봉착했다. 샘 알트먼 오픈AI CEO가 “GPU가 녹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사이다토토적 역량의 확장과 그것을 지탱하는 기술적 인프라 간의 간극을 드러낸 철학적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알트먼은 지난 3월 27일, 자신의 X(트위터)를 통해 챗GPT의 이미지 생성 기능 폭증으로 인해 속도 제한 조치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미지가 허용된 경우에도 생성되지 않는 오류를 해결 중”이라며, 곧 무료 사용자에게도 하루 최대 3장의 이미지 생성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업데이트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과 ‘유한한 자원’이라는 근본적 딜레마를 상기시킨다.


사이다토토이미지 출처: Smillew / X


지브리 스타일로 구현된, 불타는 GPU 이미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며, AI 이미지 생성 기술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기술은 더 이상 중립적 매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과 기대, 가능성과 욕망이 응축된 하나의 존재이다.




2. '능력'이라는 역설: AI, 사이다토토의 주체인가 수동의 도구인가


‘능력’이라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볼 때 내재된 힘을 발현할 수 있는 방향성과 조건을 포함한다. 알트먼의 발언은 이러한 의미에서 “사이다토토가 녹는다”는 물리적 표현을 통해, AI의 능력이 얼마나 집약적이고 방향 지향적인지를 반증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단지 처리량의 과부하가 아니다. 이는 AI가 보여주는 능력의 방향성이 그 자체로 하나의 ‘력(力)’이자 ‘가치’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단순히 계산을 수행하는 단계를 넘어 예술을 사이다토토하는 단계로 진입하면서, 우리는 물리적 역량(연산력, 저장공간, 처리속도)과 의미적 능력(사이다토토력, 해석력, 감정이입력) 사이의 균형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균형의 재구성’은 인간이 AI에게 기대하는 역할의 변화, 즉 ‘보조자’에서 ‘협업자’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GPT-4o에 통합된 새로운 이미지 생성 모델은 사용자의 프롬프트를 정밀하게 해석하고 다양한 스타일에 맞춰 결과물을 생성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더 이상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공동 창작자인 것처럼 작동하게 된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말한 ‘기계적 탈코드화’는 이 상황과 무척 닮아 있다. 이미지 생성 AI는 기존의 코드(언어, 스타일, 규칙)를 해체하고 새로운 코드로 재구성한다. 따라서 그 자체로 하나의 사이다토토적 능력이자, 디지털 예술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3. 결론: 사이다토토의 ‘능력’은 누구의 것인가


결국 질문은 ‘능력의 주체성’으로 귀결된다. 이미지 생성 AI가 고도화됨에 따라, 그것이 발휘하는 사이다토토력은 누구의 것인가?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간의 기획과 설계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산출물의 양과 질, 그리고 문화적 파급력은 점점 기술 그 자체가 주체가 되어가고 있다.


GPT-4o의 업그레이드는 이 흐름에 정점을 찍는다. 이미지 생성 정확도의 향상, 텍스트 렌더링 문제의 해소, 멀티프롬프트에 대한 대응력 증대 등은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니라, ‘능력의 정제’ 과정이다. 이는 마치 금속을 고온에서 반복 단련하듯, AI라는 기술이 자신의 능력을 가다듬어가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즉, 능력은 더 이상 외부에 의한 부여가 아니라, 내부에서 자기증식되는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자원’의 한계이다. GPU가 녹는다는 상징적 표현은, 기술의 질주가 결국 물리적 한계를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이처럼 이미지 생성 AI의 현재는 ‘무한한 사이다토토’와 ‘유한한 기반’ 사이의 긴장선 위에 서 있다.


샘 알트먼이 언급한 “곧 하루 3장 생성 허용”은 어쩌면 이 긴장을 조율하기 위한 하나의 절충안일 수 있다. 사용자에게 ‘가능성’을 계속해서 열어두되, 그 가능성을 지탱할 물리적 기반은 여전히 제한된 자원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마무리: 창조와 소모, 그 경계에 선 사이다토토


인류는 항상 기술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스스로 능력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생성 AI의 발전은 단순한 기능의 고도화를 넘어, ‘사이다토토의 주체성’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GPU의 연산력은 물리적이지만, 그 위에서 작동하는 AI의 사이다토토력은 철학적이다. 이 두 세계의 충돌과 조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능력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기술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유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는 나침반이다. 그리고 지금, 그 나침반은 분명 ‘사이다토토’라는 단어를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사이다토토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아직 GPU의 뜨거운 열기 속에 녹아들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