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카피의 콘텐츠 속 평생교육 1화
그동안 드라마에서 잘 다루지 않던 ‘황혼의 꿈’을 소재로 큰 화제가 된 드라마 <나빌레라. 현실의 벽에 부딪힌 채록(송강) 앞에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덕출(박인환)은 다시 세상과 당당히 마주할 용기를 불어넣는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덕출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한쪽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가 그토록 무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한 번쯤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였다. 이 소박하고도 단순한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한 번쯤’을 깨워주었을까. ‘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2021년의 봄이었다.
재작년 이맘때 석 달간 글쓰기 클래스를 진행한 적이 있다. 첫 모임의 주제는 ‘클래스에 오게 된 이유’. 황금 같은 주말, 그것도 한껏 게을러져도 좋을 오후 2시에 이곳을 택한 저마다의 배경이 궁금했다. 모임 첫날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강의실로 들어섰고, 각자 소개를 마친 후 한 사람씩 그 이유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스무 살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는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은 자신의 글을 사람들 앞에 처음 내놓는 자리라고 했다. 그 옆에 앉은 40대의 팀장님은 매일 보고서만 쓰는 자신이 또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그림이 아닌 글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보고 싶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그들의 이유는 하나, ‘한 바카라 룰 글을 써보고 싶어서’였다. 덕출이 매일 발레 연습을 하듯이 그렇게 우리는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글을 썼다. 언젠가 한 바카라 룰 마음에 품어본 적 있는 꿈을 조금씩 이뤄가기 위해서.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모임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그때 그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에 도전한다. 그 모습을 바카라 룰 있노라면 ‘배우려는 마음’에 있어서만큼은 나이도 없고, 한계도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들 혹은 미루기만 했던 것들과 가까워지는 기회. 그 기회를 붙잡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을, 나아가 서로를 변화시킬 힘을 얻는 게 아닐까. 발레와 현실 앞에 끊임없이 방황하던 채록도 오랜 꿈을 이루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덕출도 어느샌가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든든한 친구가 되었듯이 말이다.
이쯤 되니 <나빌레라의 소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비단 ‘황혼의 꿈’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쯤 마음에 품은 적 있는 저마다의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극 중 덕출은 말한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 같은 건 무섭지 않다고.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오거나 하고 싶었던 게 뭔지 기억나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그런 상황과 마주하지 않도록 꾸준히 낯선 것들에 뛰어들고, 부지런히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는 우리라면 평생에 걸친 배움이 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한 번쯤 글을 써보고 싶어서, 한 번쯤 악기를 연주해 보고 싶어서, 그저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어서.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망설여지는 당신이라면, 덕출을 만나 조금씩 성장해가는 채록(송강)이 처음으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친 이 대사를 떠올려보길. “그냥 해요. 그냥 하자고요. 발레!”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의매거진 <라이프롱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