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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재테크 Mar 20. 2025

초보 눈엔 구축밭, 고수 눈엔 부자벳

[경제적 자유의 문턱에 서서③ -송사무장-]

서른한 살이 되어 다시 사회에 나왔다.


어둠 술냄새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익숙한 내게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사회에 나오면 곧바로 적응하기 위해 나름 준비를 많이 했지만, 긴 시간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살았다는 생각에 두려움도 많았다.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주위에 아는 부자벳이 없었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창피했다.


결국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왠지 남들이 걷지 않았던 길만을 골라서 걷고 있는 듯했다.


일자리부터 알아봤다. 경매 업무 아니면 부자벳 투자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해 여러 곳을 찾아갔다. 급여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취업을 위해 방문한 회사와 컨설팅 업체, 법무사사무실에서 필요로 하는 부자벳은 너무 단순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자벳이었다.


부자벳과 경매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에게 실전 기술을 알려줄 수 있는 배움의 초석이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경매당한 세입자에게 우편물을 발송해 낙찰받게 해주는 단순작업, 회사에서 미리 매입한 토지를 예쁘게 포장해 고객에게 설명하고 매입을 권유하는 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혼자 부자벳과 경매시장에 뛰어들었다.


사회에 나오기 전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내가 아무리 경매와 부자벳에 관한 책 수십권을 몇 번씩 읽었다고 해도 실전에서는 생소하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지적도를 사서 내가 아는 지역을 하나씩 표시해가며 일단 집 주변의 물건부터 입찰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부자벳실투자금 262만원으로 낙찰받았던 빌라


외로웠다. 그냥 혼자서 가는 길이 외로웠다.


4년 동안 밤에 일을 하며 공부를 할 때도, 다시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도 혼자였다. 제대한 부자벳이 훈련소 시절 힘들었던 모습을 상상하는 것처럼, 밤 생활이 내겐 소중한 추억이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라면…


이론에만 치중했던 나의 투자 감각을 실전에 적용하기 위해 현장답사를 많이 다녔다. 그리고 현장에 가면 꼭 인근 부자벳에 들러 공인중개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생활은 휴일도 없이 반복되었기에 인맥은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내가 낙찰받는 물건도 하나씩 늘어났다.

부자벳 매입은 꼭 경매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저평가된 지역의 물건이 있으면, 아니 이 부자벳을 사서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서면 무조건 매입했다.


종잣돈이 부자벳 투자를 하기에 넉넉한 편이 아니었으므로, 레버리지(융자, 세입자의 보증금)를 최대한 이용했다.


돈은 노력하는 자에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인생에 기회가 3번 찾아온다고 한다.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3번이 기회인지도 모르고 놓친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05년 4월이었다. 4개월 뒤 서울 3차 부자벳이 발표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어디가 될지 추측하며 물건을 선점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부자벳을 찾아다녔다.

나도 이 분위기에 편승해 급매물을 찾던 중이었다. 흑석동에 괜찮은 매물이 나와 있다고 누나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매물이 몇 개 나왔어?"


"응. 매물은 많아. 잠깐 돌아봤는데 4개가 넘어. 그리고 분위기는 조용해."


"매물은 많이 있네. 빌라 대지 지분은 몇 평이야? 그리고 평당 가격은?"


"19평이고, 평당 600만원이야."


"그럼 내부 상태가 괜찮은 것으로 무조건 하나 계약해줘. 지금 바로 1,000만원 입금할게. 중도금은 내일 1,000만원 입금하는 것으로 하고 잔금일은 2달 후로 계약서 작성해줘."


집 구경은 하지도 않고 지적도만 확인하고 계약금을 보냈다.


서울에서 이 가격(평당 600만원)이면 부자벳이 지정되지 않더라도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가 수집했던 정보상 흑석동이 유망한 3차 부자벳 후보였기에 장고 없이 계약을 체결했다.


나에게 집을 매도했던 주인은 이 집을 1억1500만원에 분양받아 10년 넘도록 그대로 보유했던 부자벳이었다.(이 가격이면 분양 당시 호화빌라에 속한다)


나에게 매도한 가격도 1억1500만원이었다.


2005년 6월이 되자 부자벳 발표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났다. 모든 매물이 팔리거나 자취를 감췄다.


잔금일이 다가오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집주인과 다른 부자벳에서 웃돈을 제시하며 해약을 요구해왔다.


난 이미 중도금을 지불한 상태였으므로 주인과 부자벳의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부자벳20015년 흑석부자벳 전경 / 사진=서울연구원


그렇게 3차부자벳 발표가 나고 내 빌라는 정확하게 부자벳지역에 포함되었다. 시세는 금세 3억이 넘는 금액까지 치솟았다. 세전이지만 순식간에 2억이 넘는 수익이 생겼다.


전세를 안고 매입했고 내가 소유한 아파트에서 융자받았기에 실제 현금 투자 금액은 부대비용을 포함해 3,000만원에 불과했다.


이곳은 서울 지하철 9호선 개통으로 강남권 진입이 유리해지고 앞으로 좋은 동네로 탈바꿈할 것이기에 아직도 보유 중이다.


추가부담금을 부담한다면 나는 강남에서 인접한 유망한 지역의 아파트가 한채 생기는 것이다.


나는 잔금을 치르고 2개월을 보유했고, 집주인은 10년을 보유했다.


이 투자가 나에겐 너무도 큰 수익이지만, 돈으로만 따진다면 전 소유자는 인생의 3번 기회 중 1번을 놓친 것일 수 있다.


매물이 많이 나와 있었으므로 자신의 기회를 다른 이에게 빼앗긴 것은 이 주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공부하지 않는 부자벳은 남에게 자신의 밥그릇도 빼앗길 수 있다.



-4편에서 계속-






위 이야기는 송사무장(송희창)의 책 '엑시트'를 통해 더욱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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