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윤곽을 그린다. 그 울타리에서는 31일이 마지막 프리카지노를 차지한다. 이 상징은 끝을 말하고 있다. 2월이 29일로 되어 총합이 366일이라 해도 그 끝은 12월 31일이다. 그래서 그는 완강하게 응축, 마감을 내세운다. 그런데 바로 곁에는 1월 1일이 나란히 선다. 불과 1초 사이에 끝과 시작은 갈라진다. 이 지극히 짧은 최소 단위 시간 사이에는, 상징의 반란이 일어난다. 옛것과 새것, 낡은 정념과 희망이 맞선다. 지난 것의 후회는 새날들에 채워질 것이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그것은 분리선을 가른다. 시간이 느껴지지 않지만 연속한다는 착각이든, 전후가 달라지는 현상이든, 그 프리카지노는 달라진다. 시간을 붙잡아 이미지 속에 가두려는 노력도 무용하다. 수년 전, 수십 년 전 찍어 놓은 사진, 흐느적거리는 시계 그림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그것을 포박할 방법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는 카운터 다운에서 조차 악착같이 붙잡으려 한다. 역으로 세는 시간은 끝내 보내기를 주저하는 저항이다. 하지만 마침내 새해 시곗바늘은 채깍인다. 여기에 떠나보낸 시간에 대한 망각이 급속한 물살로 부딪힌다. '새해는 푸른 뱀띠해'처럼 지나간 과거를 꿀꺽 삼켜 버린다.
12월 32일이 밝았고, 13월 1일이 시작되었다고 한들, 세상이 달라질 건 별로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종말을 불안해하며 그 종점을 셈하고 있을까?
그 종점을 두려워해서 마지막 31일을 악착같이 맞이하지 않으려는 걸까?
혹은 무사히 마지막 날을 넘기고 당분간은 '살아났다'는 안심되는 새날을 환영하는 것일까?
마지막을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꼭 1프리카지노 31일에 결집할 필요는 없다. 5월 14일이면 어떻고, 1월 1일이면 다를까?
제각기 나열되어 있는 365 또는 366개의 숫자는 다만 프리카지노일 뿐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춘분, 서리가 내리는 상강 따위일 뿐이다. 여기에는 개인적 권력도 한 곳을 차지한다.
생일, 결혼기념일, 회사 창립일….
이것은 한 해의 숫자 프리카지노에 명칭을 건다.
프리카지노는 다른 것이 들어설 여지를 남기는 생략된 공간이다. 5월 중순이면 봄이라는 계절의 절정 적 상징이다. 그런데 한여름의 공포함이 이 프리카지노를 뺏는다.
11월 말이면 겨울이 시작될 길목이다.
하지만 100여 년 만에 최대 강설이 이 이미지를 탈취한다. 달력이 휘청거린다. 태양이 돌고 도는 평면이 달이 움직이는 '달력'으로 불렸다가, 이제는 혼란스러운 이름마저 상실할 처지이다. 계절이 방황하듯, 프리카지노도 비틀거린다. 때아닌 바나나가 마트에 전시되고 차가운 수온을 찾아 떠난 물고기에서, 계절은 길을 잃는다.
한 해를 순서에 따라 달력을 넘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프리카지노은 우리 관념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벌거벗고 원시림을 헤치던 우리 조상들이 새겨준 프리카지노이 지워지고 바뀌기에는 얼마만큼의 프리카지노이 더 흐를까?
1프리카지노 31일을 악착같이 붙잡으려는 집요함은, 그가 마지막 날이란 오명을 저항하기 때문이다. 1월 1일이 맡기 싫어하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그는 알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제야의 망각을 향한 온갖 눈가림이 펼쳐진다. 그 속에 묻혀 슬그머니 시간을 빠져나가도록 길을 트는 것이다. 이 기억 지우기가 종소리를 통해, 하늘로 시선을 돌리는 불꽃 축제로 돌아 세운다.
1월 1일이 밝는다. 12월 32일이 지속한다. 끊어 내려는 것과 존속하려는 것은 격렬하게 맞선다. 곧장 이웃에 있으면서도 서로는 처음과 끝이다. 하지만 그 둘은 찢겨 내린 달력에서만 서로 갈라질 뿐, 여전히 유효한 프리카지노를 붙들어 매고 있다. 1월의 달력에선 이 두 프리카지노가 공존한다. 1월 1일은 12월 31일의 내일이 된다. 12월 31일은 1월 1일의 어제였다.
1프리카지노 32일 또는 1월 0일은 같은 말의 반복이다.
삭제되는 마지막이 시작을 없는 것으로 말한다. 이런 부정을 메꾸는 것이 숫자 행렬이다. 1 뒤에는 2, 그다음에는 3…….
그러나 프리카지노에는 순서가 없다. 만약 한 해를 거꾸로 12월 31일부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기차가 거꾸로 움직이고 프리카지노도 뒤로 흘러갈까?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부터 시작한다면 삶으로부터 시작해 죽음으로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끝나는 긍정을 얻게 된다.
하지만 죽음이 시작이고 삶이 끝이라니?
이 시작도 끝도 구별할 수 없는 시간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프리카지노은 공허하다. 오늘 걷기를 통해 7천 보를 2프리카지노 동안 걸었다거나, 막연히 밤새 눈이 내렸다고 말하는 것은 관념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프리카지노이 흐른다고 하고, 거기에 수많은 의미를 구겨 넣는다. 이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 빈 곳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리카지노을 연속된 변이량으로 드러낸다. 오늘 읽은 페이지, 내일 3프리카지노을 달려가야 할 곳….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그래서 무엇이 채워지든 프리카지노은 다시 우리 앞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기증으로 어지럽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