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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Feb 17. 2025

지투지벳 소동(Ep. 23)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제부!! 우리 방콕으로 한 달 살이 가는 기간 동안 게콤이 좀 봐줄 수 있어?"



이름: 지투지벳

조카네가 키우는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



방콕으로 한 달 살이를 떠나는 조카네가 여행 기간 동안 우리에게 도마뱀 사육을 부탁하게 되었다.



집 안에서 도마뱀을 키운다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상에 수많은 귀여운 것들이 있는데 왜 하필 골라도 도마뱀인지.



어쨌든, 처형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생김새가 어떻든 생명은 소중하니까.


.

.

.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지투지벳와 정들기에 충분했다.처음에는 잘 만지지 못했던 와이프도 이제는 게콤이를 핸들링하며 귀여워한다.



그렇게 우리는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마스카라를 한듯한 속눈썹, 젤리 같은 촉감, 쉬운 사육 난이도까지.



그러나 이제는 지투지벳를 다시 조카네로 돌려보내야 할 시간.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날 지투지벳와 사진을 남겨본다.



지투지벳




지투지벳를 다시 돌려보낸 지 약 10일째 되던 날.



"처형, 게콤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키워보니까 밥 좀 잘 주셔야 할 것 같아요. 같은 나이대에 비해 게콤이 크기가 너무 작아요.."



지투지벳를 임시보호하는 한 달 동안 잘 키워보고자 유튜브로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 사육에 대한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그러다 같은 나이대에 비해 지투지벳가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돌아오는 처형의 답변.



"아 맞다.. 정신이 없어서 게콤이 밥을 제때 못 줬네.."



이런. 불쌍한 지투지벳.

계모에게서 지투지벳를 구조해와야겠다.



"처형 제대로 못 키우실 거 같으면 제가 키울게요, 밥도 잘 주고 살 좀 찌워 보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우리 집에 머물렀던 지투지벳는,

공식적으로 우리 집 새 식구가 되었다.





지투지벳의 사육 환경을 모두 바꿔주기로 마음을 먹고, 사육장부터 사료까지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꿔준다.



게콤이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나를 보며 와이프가 옆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게콤이는 좋겠네, 북꿈이 관심도 하루 종일 받고 새 집에서 살게 되어서. 우리는 구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도마뱀 팔자가 상팔자다."



흘깃.분명 게콤이에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와이프의 눈알 흰 자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도마뱀과 소통하며 남편에게 은근히 압박까지 넣는 신종 돌려까기 수법. 딱히 죄지은 것은 없지만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지투지벳
지투지벳



지투지벳는 이제 우리 부부의 공통 관심사가 되었다.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지투지벳가 잘 놀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핸들링을 하며 지투지벳와 교감을 하기도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와이프와 게콤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지투지벳가 화려한 점프 실력을 발휘하며 하늘 날다람쥐처럼 튀어 오른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터프하게 착지한다.




척.




"아.. 안돼!!!악!!!"



와이프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진다.







나무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삭막한 콘크리트 아파트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나무 한 그루를 찾은 것처럼 녀석의 표정이 밝다.



그래. 착각할 법 하지.

에헴.



크레스티드 게'꼬' 도마뱀..





녀석과 진한 교감 이후 더욱 가까워진 기분이다. 나를 인정해 준 지투지벳를 더욱 진심으로 키워봐야겠다.



동년배에 비해 크기가 작다는 것이 신경 쓰인다.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성장을 시킬 수 있을지 검색해 본다.



그러다 이내 방법을 찾는다.



'충식'이다. 사료 말고 곤충을 먹이는 것.

먹이는 바로 귀뚜라미.







그런데 문제가 있다.



와이프는 지투지벳 혐오가 심한 사람이다.다리가 여러 개 달린 것들은 물론, 매미나 잠자리처럼 날개가 달린 것들도 기겁을 한다.



한 번은 캠핑장에서 한 밤중에 지투지벳를 보고 비명을 질러 자고 있던 캠퍼들을 모두 깨웠던 적도 있다.



캠핑장에 무슨 지투지벳가 이렇게 많냐며 투덜거리는데 할 말이 없더라. 곤충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방인일 텐데.



이런 와이프가 살고 있는 집에 귀뚜라미를 들인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한 이야기다.





그러나 나 김북꿈.

늘 방법을 찾는 남자.





결혼 생활 6년 차에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욱 쉽다는 것이다.



와이프 몰래 귀뚜라미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지투지벳에게 먹이고 남은 귀뚜라미는 방에서 몰래 키워볼 계획이다. 살아있는 싱싱한 귀뚜라미를 지투지벳에게 먹이기 위해.





지투지벳가 먹고 남은 귀뚜라미는 채집통에 담아 방에 숨겨 놓는다. 귀뚤귀뚤 울지는 않지만 바사삭 거리는 소리는 조금 거슬린다.



와이프가 내 방에 들어오지 말아야 할 텐데. 귀뚜라미가 탈출하지 않도록 몇 번이고 채집통 결합 상태를 확인한다. 걸리지 말고 며칠만 잘 버텨보자.



걸리면 나도 귀뚜라미랑 같이 죽는다.







와이프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한다.



"여보, 이것 좀 세탁기에 넣어줘."

"여보, 저 컵 좀 닦아줄 수 있어?"

"여보, 냉동실에서 뭐 좀 꺼내줘!"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프는 전장을 지배하며 나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뭐 시킬 때는 진짜 전두광 저리 가라. 아 엄마 보고싶다.





"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악!!!!!!!!!!!!"







와이프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달팽이관을 쎄게 후려친다.등골이 오싹해진다. 설마.



"벌레!!!!!!!! 벌레 좀 잡아줘!!!!!!!!!"



안방에서 문 닫고 옷을 갈아입던 와이프가 벌레를 발견하고 나를 급하게 호출한 것이다.



분명 확실하게 잠금장치를 했는데,

귀뚜라미가 어떻게 탈출한 거지.



와이프에게 당장 튀어가 본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핑계를 생각해가며.



"하아. 하아. 나 너무 놀라서 일단 종이컵으로 벌레 잡아놨어. 나머지는 여보가 처리해줘ㅠㅠ"






지투지벳를 컵 안에 잡아뒀으니 뒤처리를 부탁한다는 와이프.그런데 그 짧은 찰나에, 종이컵 안에 든 게 지투지벳가 아닐 것이라는 확실한 기분이 든다.



안방에 뜬금없이 종이컵이 있었을 리 없다.

다급하게 나를 불렀는데 저 포스트잇은 뭔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뜬금없이 거울 뒤에 떨어져 있는 ABC 초콜릿.

그리고 오늘은 발렌타인데이.



지투지벳라며 호들갑 떠는 와이프에게 이야기해 본다.



"이 안에 벌레가 없다는데에 내 손모가지와 전 재산을 걸지. 단아 너는 뭘 걸을래? 쫄리면 뒈.."



와이프가 당황한다.

그 틈을 타 종이컵을 대차게 열어본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와이프가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것이다.



항상 뭘 하든 흔적을 남기고 어설픈 와이프.그래도 이런 것을 기획했다는 것 자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골 때리네.



가져오면서 몰래 하나 까먹었네.

쓰레기도 같이 주냐.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귀뚜라미는 아직 안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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