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길 땐 먹어줘야지
아침마다 10분 컷으로 먹을 수 있는 걸 원하는 신랑에게 떡도 종류별로 줘 보고, 짜 먹는 죽도 줘 보고, 시리얼도 줘 보고, 바나나에 삶은 계란도 줘 보고, 두유도 그릭요거트도 줘 봤는데, 옛날 카림토토가 압도적으로 감탄을 연발하고 감동까지 먹으며 씩씩하게 출근하더라.
카림토토검진 끝났다 이건가.
요즘따라 카림토토에도 밤에도 엄청 먹어대는 신랑이다.
크려나..
아들은 한식인데, 밥을 10분 안에 먹어주면 안 되는 것일까...?
흠..
그래도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감탄에 감동까지 받았으니.. 안 해줄 수 없다.
아침부터 하도 잘 먹길래 아침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던 내게 속에서 먹자는 신호가 마구마구 보내졌다.
신랑의 옛날 카림토토 먹방과 아들의 한식 먹방을 연달아 봤더니 아침부터 묘하게 허기짐이 느껴졌다.
아들의 등교를 뒤로하고 신나게 걷고 걷고 또 걷고, 파워 워킹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옛날 카림토토다.
무시하고 걸어 보지만 카페라도 들려 카페인과 함께 무언가 당을 섭취할 것이 뻔했다.
악마의 유혹일까, 나와의 싸움일까.
집에 오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는 모든 창문을 다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이미 머릿속에 옛날 카림토토가 자리 잡았으니 빼박, 당연히 먹게 될 것을 예상했다.
한동안 먹어오던 그릭요거트도 오늘만큼은 패스다.
잠시라도 양심을 챙겨보도록 온몸을 움직여 가며 칼로리 소비에 힘을 썼다.
깔끔해진 거실과 방을 보며 흐뭇한 상태로 열어뒀던 창문을 닫았다.
차 한 잔 가져와 노트북을 켜고 강의를 들으려 했으나 집중이 안 된다.
그래, 당길 땐 그냥 먹자.
조용히 주방으로 다가가 냉장고를 열고 손질된 당근과 양배추, 베이컨을 꺼내어 계란 하나 풀고 그대로 프라이팬에 앞뒤 노릇하게 굽굽, 식빵을 얹어 뒤집고 설탕과 케첩을 넣어 반으로 접으니 완성됐다.
경건한 마음으로 접시 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한 입 베어문 순간, 카림토토의 감탄과 감동이 내게도 찾아왔다.
허허, 반갑구먼, 반가워요.
카림토토이나 나나,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식탐이다.
순식간에 사라진 빈 접시를 보니 내 시선은 노트북이 아닌 주방으로 향한다.
식빵은 달랑 한 조각 남아있다.
다시 시작된 나와의 싸움이다.
졌다.
왜, 먹을 것 앞에서는 귀찮아지지 않는 것일까..?
다시 15분 전으로 돌아간 듯, 냉장고를 열고 양심상 베이컨은 뺐다.
손질된 당근과 양배추만 꺼내어 계란 하나 풀고, 그대로 프라이팬에 앞뒤 노릇하게 굽굽, 식빵을 얹어 뒤집고 또다시 양심상 설탕은 빼고 케첩만 넣은 채로 반으로 접어 완성시켰다.
여전히 맛있다.
늘 먹고 나면 후회하는 미련 곰퉁이.
카림토토 검진을 받고 온 지도 이제 겨우 일주일 됐는데, 근력 운동은 필수라고 하셨던 의사 선생님 얼굴이 떠오른다.
먹기 전에 떠올라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림토토한 돼지가 되는 것은 참으로 쉽다.
10대 20대 때는 조금만 움직여도 내 자리가 아니구나~ 싶어 잘만 빠지던 살이, 40대가 되었다고 온몸에 좋다고 구석구석 잘도 들러붙는다.
운동? 그까짓 거.. 이왕이면 잘 먹고 하자.
3킬로 공을 들고 위로 올렸다 내렸다, 좌우로 뒤틀기를 시작한다.
앉아서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이다.
금방 피로해진다.
하나만 먹을 걸.
팔뚝이 뻐근해진다.
다리도 뻐근해진다.
파워 워킹으로 하교하는 아들 데리러 가야겠다.
입 맛 좀 누군가가 도둑질해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 역시 감사하다.
아파서 못 먹으며 골골대는 것보다 낫다.
카림토토한 돼지도 노력하면 언젠가 반쪽이 되겠지.
40대 50대 어머님들 우리 모두 근력 운동해요..♡
물귀신 작전 아닙니다.
카림토토한 노년기를 위한 필수 운동입니다.
으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