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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an 30. 2025

식혜 아니고 멤버십카지노

"마지야, 오늘 방학했나? 학교 다닌다고 애먹었다."

"네."

"설에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서 할매한테 말해줘."

"할머니, 식혜 먹고 싶어요."

"식혜? 그 뻘건 걸?"

"그거 말고 흰 거요."

"아아, 그건 멤버십카지노. 뻘건 거를 식혜라고 하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데, 할머니와 큰 손주의 통화가 들린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 질문에 내 머릿속은 육즙이 가득한 안동 한우가 그려졌는데, 사춘기 마지는 뽀얀 할머니의 '감주'를 떠올린다. 정작 할머니의 딸인 나는 명절이 되어도 감주를 찾지 않는데, 그 딸의 자식인 손자들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감주를 찾는다. 이럴 때는 핏줄이 뭔지 신기하면서 동시에 가슴이 찡하게 타오르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릴 적에 나는 엄마가 '감주'라고 부르는 것은 단맛이 나는 뽀얀 식혜, '식혜'라고 부르는 것은 흔히 알려진 안동 식혜로 혼용되는 것이 무척 싫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이 감주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 감주 한 그릇을 마시기 위해 '안 매운 것', '안 빨간 것' 등으로 부연 설명을 해야 하는 점도 참 귀찮았다. 그러다 어느 한 때에는 덧붙여야 되는 설명이 귀찮아서 먹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식혜를 감주로 부르는 경상북도 안동, 의성, 청송 지역의 문화가 별달랐던 것이 아니라 내가 빌난('별나다'의 경상도 사투리)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감주가 내키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를 들자면 '감주'라는 이름이 촌스러웠기 때문이다. 식혜는 세련되고 예쁜데, 감주는 못생긴 느낌이랄까. 이것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유치한 발상이다. 또 촌스럽다는 느낌에는 동의할 수 없기도 하다. 식혜는 여전히 예쁜 이름이고, 감주는 귀여운 느낌이 드니까. 감주, 감주, 동글동글 밥알이 샤르르 녹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다. 아무튼 감주는 되지도 않는 이유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의 오해를 군말 없이 받고 있었다. 그리고 한 세대가 벽을 치고 경계를 했던 감주는 보란 듯이 살아남아 나의 앞뒤 세대를 잇는 귀염둥이가 되었다.


이제 귀여운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와 감주를 짝을 짓듯이 함께 떠올리고 있다. 어쩐지 위기감이 든다. 나도 지금부터 서서히 감주 만드는 법을 배울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몇 년 후에는 명절에 맞춰 올 아이들을 위해 감주를 만들어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흰머리가 스무 개쯤 보일 무렵에는 감주의 달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감주의 인기가 이렇게 올라갈 줄 몰랐듯이 사람 앞날도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몇 년 후의 어느 날과 지금의 시간 사이에는 '감주 한 번 만들어 봄'이라는 한 줄은 들어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만들어봐야 감주를 앞으로는 만들어 먹을 것인지, 영영 얻어먹거나 사 먹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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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도 아이들은 할머니의 감주를 마시며 "맛있어요!"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얼굴에 함박웃음을 그려 드렸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세상에 이것만큼 따뜻한 영화가 있을까.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식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알고 있다. 이번에도 엄마는 감주와 함께 식혜도 준비해 놓으셨다. 엄마에게 감주는 어린이용, 식혜는 어른용 음료인 셈이다. 나 이거 참. 이제는 감주와 해묵은 오해부터 풀고 싶은데, 나이가 들수록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아직은 뻘건 식혜를 잘 먹지는 못하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엄마가 준비한 어른용 음료를 마시며 아이들처럼 함박웃음을 선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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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썬 배를 듬뿍 넣고, 땅콩을 반 쯤 넣어야 마실 수 있는 안동 식혜,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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