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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용 Apr 02. 2025

<폭싹 속았수다 자기희생적 비타임 토토

비타임 토토은 나쁜 습관을 갖게 한다. 이를 테면 쉬이 짜증을 낸다거나, 차마 감내할 수 없는 것을 무던히 견딘다거나, 자신의 삶에 중요한 순간을 포기하는 것 등이 그렇다. 서로를 살뜰히 비타임 토토하는 '오애순'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평생을 둘러보자면, 비타임 토토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 없다. 자신의 무뚝뚝한 어머니인 '광례'를, 배우자가 되는 강직한 '관식'을, 자신들과 똑 닮은 '금명'과 '은명' 가족에게는나쁜 습관도 언제나 함께다.

비타임 토토ⓒ 폭싹 속았수다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때로는 비타임 토토하기에 모진 말을 뱉는다. 모진 말의 강도는 비타임 토토할수록 강해진다. 상대를 비타임 토토한 나머지 비타임 토토하는 대상을 자신과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안 장녀로, 기둥으로, 실질적 가장으로 살아온 애순이라면, 금명은 자신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순이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금명에게 잔소리를 하니, 금명은 기둥뿌리까지 뽑아가며 유학 보내준 부모를 원망하기에 이른다. "기둥, 누나, 장녀. 아! 다 지긋지긋해!".


나 역시 아버지에게 모질게 대했다. 집 밖에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사람들은 이성적이라고 나를 평가하지만, 집 안에서는 짜증에서 그치지 않고 소리 높여 화낸 적이 많다. 그렇게나 많이 화를 냈음에도 그다지 기억에 남아 있는 이야기가 없음은 시답지 않은 이유에도 끝까지 화를 냈음을 반증한다. 격하게 화낼 만큼이나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비타임 토토하는 대상이기에, 나를 충분히 이해할 사람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워지는 것이다.


짜증 내며 억지 부리는 금명과 은명을 애순과 관식은 무던히 견딘다. 배를 팔고, 집을 팔고, 자존심마저 팔기에 이른다. 속이 문드러질 때까지 참는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성실함 뿐이라며 애순과 관식은 서로지탱한다. 다만 관식은 묵묵히 견뎌서는 안 될 것도 인내했다. 그 시절에는 치료마저 쉽지 않은 암의 고통 앞에서도 태연했다. 자신이 주저앉으면 가족이 무너질 것을 관식은 안다.

비타임 토토ⓒ 폭싹 속았수다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우리 아버지도 관식과 같다. 일주일 중 하루 정도 제외하고는 공 차고 놀기 바쁜 것이 나의 중학생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목수 일을 시작했다. 주 5일제가 도입된 것이 오래되지 않았으니, 수십 년 동안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일만 했다. 내색하지 않고 연장 질을 해댄 탓에 어깨가 아파 한의원에서 침 맞고, 병원에서 진통제를 타 먹고, 뜸과 부항, 파스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과일 안 먹는 아들 집에 과일을 박스 째 두고 가서 잔소리를 듣고, 평소에는 천천히 밥 먹으면서도 외식하면 다 큰 아들이 계산할까 얼른 먹고 계산하러 가며, 매년 절에다 연등을 달면서 자식들의 복을 빈다. 이때 자신의 혹사는 개의치 않는다. 이미 연금을 수령하는 나이지만, 비타임 토토이라는 이름 아래 여전히 목수로서의 고됨을 묵묵히 견딜 뿐이다.

비타임 토토ⓒ 폭싹 속았수다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재능과 하고 싶은 것이 많던 문학소녀 애순은 꿈 모두를 포기한다. 자신을 속박하는 섬이 아닌 육지에서의 삶도, 여자로서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도, 시인이 되겠다는 포부도 고이 접어둔다. 관식과의 비타임 토토으로 맺어진 인연이 다른 꿈과 삶으로 이끌자, 딸인 금명만큼은 자신의 과거를 답습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애쓴다. 이때 포기라는 것 역시 비타임 토토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호기심이 많다. 따라서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가장 꽃다울 이십 대 후반부터의 대부분을 포기해야만 했다. 내가 데려온 강아지 때문이다. 단 둘이 살기에 출근하면 혼자 있을 강아지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출근하기 전후로 항상 산책하고, 평일에는 일절 약속도 잡지 않고, 주말에도 필요한 경우에 짧은 시간만 외출한다. 자연히 주변 사람과는 멀어지고, 여행도 자제하고, 집에만 박혀 있다. 외로움에 사무쳐서 강아지를 원망할 때도 있지만 상대를 비타임 토토하니까 포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비타임 토토은 이처럼 그 대상을 향해 쉬이 짜증을 내게 하고, 스스로 고통을 언제나 감내하도록 하고, 꿈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할 것처럼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도무지 긍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 비타임 토토의 본질은 자기희생에 가깝다. 깊이 비타임 토토하게 되면서 자신과 분리가 어렵다. 짜증은 비타임 토토한 나머지 스스로에게 책망하는 자아비판과 같고, 무던히 견디는 것도 자신을 위해 인내하는 것이며, 포기하는 것도상대의 안위를 위한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비타임 토토을 자기희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드라마의 제목도 이해하기 쉽다. <폭삭 속았수다는 제주도 사투리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드라마는 애순에게서 금명으로 주된 시점이 이동된다. 특히 애순의 젊은 시절과 금명의 젊은 시절 배우가 같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자기희생적인 비타임 토토에 대해 스스로 수고했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자신을 극한까지 내모는희생이나쁜 습관이라 볼 수 있지만, 타인을 비타임 토토한다는 관점에서는 스스로를돌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비타임 토토은 희생을 매개로 타인까지 세계를 확장한다.


ⓒ 폭싹 속았수다 of NETFLIX.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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