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이 Feb 27. 2025

칼리토토 밤은 너와 함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찌감치 서울로 발령받아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새집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옛 집에서의 마무리는 나와 아이 둘이서 하기로 했다. 남편 때문에 내려오게 된 지방에서 혼자 남아 이별을 준비하려니 왠지 더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떠나면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 하나 없는 노잼도시에 일부러 오지 않을 것 같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사를 할 때는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실제로 오며 가며 옛 집을 보고 추억에 젖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제 여기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유난히 더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일 년 동안 오롯이 남편과 단 둘이 함께 한 휴직기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애 때부터 줄곧 장거리 커플로 주말부부로 지내온 우리에게 긴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낸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낯선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보낸 일 년은 특히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집돌이, 집순이 취향답게 휴직하는 동안 집에서 만든 추억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함께 걷던 동네 산책로와 가까운 영화관, 골목 식당들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이곳.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던 그 시간들과 이별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움이 더 컸다.


본래도 섬세한 친정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이런 내 마음을 벌써부터 알아챈 눈치였다. 그 넓은 집에서 남편도 없이 칼리토토 밤을 보내는 것이 괜찮겠느냐며 자꾸 집으로 오겠다 한다. 무릎이 성치 않아 오더라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만은 벌써 열차를 탔다. 내심 집으로 오겠다는 엄마가 고맙고 반가워 쉬이 거절을 하지 못했다. 쓸쓸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 줄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곁에서 전화를 엿듣던 눈치 빠른 남동생은 '내가 나설 때구만' 싶었는지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칼리토토 갈게. 엄마보다는 칼리토토 가야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이럴 바에는 애초에 남편을 오라고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결국 남동생은 이사 전 날 잠 부러 내가 있는 곳까지 운전을 해서 왔다. 결국 요상한 가족 구성으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나와 아들 그리고 남동생 셋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낯설고 엉뚱한 조합이지만 남동생의 존재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이사 걱정과 새 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 등이 뒤섞여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일지라도.


칼리토토


그날 칼리토토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새벽녘에는 다시 잠들지 못해 한참을 뒤척였고 동이 틀 때쯤 꿈을 꿨다. 꿈속에는 길거리를 오가며 만났던 아이 친구들이 여럿 나왔고, 그중 한 명이 길을 잃고 울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말을 걸자 안심한 듯 미소를 짓는다. 아이를 달래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꿈에서 깼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어설프게 배운 후로는 꿈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보곤 한다. 나의 개똥철학, 내 멋대로의 해석으로는 길을 잃고 우는 아이는 사실 나의 내면의 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한 번 낯선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는 나. 현실의 내가 잠시 내면의 나를 만나 길을 찾아주고 안심시켜 준 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전학 가는 아이에 대한 걱정도 새롭게 적응해야 할 시간도 다 흘러가겠거니 다 잘 되겠거니 한다.


지금 시간은 6시. 이삿짐센터와 약속한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칼리토토을 쓰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을 해본다. 이삿날 아침 말도 안 되는 여유부리기라는 걸 알면서도 누워서 전자책을 켠다. 기운이 좀 나는 책으로 희망이 담긴 책으로 신중하게 골라 읽는다.


"안주하고자 하는 칼리토토을 새로운 목표로 없애고 컴포트존에서 벗어나라."


오늘의 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도 한번 자기 합리화. 익숙하고 편안했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은 어쩌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고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띵동. 벨이 울리고 짐을 나르는 분주한 손길이 시작된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몇 가지 전달사항을 일러준 뒤 집을 나오니 칼리토토은 아직 8시 30분. 이 칼리토토에 갈 수 있는 곳은 얼마 없다. 고민 없이 맥도널드로 향한다.


집 앞 삼거리에 있는 맥도널드는 이정표 같은 곳이었다.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 때 멀리서 맥도널드의 노란 'M'자 모양이 보이면 '집에 다 왔구나' 했었다. 맥도널드가 보이면 우회전, 이건 내가 집에 오는 길을 설명할 때마다 늘 쓰던 단골멘트다. 식구들 아침밥을 먹이고 텅 빈 밥솥을 보다 우울해진 어느 날 혼자 들러 맥모닝을 먹으며 '잘하고 있다' 생각했던 곳. 이곳에서 칼리토토 아침식사를 한다. 어디 가나 쉽게 마주칠 흔한 프랜차이즈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지점에 올 일은 다시 없을테니까.


이십 대 때 일본에서 1년 정도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적이 있다. 출국 하루 전, 도쿄타워에 올라 도쿄시내 전경을 보며 말했었다.


'고마워, 도쿄야. 나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줘서 고마웠어.'라고.


오늘 난 또 한 번 같은 인사를 한다. 나를 받아줘서 고마웠다고. 신세 많이 지고 간다고. 정들었던 칼리토토게.





칼리토토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