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찌감치 서울로 발령받아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새집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옛 집에서의 마무리는 나와 아이 둘이서 하기로 했다. 남편 때문에 내려오게 된 지방에서 혼자 남아 이별을 준비하려니 왠지 더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떠나면 이곳에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 하나 없는 노잼도시에 일부러 오지 않을 것 같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사를 할 때는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었고 실제로 오며 가며 옛 집을 보고 추억에 젖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제 여기는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유난히 더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일 년 동안 오롯이 남편과 단 둘이 함께 한 휴직기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애 때부터 줄곧 장거리 커플로 주말부부로 지내온 우리에게 긴 시간을 온전히 함께 보낸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낯선 곳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보낸 일 년은 특히 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집돌이, 집순이 취향답게 휴직하는 동안 집에서 만든 추억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함께 걷던 동네 산책로와 가까운 영화관, 골목 식당들까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는 이곳. 아주 보통의 하루를 보내던 그 시간들과 이별하는 마음이 들어 아쉬움이 더 컸다.
본래도 섬세한 친정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이런 내 마음을 벌써부터 알아챈 눈치였다. 그 넓은 집에서 남편도 없이 칼리토토 밤을 보내는 것이 괜찮겠느냐며 자꾸 집으로 오겠다 한다. 무릎이 성치 않아 오더라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만은 벌써 열차를 탔다. 내심 집으로 오겠다는 엄마가 고맙고 반가워 쉬이 거절을 하지 못했다. 쓸쓸한 마음을 조금은 달래 줄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곁에서 전화를 엿듣던 눈치 빠른 남동생은 '내가 나설 때구만' 싶었는지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칼리토토 갈게. 엄마보다는 칼리토토 가야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이럴 바에는 애초에 남편을 오라고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결국 남동생은 이사 전 날 잠 부러 내가 있는 곳까지 운전을 해서 왔다. 결국 요상한 가족 구성으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 것이다. 나와 아들 그리고 남동생 셋이서. 아무리 생각해도 낯설고 엉뚱한 조합이지만 남동생의 존재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이사 걱정과 새 집에 대한 기대와 설렘 등이 뒤섞여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일지라도.
그날 칼리토토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새벽녘에는 다시 잠들지 못해 한참을 뒤척였고 동이 틀 때쯤 꿈을 꿨다. 꿈속에는 길거리를 오가며 만났던 아이 친구들이 여럿 나왔고, 그중 한 명이 길을 잃고 울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말을 걸자 안심한 듯 미소를 짓는다. 아이를 달래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꿈에서 깼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어설프게 배운 후로는 꿈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해보곤 한다. 나의 개똥철학, 내 멋대로의 해석으로는 길을 잃고 우는 아이는 사실 나의 내면의 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또 한 번 낯선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것에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는 나. 현실의 내가 잠시 내면의 나를 만나 길을 찾아주고 안심시켜 준 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전학 가는 아이에 대한 걱정도 새롭게 적응해야 할 시간도 다 흘러가겠거니 다 잘 되겠거니 한다.
지금 시간은 6시. 이삿짐센터와 약속한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지금 당장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칼리토토을 쓰는 대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을 해본다. 이삿날 아침 말도 안 되는 여유부리기라는 걸 알면서도 누워서 전자책을 켠다. 기운이 좀 나는 책으로 희망이 담긴 책으로 신중하게 골라 읽는다.
"안주하고자 하는 칼리토토을 새로운 목표로 없애고 컴포트존에서 벗어나라."
오늘의 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도 한번 자기 합리화. 익숙하고 편안했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은 어쩌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고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띵동. 벨이 울리고 짐을 나르는 분주한 손길이 시작된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몇 가지 전달사항을 일러준 뒤 집을 나오니 칼리토토은 아직 8시 30분. 이 칼리토토에 갈 수 있는 곳은 얼마 없다. 고민 없이 맥도널드로 향한다.
집 앞 삼거리에 있는 맥도널드는 이정표 같은 곳이었다. 운전을 하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 때 멀리서 맥도널드의 노란 'M'자 모양이 보이면 '집에 다 왔구나' 했었다. 맥도널드가 보이면 우회전, 이건 내가 집에 오는 길을 설명할 때마다 늘 쓰던 단골멘트다. 식구들 아침밥을 먹이고 텅 빈 밥솥을 보다 우울해진 어느 날 혼자 들러 맥모닝을 먹으며 '잘하고 있다' 생각했던 곳. 이곳에서 칼리토토 아침식사를 한다. 어디 가나 쉽게 마주칠 흔한 프랜차이즈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지점에 올 일은 다시 없을테니까.
이십 대 때 일본에서 1년 정도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적이 있다. 출국 하루 전, 도쿄타워에 올라 도쿄시내 전경을 보며 말했었다.
'고마워, 도쿄야. 나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줘서 고마웠어.'라고.
오늘 난 또 한 번 같은 인사를 한다. 나를 받아줘서 고마웠다고. 신세 많이 지고 간다고. 정들었던 칼리토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