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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21. 2025

난생 처음 셀프 바로벳

씀씀이가 헤픈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알뜰한 편도 아니었다. 값비싼 명품이나 고급스러운 물건에는 관심이 없지만 다이소, 올리브영, 모던하우스는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아이 등하굣길에 길에서 종종 간식을 사먹었고, 주말 나들이를 갈 때면 매번 물 챙기는 것을 깜빡해 생수를 사 먹는 일이 많았다. 어디를 가든 외출하면 외식이 곧 공식이었다. 스타벅스 커피는 아니더라도 메가커피정도는 부담 없이 사 먹었다. 매주 소고기 파티는 못해도 일주일에 2~3번은 꽤나 배불리 외식을 했고, 배달음식도 종종 시켰다. 가장 예쁜 단발머리 기장을 유지하기 위해 두 달에 한 번꼴로는 바로벳 갔고 3개월에 한 번은 염색도 했다. 백화점에서 브랜드 옷은 사지 않아도 인터넷 쇼핑을 즐겼고 계절마다 자라, 유니클로, 슈펜 같은 SPA 브랜드에 들러 한두 벌쯤 옷을 샀다. 서점에 가면 반드시 한 권이라도 새책을 사왔고 그러면서도 쿠폰이나 적립혜택에 무심했다. 1+1 상품이나 세일품목은 잘 사지 않았다.


알뜰, 바로벳과는 거리가 먼 생활습관 덕에 눈에 띄는 큰 지출이 없음에도 빠듯한 생활이 이어졌다. 당연히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사는 것에 익숙했으므로 에어컨을 자주 켜거나 난방을 따뜻하게 했다고 해서 관리비 내역서를 꼼꼼히 살피지도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활, 이 정도도 못하고 사냐고 생각했던 패턴에서 한 발짝 물러나 '바로벳'을 다짐하고 보니 그동안 나는 꽤 풍족한 생활을 해온 건지도 몰랐다.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소득없이 1년을 사는 동안 제일 먼저 단발머리를 포기바로벳. 긴머리는 단발에 비해서는 자주 바로벳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배달어플을 지우고 대신 앱테크를 위한 앱을 깔았다. 텀블러를 사서 물을 싸가지고 다녔고, 중고 커피머신을 들여 카페 출입을 줄였다. 외식 대신 밀키트를 구입하고, 구독하던 패션 유튜버 채널의 구독을 취소했다. 전자책 구독서비스를 신청해 종이책을 사는 대신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고, 제일 먼저 세일품목에 가서 상태가 좋은 과일이나 고기를 골랐다.


이제 남편은 복직했고 예전처럼 매 달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겠지만 우리 부부는 1년간 만든 알뜰습관을 계속 유지하기로 바로벳. 아니, 좀 더 소비를 줄일 곳이 있다면 더 알뜰하게 살아보기로 바로벳.


그 일환으로 난생처음 바로벳약을 사 왔다. 새치라고 하기에는 양도 많고 기장도 길어서 바로벳서 정기적으로 염색을 해왔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3개월에 한 번 5만 원 주고 하던 염색을 9,900원짜리 염색약 하나로 끝낼 수 있다면 실패도 불사르겠다는 마음으로 덤볐다. 바로벳서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성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새삼 그동안 바로벳 쓴 돈이 아까웠다. 바로벳 앉아 커피 서비스를 받고, 수다를 떨고 남이 머리를 감겨주는 호사를 누리는 기쁨은 없어졌지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늘었음에 뿌듯했다.


바로벳


지방에서는 나름 부자동네라는 이곳에 살며 이른바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종의 사람들을 제법 만났다. 억대 연봉을 받는 맞벌이 부부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을 두 채 이상씩 가지고 있는 그들은 마음대로 돈을 쓰며 다닐 것 같지만 아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돈에 민감했다. 내가 생각없이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마실 때도 그들은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돈을 '써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그때는 아낌없이 썼다.


바로벳과 궁상의 차이는 그런 게 아닐까?


돈을 써야 할 때를 알고 올바른 곳에 적절한 돈을 쓸 수 있다면 바로벳, 써야 할 때도 쓰지 않거나 지나치게 야박하게 돈을 쓴다면 '궁상'.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바로벳과 궁상을 칼로 자르듯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바로벳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이제부터는 바로벳과 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알뜰하게 살아볼 예정이다. 그 끝이 내 집마련이든 신축 아파트이든 평수를 넓히고 학군지로 이사를 가는 것이든 간에 '돈'이 간절히도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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