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경기도 남부 도시로 이사 온 이후, 정말 웬만해선 서울에 나가지 않았다. 가는 것도 일이고, 오는 것도 일이고, 아무리 짧게 나갔다 오더라도 하루가 다 지나가므로. 그런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12월, 서울에 나가야 할 일이 자꾸 생긴다. 나갈 때마다 코어카지노를 위해서라는 엄청나게 긴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안고.
지난주 토요일에도광화문에 갔다. 내 목적지는 경복궁 근처. 을지로입구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시청역으로 걸어가는데 벌써부터 집회의 열기가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와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이 6-70대 어르신이었고 간혹 젊은 사람들이 보이는 집회 현장. 간이 의자에 앉아 있거나, 태극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들고 있거나, 엉뚱한 사람을 내란 수괴로 지목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
나와 의견이 첨예하게 다른 사람들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펜스에 앞이 가로막혔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여기까지가 그들의 자리이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저 멀리 위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혹시나 충돌하게 될까 봐 두 집회를 철저히 분리시켜 논 것이었다. 펜스를 따라 도로쪽으로 걸어간이후 며칠 동안 몇 번이나생각한책이 <코어카지노 랜드였다. 지난 11월에 읽은,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
이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그러니까 겨우 지난달만 해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신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지금 읽으면 불과 한 달 전과 다른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소설에서 미국은 두 코어카지노로 분리된다.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는 차라리 코어카지노를 분리하는 데 동의를 해버린다. 미국 내 대이동이 시작되고, 코어카지노은 자신이 지지하는 코어카지노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분리가 되었는데도 서로를 향한 적대감은결코 줄어들지 않은 가운데, 소설의 주인공인 '이 코어카지노'의 스파이가 '다른 코어카지노'의 스파이가 자신을 죽일 작전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더클러스 케네디가 자신의 코어카지노를 두 조각낸 건, 지금과같은상황이 지속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두 조각 나진 않더라도, 사실상 두 조각이 난 것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거다. 실제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 내전에 버금가는 대립에 빠져 있는 것 같다. 트럼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트럼프 지지자가 내전 운운하는 걸 본 적도 있다(트럼프 지지자는 내전도 불사하겠다고 말했고, 무기를 모으고 있기도 했다). 실제트럼프가 부정 선거 운운하는 바람에 그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들이닥친 사건도 있었고.
지금의우린 미국보다 더 극단적인 대립 상황에 놓여있는 것같다. 우리코어카지노의 상황을 '정치적 내전' 상태라고 하는 기사도 있으니.타협불가능의 상태. 대화 불가능의 상태. 지난 주말스쳐지나간코어카지노 중 한 명이라도 붙잡고 설득을 해본다면 과연 설득이 될까. 안 되겠지. 극한으로 상황이치달을수록 막연한 마음으로 바라게 된다. 이번 일이 잘 해결되길. 펜스 없이 만나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