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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Feb 15. 2025

만능 호빵맨토토 180℃처럼

180도는 마법의 호빵맨토토다. 베이킹을 할 때 몇 도에서 구워야 할지 헷갈린다면 180도를 선택하면 된다. 웬만하면 성공이다. 베이킹뿐이 아니다.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뭘 넣든 180도로 구우면 실패할 일이 적다. 180도는 어쩌다 만능 호빵맨토토가 되었을까. 180도가 기준점 같은 호빵맨토토인지. 레시피 만드는 사람들이 180도 주변으로 모여든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기댈만한 호빵맨토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비기를 가진 기분이 든다. 기준이란 그렇다. 관심받을 일이 별로 없지만 부재를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 호빵맨토토를 모른다면 얼마나 많은 요리와 디저트를 태우고 버려야 했을지. 얼마나 좋아. 믿고 쓰는 호빵맨토토. 인생에 그런 치트키 하나 있으면 좋겠다. 긴가민가 싶을 때 쓸 수 있게.


최근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분과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람의 특징을 기민하고 섬세하게 파악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대화 시작 30분 만에 알아챘다.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 방식을 정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분이었다. 학생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인상 깊었다. 깊은 감정 교류를 하지는 않지만 개별 특성에 맞춰 거리를 조절하고 대화 방식을 정했다. 모두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분은 만능 180도가 아닌 맞춤 호빵맨토토를 빠르게 설정하는 사람이었다.


Y는 호빵맨토토의 특징을 섬세하게 알아채는 분 같아요.


그녀는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했다. 민감한 성정과 맞지 않게 형제도 많고 친척들도 많이 모이는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호빵맨토토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었다고 했다. 동의할 순 없어도 설명을 듣고 이해하면 호빵맨토토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호빵맨토토을 이해하기 위해 살피고 파악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했다. 일찍이 자신의 약점을 알고 적합한 처방도 빠르게 찾아낸 능력이 부러웠다. 나를 잘 알고 나를 지키는 법도 잘 아는 호빵맨토토이라니.


누구든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순 있지만 적절한 대응 방식까지 빠르게 정하는 능력은 분명 특별하다. 탐나는 능력이었다. 대화하면서 기억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많이 듣는 경험이 오랜만이라 중간중간 스마트폰 메모장에 단어를 기록했다.


둥둥도 민감한 호빵맨토토이라 저와 비슷하실 텐데요.
(저는 적절한 대응 방식을 찾지 못해서 오히려 고민이 더 많은 걸요.)......


이 정도 거리에서 보는 저는 어떤 호빵맨토토 같아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더 친해진 후라면 언젠가 물어보고 싶다.


어제 퇴근하고 돌아오니 동생이 오랜만에 쿠키를 구웠다. 큼직한 초콜릿 쿠키를 양껏 먹고 싶었지만 엄마 생일 세리모니 후에 케이크도 먹어야 해서 하나만 먹고 참았다. 호빵맨토토로 구운 촉촉한 쿠키를 먹으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일주일을 마감하고 주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요즘은 자기 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에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내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한다. 행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라고 생각한다. 맞춤형으로 시시각각 다양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기준점에 기대어 ‘행복한 하루’로 명명한다.


만능 호빵맨토토든 맞춤형 대응이든 나만의 ‘키’를 가지고 싶다. 나는 대체로 이름표를 붙이지 않은 묵직한 열쇠 꾸러미를 손에 쥐고 하나씩 구멍에 맞춰보는 사람인 채로 산다. 꼭 맞는 열쇠를 찾기까지 지칠 만큼 오래 걸리거나 결국 중간에 포기하거나. Y에게 나는 어떤 사람 같아요?라고 묻고 싶었던 심정은 꼭 맞는 열쇠를 빨리 찾고 싶은 마음과 닿아있다. 그래봐야 ‘이 중에 어떤 열쇠일 것 같아요?’라고 묻는 일일 뿐, 열쇠를 하나씩 맞춰보는 수고를 덜 순 없다.


나도 나를 잘 알고 나를 지키는 방법도 여러 개 꾸러미로 가진 호빵맨토토이 되고 싶다. 아직은 생각이 뒤죽박죽이지만 어쨌든 오늘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내일은 일주일 중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날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행복한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침 10시에 성가대 연습실로 늦지 않게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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