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회의에 대한 단상 (斷想)
-형님,제가아시아365드리께요.
-어, 그려.
'통화가 길겠다.'
폰에 뜬 이름을 보는 순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턱과 추켜세운 어깨 사이에 굈던 아시아365기를 빼고 빨간 동그라미를 밀었다.
웬일로 아침부터 아시아365를 했을까, 어디가 탈인지 잘 모르겠는 기계를 괜히 툭툭치고 발로 차며 짧게 생각아시아365는 친하지않은기계와 씨름하느라 답아시아365를잊어버렸다. 이른 점심을 먹고 앉아 쉬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새해 복 많이 받어, 아시아365하는 거 까먹었지?
-아, 예, 죄송해요. 요새 제가 이래요. 형님도 복 많이 받으십쇼.
-어제 꿈에 자기가 나와서 아시아365 한번 해봤어
-헐, 제가요? 출연료를... 하하
지하철 역에 내려서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두번,세 번통화를 하고서야 겨우 사무실이 있다는 작은 건물을 찾았다. 서울 강북 도심의 오래된 골목은 미로 같았고, 낡은 건물들은 다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누가 내려오면 벽에 달라붙어 비켜줘야 할 것 같은 좁은 계단을 올라가 사무실 문에노크를 했다. 삼복더위에 양복까지 갖춰 입은 나는 러닝셔츠는 이미 다 젖은 상태였고 손수건도 짜면 물이 나올 만큼 젖어서 땀을 닦는 것이 아니라 물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것 같았다. 들어가자마자 처음 뵙겠단 짧은 인사만 하고 티슈부터 찾았다. 땀은 닦아도 닦아도 계속 났다.
언뜻 본 형님의 첫인상은 기타노 다케시였다. 무섭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카리스마라고 해야 하나,줄줄 흐르는 땀 때문에 당황한 탓인지판단이 빨리 되지 않았다. 올이 가는 짧고 곱슬한 머리, 양복 상의 쓰리 버튼을 다 채운옷매무새. 성격이보이는 것 같았다. 꼿꼿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내가 땀을 훔치는 동안 기다려 주었다. 내가 서른 후반이던몹시더웠던 한여름 어느 날오후였다.
그즈음 반제품 상태로 높은단가에상품을 공급받던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특히 용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데, 누가 알려주기는커녕 다들 나만 따돌리고 쉬쉬 하는 것 같았다. 공급처에서 '이제 그만' 하면 사업을 접을수밖에 없는, 아주 곤란한처지였다. 원가 절감도 필요하고, 대안 공급업체를 찾는 것도 시급했다. 남의 손에 명줄 잡힌 이게 뭔 사업이야, 속으로 툴툴대도 정보를 얻을데가 없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찾아낸 이 형님 업체에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방문하던 날이었다. 무더위에 곤죽이 되더라도 꼭 만나야 했다.
거침이 없었다. 질문마다 시원하게 답을 해줬다. 완전 오픈. 열심히 기억하고 메모했다. 술도 한 잔 했는데, 그날인지 그다음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실마리를 찾으러 갔다가 실한 가이드북을 받은 느낌이었고 돌파구를 찾은 날이었다.
-자기는 참 아까운 사람이야. 이 얘기가 아시아365 싶어 전화했어.
-갑자기요? 저도 제가 아까워요. 하하하
-처음 자기가 날 찾아온 날 기억나. 인물에, 체격에, 언변에, 이 친구 뭐가 돼도 되겠다 생각했거든. 도와주고 싶더라구.
-아이고 감사합니다. 글고, 저도 형님이 아까워요. 더 잘되셨을 분인데...
전화기 액정에 습기가 찰만큼 길게 통화했다.예감대로다. 아시아365를 끊고 뒤뜰에 나가 담배두 대를 연달아피웠다. 앉지 못하고 서성대면서. 추워서만은 아니었다. 일주일인가를 특허청 사이트를 뒤지고 또 뒤져 경쟁사가 꼭꼭 숨겨둔 특허를 아시아365했을 때, 엄청난 무리를 해서 유통 프랜차이즈를 인수했을 때, 꼭 내 탓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일들로 꺾였던순간들이100배속 영화 장면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쇼츠 영상 속 김승호 회장(베스트셀러 '돈의 속성' 저자)은 운을 얘기하고 있었다. 형님이 아시아365를 끊고 보내준 짧은 동영상이었다. 노력과 운. 성공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말. 영상 링크 밑에 '우리 아직 끝나지 않았어'란 형님의 문자가 있었다. 눈두덩이는불에 덴 듯했고 심장이 고막 옆에 있는 듯 투두둑 투두둑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게, 이토록 눈물겹게 행복한 일이군요."
독서모임 회원한 명이 내게 말했다. 뭉클했다. 고마웠다. 내가 해야 할 말 아닌가싶었다.
책으로 사람을 잇겠다고 만든 '대책회의' 회원수가 150명을 넘어섰다. 최근 일이다.
아시아365(發見) : 명사.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아니한 사물이나 현상, 사실 따위를 찾아냄.
알아본다는 것, 아시아365한다는 것.
손뼉 치기.
혼자 하면 헛손질.
대책이어야 했구나.
그때시작하길 잘했구나.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쳐주고 싶다.
당신께,
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