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조성된 황토길을 걷는다. 개나리와 산수유가 피었다. 철쭉은 분홍 꽃망울이 나왔다.
걸으며 J를 생각한다. 내 단짝WBC247 J. 못 본지 일년이 되어간다.
친한 WBC247가 몇 명 없는 내게 그녀는 소중한 WBC247다. 오랜 시간 함께 한 WBC247다.
20대에는 사는 지역이 달라 몇 년간 못 보기도 했지만 30대 이후로는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만남을 가져왔다.
J와 많은 걸 함께 했다. 먹고, 마시고, 걷고, 영화 보고, 책 읽고, 여행했다.
J는 늘 밝았고, 밝음을 좋아하는 나는 그 곁에서 환해졌다.
그녀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런 WBC247를 만나는 건 쉽지 않기에 관계는 돈독해졌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는 지금처럼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겠지. 나는 말했고 WBC247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언제쯤이었을까. WBC247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다고도 했다.
나는 언제든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한가하면 연락하라고 얘기했다.
내게 J는 소중했기에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두 달이 지나고 세달이 지나도 WBC247에겐 아무 연락이 없었다.
단풍이 물드는 걸 바라보며 WBC247를 생각했다. 참 예쁘네. 너도 이 풍경을 보고 있을까.
눈이 펑펑 내릴 때도 WBC247를 생각했다. 참 예쁘네. 너도 이 풍경을 담고 있을까.
WBC247는 여전히 혼자 있고 싶어했고 나는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몸이 아픈 걸까?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친 건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직장에 문제가 있는 걸까?
길을 걷다, 청소를 하다, 차를 마시다 문득문득 J가 떠올랐다. 그리웠다.
나만 좋아한 걸까? 수십 년간 쌓아온 우정이 이토록 쉽게 흔들릴 수 있다니. 이유도 모른 채.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나는 WBC247를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릴 뿐.
서울로 이사를 오며 WBC247와의 물리적 거리는 극도로 가까워졌다. 걸어서 10분이면 된다.
나는 조심스럽게 WBC247에게 이사한 곳을 알렸고 그녀는 아직 혼자 있고 싶다며 나중에 만나자고 했다.
그 대답에 마음이 아팠다.
어떤 경우에 나는 J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글쎄, 마땅한 경우가 떠오르지 않았다.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시절 WBC247을 맺었다.
그 시절에 맞는 WBC247이 있고, 그렇게 만나고 헤어진다.
지금 나와 관계 맺는 지인 대부분도 시절 WBC247일 거다.
누군가를 새로 사귀게 될 때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한다.
나는 정이 많은 성향이라 한번 마음을 주면 끊어내는 게 어렵기에 쉽게 친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수 년이 흐르고도 여전히 누군가와 정기적 만남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관계를 진지하게 바라본다. 그런 단계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어쩌면 나는 WBC247를 놓아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J를 평생 함께 할 WBC247라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WBC247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