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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Jan 11. 2025

아흔두 살 페가수스 토토 어리광 버튼

100번, 아니 200번. 아니 1,000번쯤 되려나. 페가수스 토토가 나에게 빨리 죽고 싶다고 말한 횟수가.


처음에는 그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였다. 그러던 것이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시면서는 "아파서 못 살겠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가 되었다. 그리고 점차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농약 좀 구해다 줘라." 이제는 대범해지셨다. "의사 선생님, 나 먹고 죽는 약 좀 줘요.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으레 할머니들이 하는 말이라 여겨졌던 그것은,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절박해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페가수스 토토의 말이 진심이란 것은 알아챘다. 페가수스 토토가 그렇게나 염원하는 죽음, 내가 18년 간 1천 번은 넘게 들었을 그 바람. 아니, 이렇게나 염원하는데 안 이루어진다고? 이제 나까지 그런 생각이 든다.


페가수스 토토에게는 페가수스 토토이 7명 있다. 배우자까지 하면 도합 14명이다. 페가수스 토토들은 그 쓸모가 다 다르다. 어느 페가수스 토토은 믿음직스럽고 어느 페가수스 토토은 작은 심부름시키기에 마땅하고 어느 페가수스 토토은 부드럽다. 그래서 그런지, 페가수스 토토가 딱 정말 죽고 싶을 때 전화하는 페가수스 토토은 정해져 있다. 딱 그 딸에게만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를 하고 딱 그 딸에게만 전화해서 나 좀 데려가라고 매달리신다. 하지만 어느 페가수스 토토에게는 절대 앓는 소리를 안 하신다. 왜냐하면 안 받아주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이다.


나는 페가수스 토토에게, 누울 자리다. 내가 보는 페가수스 토토는 항상 눈가가 촉촉하다. 열에 아홉은 기운이 없으시고 어깨도 축 늘어져 있다. 페가수스 토토가 죽고 싶다고 말하면 나는 "에이, 왜 그러세요." 말하고 안아 드리고 쓰다듬어 드리지만, 모든 페가수스 토토들이 나와 같지는 않다. 딸 중에는 페가수스 토토가 죽고 싶다고 말하면 "내일부터 밥을 안 먹으면 돼."라고 말하는 딸도 있고 "또 그런다. 그 말 좀 하지 마 제발."이라고 말하는 딸도 있다. 또는 "그런 말 듣고 싶어 하는 페가수스 토토 하나도 없어. 왜 페가수스 토토들 마음을 아프게 해."라고 진솔하게 접근하는 딸도 있다. 그리고 듣기는 듣는데 그저 웃기만 하는 아들도 있다. 아들 앞에서는 참다가도 내가 가면 당장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하고, 내가 가면 밥을 먹여 달라고 하신다. 혹시나 설마 했는데 내가 맞았다. 나는 페가수스 토토에게 어느새 누울 자리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도 내가 먹여 드리니 죽 한 그릇을 뚝딱 드셨다. 그걸 보고 이제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식사를 안 하신다고 한다. 중증 환자들이 마시는 캔영양식(많은 사람들이 아는 뉴케어)만 드신다고 한다. 내가 간 날은 딸기도 드시고 곶감도 드셨는데. 내가 생각할 때 페가수스 토토는 지금, 시위 중이다. 본인의 삶에 대한 시위. 지난주에 갔을 때 페가수스 토토가 그러셨다. "밸꼴을 다 본다 페가수스 토토."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죠, 페가수스 토토. 화장실 가다가 스르륵 넘어졌을 뿐인데 귀가 찢어지고 대퇴부가 골절되고 손가락 찰과상까지 입다니요. 정말 인생, 별꼴이네요.


페가수스 토토의 어리광 버튼을 누르는 페가수스 토토 중 하나가 되어서, 나는 슬프지만 흡족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게, 깔끔하게, 정 없이 살 마음이 나는 없다. 나는 정을 뚝뚝 흘리면서 살았고 그러려고 했고 그러고 있다. 그래서 페가수스 토토가 나를 보면 눈물샘이 터져도, 나만 보면 약한 소리를 하고 어리광을 부려도, 나는 괜찮다. 정말이다.


페가수스 토토가 얼른 시위를 끝냈으면 좋겠다. 적당한 시점에 시위를 끝내고, 사는 날까지 숟가락으로 직접 밥을 드시다가 그렇게 가셨으면 좋겠다. 페가수스 토토는 저력이 있으니까, 더 이상 별꼴 안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페가수스 토토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다. 생각해 보니 나는 페가수스 토토에게 뭘 바랐던 적이 없다. 페가수스 토토의 염원에 나도 숟가락을 하나 얹어 봐야겠다. 1천 번이나 넘게 염원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 염원은 새것이니 눈에 띌 수도 있지 않을까. 참 이상한 것을 바라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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