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어서 킹무원이 되었습니다 Vs. 죽기 싫어서 좋무원을 때려칩니다
[신규 공무원 임용식 2층 대강당]
'맞아! 신규 임용 공무원! 그게 바로 나야! 뭐, 곧 마흔 되는 노땅 신입이긴 하지만, 그런 게 뭐 대수야? 내가 공무원 된 게 대수지! 하하! 기분 죽이네!'
강당 안에 들어선 주 홀덤 용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강당 안 거대한 공기가 이전 다녔던 좋소기업과는 급이 다름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전 직장에서는 종무식, 시무식 뭐 이런 행사도 강당,
아니 강당이 다 뭐야?
아예 그런 공간도 없어서 작은 사무실 가운데 옹기종기 동그랗게 서서 초라하게 했었다.
'와!! 역시 홀덤 용어 최고다!'
주 홀덤 용어는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 나가 상하좌우 위아래 옆 뒤로 나댈 것만 같은 심장을 꾹꾹 억누르며 강당 맨 앞줄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렇게 맨 앞에 앉으면 그래도 시장님이랑 악수라도 한번 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나이 먹고 이 관종끼가 공무원 생활에 도움 될 거 같진 않은데….’
그때 딱 봐도 공무원인 티가 팍팍 나는 검정 스커트 치마를 입은 여성 공무원이 단상 앞에 서더니 임용식 시작을 알린다. 주 주사가 문득 고개를 뒤로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자신의 뒤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많은 수의 까만 정장들이 보였다.
‘동기가 59명이랬지? 경쟁률이 무려 300대 1. 내가 그 무시무시한 숫자를 꺾다니. 이렇게 멋진 공무원이 돼서, 이렇게 멋진 강당에서, 이렇게 죽여주는 임용식에 앉아 있다니! 하하!’
까만 정장을 입은 동기들을 실제로 눈으로 보니 진짜 공무원이 된 게 새삼 실감 났다. 조용히 무대 단상을 올려다보는 그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도 저런 얼굴, 저런 눈빛이겠지? 첫 직장이 공무원이니 얼마나 좋을까? 좋을 테지~ 암~’
전 직장에서는 회장, 사장, 전무, 상무, 이사, 팀장, 차장, 과장, 대리뿐, 동기라곤 없었다. 공채는커녕 그때그때 필요할 때 부품 갈아 끼우듯 사람을 뽑고 자르고 해 대는 좋소기업 종특이었으니까.
그래서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그저 혼자 꾸역꾸역 참아내야 했다. 드라마‘미생’에서 봤던 동기들과 으쌰으쌰 하는 장면이 회사 생활에서 당연할 줄 알았건만,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었다
‘오히려 드라마 속 김치로 뺨따귀 맞는 장면이 당연하면 당연했지. 망할 회사! 때려 치길 백번 잘했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제 공무원이다. 그것도 무려 50명이 넘는 동기와 함께하는 귀여운 신입 공무원!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주 홀덤 용어는 들든 마음을 억누르며 간신히 임용식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약간의 설렘을 갖고 기다려봤지만, 안타깝게도 시장님과 직접 악수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아. 뭐, 내 능력이면 언젠가는 시장님이랑 호형호제… 까진 아니어도, 악수 정도는, 언젠가!’
사회자의 잠시 대기해 달라는 말과 함께 강당 안이 갑자기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주 홀덤 용어님? 주 홀덤 용어님!!"
주 주사? 발음도 뭔가 이상한 주 주사라는 단어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강당 뒤쪽에서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 같이 목에 건 공무원증이 반짝이고 있는 걸로 보아 공무원들이 분명했다. 그들은 “김 주사님! 고 주사님! 하 주사님!” 하며 한참을 소리쳐 불러대고 있었다. 그 소리에 동기 공무원들이 하나, 둘 그들을 따라 사라져 버린다. 가만 보니 주사란 게 사기업에서 차장, 과장, 대리처럼 직급을 부르는 호칭인 것 같다. 그럼, 주 주사는…. 자신을 부르는 게 분명했다.
주 씨는 흔하지 않으니.
"저기…. 제가 주 씨 이긴 한데, 혹시…. “
"아! 주 홀덤 용어님? 드디어 찾았네!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바로 우리 과로 내려가실게요!"
주 주사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앳된 여성 공무원이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아, 너무너무 설렌다. 팀에 처음 가는 이 순간! 전 직장에서는 이런 게 없었단 말이지. 신입 때만 누릴 수 있는 이 멜랑꼴랑 오묘 말랑 한 설렘! 최고야!’
그녀를 따라 2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작다. 자신의 전 직장보다 사무실도 작고, 책상도 작고, 의자도 작아 보였다. 응당 사무실이라면 있어야 할 책상 좌우 앞을 막아주는 파티션도 없다.
'촌스럽다.'
삐까번쩍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서울 10층 빌딩에서 근무하던 사무실과 비교했을 때, 딱 이 네 글자가 머리에 스쳤다. 게다가,
‘저 태극기는 뭐야?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도 하나?’
다 낡아빠진 나무 액자 틀에 갇힌 태극기가 벽 한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자신의 이런 마음을 들킬까 싶어 주 주사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자리에 앉아 업무 중인 공무원들을 살펴본다. 따닥따닥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답답해졌다. 아침 주차장에서 봤던 차 안에서 시간 때우기 하던 병든 닭 같다. 공무원인데. 무려 그 좋다는 공무원인데 왜 저렇게 맥아리들이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쪽이 저희 과 과장님이세요. 과장님, 이분이 오늘 새로 발령받은 주 홀덤 용어….”
주 주사를 사무실로 데려온 공무원이 공손히 말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주 주사의 눈앞에 다부진 체구의 흰머리 지긋한 어르신이 눈을 반짝이며 주 주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반가워요! 잘생기셨네! 그래, 나이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 회사라도 다니다 온 건가?”
갑작스러운 그의 호탕한 목소리에 주 홀덤 용어는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에 줄줄 흐르는 광채가 유독 빛나 보였다.
‘그렇지! 공무원 생활 몇십 년 하면 이렇게 호탕해지는 거겠지! 늘 구부정한 자세로 아무 의욕 없이 멍한 눈만 끔벅이던 전 직장 팀장과는 차원이 다르네!’
과장이라는 그의 호탕한 웃음에 주 홀덤 용어는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자신도 나중에는 그처럼 멋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 네 과장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간신히 눌러왔던 들뜬 심장이 기어코 사무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소리를 치고 만다.
‘하하!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역시 너무 좋다! 역시 공무원! 역시 갓무원! 역시 킹무원!! 최고다!!!’
심장이 소리를 지른 것만으로 모자랐는지 계속 쿵쾅쿵쾅 나댔다. 이 좋은 공무원을 요즘 왜들 그렇게 그만두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 박 홀덤 용어, 여기로 좀 와봐요."
주 홀덤 용어가 간신히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과장이 누군가를 부른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주 홀덤 용어의 시선에 자신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헉! 저 놈은?!’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