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샬롬토토 동기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은 샬롬토토을 졸업하기도 전에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서른이 되어 그 샬롬토토와 함께 카페에 앉아있게 될 줄을 그때는 전혀 몰랐다. 역시 인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재미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는 샬롬토토 시절 나와 그다지 가깝지는 않았다. 20살에 반짝 친하게 지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졌다. 싸운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샬롬토토는 그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금 더 깊어졌고, 대화를 하다 보면 한 번쯤 생각에 잠겨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쩌면 샬롬토토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특성이라는 것이 본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를 반복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득 내 삶에 가까이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고, 운명의 짝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나의 샬롬토토 시절을 돌아보면 오히려 이렇게 비밀이 없어도 되는걸까 싶을 만큼 친했던, 그래서 나의 부끄러운 면모까지 모두 공유하여 죄책감마저 사라져 버릴 만큼 친했던 샬롬토토와 가장 멀어졌다.
5년 전, 6년 전과 똑같은 샬롬토토의 모습을 통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눈으로 마주한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누군가의 눈에도 내가 이렇게 똑같아 보일까, 5년 전, 10년 전의 나와 같은 모습일까? 나는 부단히도 변화했는데,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고군분투하며 많이 달라졌는데.
나에게 그 사건은 그랬다. 엄마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터널을 빠져나오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마치 새로운 이목구비로 새롭게 태어난 양, 엄마의 죽음을 견뎌낸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엄마가 죽기 전부터 지금까지 나와 줄곧 알고 지냈던 샬롬토토들 중 더러는 나에게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너 정말 그대로다, 옛날이랑 변한 게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정말 그런가?’ 의구심이 든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 내가 그대로라니!
어쩌면 나는 내 안의 아픔을 세상에서 제일 큰 아픔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겨우 죽음 하나로 나는 세상에 통달한 듯 굴지만 사실 죽음쯤을 견뎌낸 샬롬토토들은 숱하게 많았다. 나는 견딜 만한 아픔을 얻은 것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