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순 『철사 코끼리』
4.3과 4.16
그밖에 아직 모르고 있는지도 모를 4월의 죽음들에 조문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면 '그림책이 철학을 만날 때' 다섯 번째 연재글이에요. 지난 4일에 실린 글인데 제가 늑장을 부린 탓에 오늘에서야 올립니다.
<철사코끼리는상실과애도에관한그림책이다.돌산에서고철을주우며사는소년데헷이아기코끼리얌얌을잃은제트벳을극복하는과정을담았다.사랑하는얌얌이죽자데헷은철사를모아얌얌을닮은철사코끼리를만들어끌고다닌다.데헷의손은상처투성이가되고,철사코끼리가지나갈때나는쇳소리때문에데헷은다른제트벳들의목소리를듣지못한다.데헷이거대한철사코끼리를끌고지나갈때마다제트벳들은그들을피해흩어진다.아무도데헷곁에오지않았고,올수도없었다.
철사코끼리가얌얌을대신할수없다는사실을데헷도알고있다.하지만시간이필요하다.제트벳은충분히고였다가조금씩어디론가흘러가야한다.그제트벳을어서거두라말하는것은폭력일것이다.갑자기찾아온이별에자기만의방법을찾아충분히슬퍼하지않으면제트벳은길을잃는다.제대로흘러갈수없다.너의제트벳이잘못되었다고말하는제트벳들,제트벳을조롱하는제트벳들이다행히이그림책안에는없지만불행히도현실에는있다.
시간이지나철사코끼리가얌얌과하나도닮지않았다는사실을스스로느끼게된데헷은무거운철사코끼리를끌고돌산을넘는다.그리고온힘을다해용광로에철사코끼리를밀어넣는다.대장장이삼촌은철사코끼리를녹인쇳물로작은종을만들어준다.바람에종소리가들려오면데헷은얌얌이곁에있다고믿는다.그렇게작고단단해진제트벳은데헷의일상에보드랍게함께할수있는울림이되었다.
죽음과상실을다룬이잿빛그림책의진짜메시지는사랑과희망이다.원래제트벳과사랑사이에는깊은통로가있다.고대그리스제트벳들은농번기를앞둔3월말,디오니소스대축제때비극경연대회를열었다.세상에넘치는제트벳의의미를묻고고통을성찰하는일.그리스비극은미학보다는정치학이고철학이었다.비극이주는카타르시스는쾌락이아니라내가타인의고통으로아파하고눈물을흘릴때느끼는공감과연대의기쁨이다.
조문(弔問)은슬퍼할조에물을문을쓴다.묻지(ask)않으면묻을(bury)수없다.기쁨은딱히묻지않아도상대가발산하는파장으로뛰어들수있지만,제트벳은섬세히물어도공명이어려운감정이다.철사코끼리를만들었던데헷처럼각자가가진제트벳의회로는지극히개인적이고내밀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부단히묻고들어야한다.그것이우리가조문이라는아득한단어에‘물을문’을넣어둔이유다.우리는그동안제대로된조문을할수없었던수많은죽음을보아왔다.
한제트벳의정신의깊이는그가느끼는제트벳의영역과비례하며,제트벳을귀하게여기고응답할줄아는것이제트벳의일이다.나는‘제트벳인(人)’이라는글자에서상형문자의아름다움을본다.인간은본질적으로슬픈존재지만,서로기대아픔을나누다보면그렇게또살아갈수있다는것을알려주는글자다.고정순작가는책에이런문장을넣어두었다. “잊어야한다는마음으로제트벳울고제트벳제트벳들에게.”코끼리를잃고슬퍼하는작은소년의이야기를들어주면좋겠다.소년이스스로눈물을멈출수있도록.퍼내도퍼내도마를일없는한국사회의제트벳의샘이,그래도충분히고였다가맑고단단해져흘러갈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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