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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민 Feb 03. 2025

[블랙잭 용어 詩선] 1월의 시

한줄로 블랙잭 용어

블랙잭 용어(시어나 띄어쓰기 등은 편집 기준에 따라 원문과 다르게 표기될 수 있습니다)


늦은 새해 인사 드립니다. 모두들 복 많이 받으시고, 복 많이 지으시고, 평안하시기를요.

올해 <고교 독서평설 필진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청소년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블랙잭 용어 詩선'이라는 코너를 맡았어요.한 해 동안청소년들과 나눌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6월까지는 확정된 것이고, 그 이후로는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1월 김용택, '한줄로 블랙잭 용어' (+ '울고 들어온 너에게')

2월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양파'

3월 이문재, '꽃말' (+ '봄날')
4월 함민복, '수목장' (+ '반성')

5월 메리 올리버, '기러기' (+ '세 가지를 기억해 둬')

6월 이창숙, '고만례 할머니와 놋양푼 아줌마'

7월 정병근, '보내지 않은 말'

8월 안희연, '열과'

9월 김혜순, '물음표 하나'

10월 로버트 프로스트, '담장 수선'

1블랙잭 용어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혹은 '메타포의 질량'
12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독서평설 측에서 해당 월이 지나고 나서 본문을 이곳에 게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어요. 한 해 동안 차곡차곡 쌓아둘 테니 가끔 놀러 와 주세요 :)


[1월의 시] 한줄로 블랙잭 용어


우리가 손에 쥐고 사는 그 한 줄


[한줄로 블랙잭 용어]

– 김용택,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 2016)』에서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블랙잭 용어 땅을 밟고 있었다.

내가 낯설었다.

낯선 내 얼굴이

나는 좋았다.

그가 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블랙잭 용어.


시 좀 한번 잡숴 봐요


고교 독서평설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전에 ‘블랙잭 용어자의 마음 상담소’라는 연재로 1년간 여러분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는 독자가 있다면, 올해 시험에서 찍는 문제마다 정답률이 수직 상승하라고 독일에서 탄산수를 한 잔 따라 놓고 치성을 드릴 예정입니다.


여러분은 시를 좋아하나요? 좋아한다고 손을 번쩍 들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궁금하군요. 저도 여러분 나이 때는 시 보기를 최영 장군님이 황금 보듯 했으니까요. 소설 읽는 것은 무척 좋아했지만, 시집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시는 그저 멀뚱멀뚱 보다가 자 이제 해체해 볼까, 하고 마치 눈앞의 삼치구이 대하듯이 연필을 젓가락처럼 갖다 대는 문학 장르였지요. 그렇게 발려지고 조각조각 분해된 채 식은 생선살은 별로 풍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시를 무척 좋아하고 즐기지만, 제가 국어와 문학 시간에 만난 시는 단지 문제풀이를 위해 의무적으로 분석하는 대상에 그쳤던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이 시를 그렇게 삼치처럼 토막토막 잘라다가 (삼치는 겨울이 제철입니다 여러분, 많이 드세요.)시적 화자가 어떻고, 시상 전개 방식이 어떻고, 형태소 하나까지 잔가시 발라내듯 조목조목 헤쳐가며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분석적으로 공부해 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부담 없이 그저 맛있게 음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눈앞의 삼치구이에 코를 대고 맛있는 냄새를 맡아보고, 이 물고기는 어떻게 내 앞에 놓였을까 이런저런 생각도 뻗어보고, 때로는 허공을 바라보는 그 슬픈 눈을 오래 바라보기도 하고, 속살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천천히 시간을 보냈으면 해요. 무엇보다 여러분이 그냥 시를 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찬란한 나이에 시를 좀 쓰면 더 좋겠고요!)


철학자 양반이 웬 시냐고요. 시와 철학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아요. 철학은 본질적으로 질문의 학문인데, 시를 읽는 것도 딱히 주어진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시어 위에다 내 물음표를 씨앗처럼 점점이 뿌리는 일과 비슷하거든요. 그 물음표가 자라나서 느낌표가 되기도 하고, 꼬리를 슬며시 없애고는 마침표가 되기도 하고, 더 큰 물음표로 쑥쑥 자라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시는 우리를 생각하게 해요. 시에는 여백이라는 날개가 있어서, 그 날개로 우리를 먼 곳까지 데려다주거든요. 우리는 그 여백 안에서 다양하게 해석하고 느낄 자유가 있기 때문에, 또렷한 정답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철학과 여백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볼 수 있는 시는 결이 꽤 비슷한 친구예요. 시인은 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시를 읽는 사람은 그 여백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한 줄로 블랙잭 용어고?


김용택 시인의 <한줄로 블랙잭 용어를 첫 시로 고른 이유는 여러분이 글 한 줄의 힘을 느껴보았으면 해서입니다. 그냥 끄적거리는 한 줄의 글. ‘아니 글 한 편도 아니고 한 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딱 한 줄이면 될 때가 있거든요. 시인은 “한줄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다른 땅을 밟고 있었다”라고,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 쓰고 난 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여러분 나이라면 아마 국수를 삶아 본 적이 있겠죠. 아직 없다면 이번 겨울 방학에 한번 도전해 보기 바랍니다. (거기 라면 물 올리려는 학생, 라면 말고 국수요!) 국수를 넣고 끓이면 잠잠하다가 갑자기 훅 끓어올라 물이 냄비 밖으로 넘치려는 순간이 있는데요. 그때 찬물을 조금 부어주면, 사납게 끓어오르던 거품이 단숨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착 내리고 가라앉는 걸 볼 수 있어요. 한 줄을 쓴다는 건 그런 겁니다. 그렇게 말을 고르고 배열해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으면, 희한하게 안에서 보글보글 끓던 것들이 물 한 컵 부은 듯 가라앉습니다.


제가 여러분처럼 교복 입은 학생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저는 예전부터 말보다는 글이 편한인간이어서 제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종이에다 조용히 한 마디씩 쓰곤 했어요. 가족에게 서운했던 감정, 큰 시험을 앞두고 느끼는 불안, 막연한 미래에 관한 의문, 누군가가 궁금해지는 간질거림 같은 것을요. 정말 딱 한 줄로 다른 땅을 밟는 경우를 그 시절에 저는종종 경험했습니다. 마음에 뭔가 차고 넘쳐 어쩔 줄 모르겠을 때 그냥 딱 한 줄 적으면 마음이라는 끓는 냄비에 찬물 한 컵을 부은 듯 바로 가라앉을 때가 있었거든요.


친구에게 털어놓기 부끄러운 말들,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발칙한 생각, 때론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들끓는 그런 감정들을 종이에다 옮기는 것은 제가 스스로를 상담하는 시간 같았어요.어쩔없는심정이되었을,마음속에찰랑거리는것을질질흘리며연습장을 펴면 그 하얀 종이들은자비로웠습니다.말없이안아주고,그곳에버리고싶은것들을쏟아 놓고가는허락해주었죠. 표현이 어렵거나 차마 글로도 적지 못하겠을 때에는 그저 반복해서 선을 긋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종이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그렇게그곳에생각의눈덩이를굴리다버려두대체로기분이나아지고는 했어요. 너무 좋아서 입에 담기도 아까운 것들을 종이 위에 적어두고 몰래 펴보는 건 꼭 보석이 든 나만의 비밀 금고를 가지는 일 같기도 했고요. 그렇게 어떤날은우울해하고 어떤날은두려워블랙잭 용어,어떤날은그저기쁘고 행복해하며 종이 위를걸었어요. 그렇게 저는 펜으로 제 마음을 깎고 다듬으면서 스스로에게 ‘살아보라’고 다독거리며 그 시간을 지나온 것 같습니다.


낯선 얼굴로 블랙잭 용어 땅을 밟는 일


시인은 한 줄을 쓰고 나면 블랙잭 용어 땅을 밟게 된다고, 낯선 얼굴을 한 나를 만나게 된다고 해요. 그 낯선 얼굴이 나를 향해 ‘살아보라’는 말을 건넨다고 하죠. 저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것 같아요.


내 안의 어떤 것을 언어화하는 순간에 나는 내 감정과의 거리를 확보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강아지처럼 앞에 두고 살살 쓰다듬을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을 잠깐 꺼 두고 싶은 마음. 그걸 종이 위에 한 줄로 적어 두면, 나를 괴롭히던 것이 이제 내 안에서 나와 종이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글자라는 모습으로 눈앞에 놓인 나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기에, 그 모호하고 복잡한 감정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약간 생겨납니다. 내 안에서 나온 강아지는 때론 사납기도 하고, 때론 더럽기도, 때론 아프고 가엾기도 해요. 하지만 그 강아지와 조금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괜찮아, 또 살아보자'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아까의 나는 그 강아지가 되어 저쪽에 있는 셈이고,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이쪽에 있어요. 아마 시인은 그걸 두고 “내가 낯설었다”라고, “낯선 내 얼굴이 나는 좋았다”라고 말했을 거예요. 그렇게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 한 줄의 글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나온 강아지를 관찰하듯,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나를 관찰하고 세상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그걸 흙처럼 깔아 두고 그 위에 둥둥 떠서 상상을 펼칠 수도 있고요.『나니아 연대기』를 쓴 작가 C. S. 루이스(C.S. Lewis)는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그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내가 관찰한 것을, 혹은 상상한 것을 쓰다 보면 뭔가 기분 좋게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느낌. 글쓰기 전의 나와 글을 쓰고 난 뒤의 내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내가 계속 낯설어지는 건 계속 내가새로워진다는 뜻입니다.꾸준히 나를 낯설게 만드는 건 사실 블랙잭 용어에서도 인생에서도 지극히 중요한 행위입니다. 낯설어야 달라지니까요. 다른 땅을 밟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다른 땅을 밟아야 우리는 전진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늘 전진할 필요는 없지요. 항상 달라지거나 새로워질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스스로 달라지거나 전진하고 싶다면, 그 첫걸음은 바로 나라는 인간이 담긴 그 모든 익숙한 것에서 빠져나와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굳이 색다른 경험을 하지 않아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가장 빠르게 낯선 나를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글쓰기이고요. 제가 ‘글 한 줄’의 힘을 말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 말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니, 여러분을 유혹하기 위해서 이 시를 블랙잭 용어 문장들로 조금씩 풀어놓은 작가들의 말을 모아봤습니다.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 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서


시를 매일 쓰면, 내면의 코어가 강해져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겨도 그것을 시의 세계로 데려와 해부하고 언어와 상상을 버무려 문자로 바꿔놓으면, 잠시 동안 세상이 종이 한 장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에서 아름답게 비틀린 사건들, 불행들, 아픔들. 그것들이 내 두 팔 아래에서 사그라들고, 다른 모양으로 숨을 쉬지요. - 박연준, 『쓰는 기분』에서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에서


어떤가요. ‘한 줄을 쓰는 힘’이 참 아름답고 벅차게 느껴지지 않나요?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한 줄을 쓰는 힘으로 살아 나가기를, 벽에다 펜으로 그린 문을 열고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요. 하지만 당장에 쓰는 것이 그리 익숙하지 않다면, 한 줄을 읽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고 거기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제가 시를 들고 여러분을 찾아온 이유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또 블랙잭 용어 시, <울고 들어온 너에게라는 시가 있어요.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이 짧은 시에서처럼, 여러분이 꽝꽝 언 들을 헤매다 오더라도 시의 아랫목에 손을 넣고 그 온기로 따뜻해지기를 바랍니다.


한줄로 블랙잭 용어


<한줄로 블랙잭 용어는 제목을 보면서 '나의 삶이 한 줄로 요약된다면?'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늘이지 않고 핵심을 찌른다면 그 말은 무엇이 될까. 무의미한 말들을 내뱉고 부연설명을 늘이는 일상에서 핵심을 찌르는 한 줄을 찾는 것, 그것이 삶의 자세가 되어도 멋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쓰면서 늘 들었던 말이 "그래서 네 논문을 한 줄로 얘기하면 뭐야?"였거든요. 만만치는 않지만 내가 쓴 이상 대답할 수 있어야 했던 질문. 우리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만만치는 않지만 내가 살아온 이상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 그 한 줄.


중요한 문장을 쓰기 위해 이 문장 저 문장 써보는 것처럼, 한 줄씩 쌓으며 다른 땅을 밟다 보면 결국 나를 설명하는 바로 그 한 줄을 향하게 되지 않을까요? 여섯 권의 책을 쓰고 또 한 권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저는 사실 책을 낼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합니다. 세상에 이토록 많은 내 문장을 내놓는다는 것, 과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일까 하고요. 하지만 실수가 섞이고 무의미한 말이 난무하더라도 그 무수한 한 줄이 모여서 내 삶을 그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계속 가고 있습니다.


앞서'슬픔이나 고통이나 욕망에 지지 않으려고 쓰는 글'에 관한 제 청소년기의 경험을 이야기했지요. 내 안의 감정을 외장하드에 담듯 문장에 담아 밖으로 내놓음으로써 그 대상과의 거리를 확보하면 우리는 또 살아가게 된다는 것. 감정뿐 아니라 다짐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짐하고 약속하는 문장을 하나 쓰고 나면, 안에서 은근히 알 수 없는 힘 같은 게 솟아나죠. 말에 힘이 있듯, 글에도 힘이 있으니까요. 인간이 만들어 낸 글자로 상처받고 넘어지지만, 우리는 또 그 글자들을 엮어 가면서 다시 일어나 걸어갑니다.


새해가 갓 시작된 지금은 다짐을 해보기에도, 글을 쓰기 시작하기에도 좋은 시간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오늘도 기분 좋게 다른 땅을 밟기를.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처럼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기를 바랍니다.(아, 한 줄로 블랙잭 용어는데 정말 더럽게 길게도 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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