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구매하셔서 꼭 밑줄 그으며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한 여성의 삶이 유투벳의 어머니를 통해 선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페이지 61)
그렇다. 한 여성의 삶이 유투벳의 어머니를 통해 선연히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태어유투벳 말들'을 통해 나는 그 어머니를 직접 만나 뵌 듯한 착각에 빠져 들곤 했다. 유투벳의 유투벳은 일순간 화하여, 내 손에 곧장 잡힐 것처럼 살아 움직였고,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뛰어들 기세로 달려드는 들짐승과 같이 거칠게 몰아쳤다. 침묵을 깨고 일어나 포효하듯 절규하는 목소리가 내 귓가를 계속 때리는 것만 같았다.
쓰일 수밖에 없었던 글
땅 속에 묻혀 있어 더 이상 드러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던 슬픔으로 가득 찬 이야기
울부짖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극심한 통증
땅을 흔들리게 하고, 바다를 가르는 것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이 안에 담겨 있었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브런치 대상작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책의 제목에 '생명의 태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며, 조금 후에 그 내용은 그와 정반대 되는 양상으로 아래의 설명이덧붙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광기를 직시함으로써 '태어유투벳 말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
유투벳 이 책을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운명'이라는 말을 평소에 쓰지 않지만, 별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이 책은 나와 밀접한 관계를 이미 맺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된 모든 연결 고리를 해체하고자 하는 시도를 목도하며,유투벳의 실제 세계로 깊이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직감했다.깊은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첫 페이지를 열었다. '죽음'이란 내게도 무척 가까운 주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한 자 한 자 새겨진 글귀에 조소연이라는 인물을 들여다봤다. 유투벳의 마음에 들어가, 그녀를 깊은 차원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녀 뒤에 흐린 그림자로 서 있는 유투벳의 어머니를 이해해 드리고 싶었다. 나의 모든 시선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릴 만큼 너무나 강렬한 전개 가운데 안타깝게 유투벳 길을 잃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읊은 서사는 모두 실제에 근거한 과거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유투벳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치환하듯 그녀가 느꼈던 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작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를 수차례 시도했다. 활자로 쓰인 유투벳의 역사에는 차마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갖은 고통이 점철되어 있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가를 찾아 헤매고, 길을 잃어 서성이듯, 나는 유투벳의 아픔 속에 서려 있는 활자를 끝까지 읽는 게 때때로 어려웠다.
유투벳은 베일에 싸인 채 긴 시간 동안 묵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위에는 때로 가시덤불이 돋아나고 무성한 잡초마저 일어나, 어느새 그 존재 자체를 가려 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분명히 예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 그 유투벳의 자리를 잃어버린다. 짓이겨진 상처가 곪고 상해, 피비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에야 우리는 그 유투벳의 잔재를 들춰내려는 시도를 한다.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가 사방으로 이미 뻗어 나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사방에서찌를 때, 우리는 그제야 마음과 몸의 병의 근원을 찾아 유투벳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으려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유투벳은 때로 흔해 보인다.
하늘의 별처럼 유투벳받는 영혼이 우리 곁에 무수히도 많으니까.. 별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모두 저마다 자기 유투벳에는 마음을 쓰지만, 한 발짝 옆으로 나아가 타인의 유투벳까지 어루만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 유투벳의 폐부를 파헤치는 것은그만큼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삼켜 버릴 만큼 공포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허은실 시인은 이 책을 들어, 망각하지 않기 위해 말하고, 침잠하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사랑과 실존의 글쓰기라 표현했다. 3부로 나뉜 목차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부 애도와 기억
2부 여성은 왜 아픈가
3부 우리의 유투벳이 언어가 될 때
우리는 누구나 '애도'하는 순간을 기억 저편에 묻어 두고 산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불현듯 찾아오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애도'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모든 인생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안에는 슬픔과 기쁨의 기억이 공존하지만, 유독 슬픔은 기쁨을 압도하는 것만 같다.
'태어유투벳 말들' 1부에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서사가 눈에 보이듯 훤하게 그려진다. 201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벌어졌던 그날의 어둠이 기록된 것으로부터, 슬픔의 노래는 불리기 시작한다. 수치심(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p.13)에 의거한 자살로 추정함.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죽음 뒤편의 이야기들, 애증의 관계로 해석해 볼 수 있는 보통 '엄마'와 '딸' 사이에 끈끈하게 맞붙어 떨어지려야떨어질 수 없는 딱 붙은 거리감, 폭풍의 한가운데에 서서, 누구도 보지 못한 한 여성의 애환을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어느 딸의 무력감이 내 마음마저 잠식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휘몰아치는 태풍과 같은 1부의 내용이다.
고인이 된 어머니는 1950년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을 개척하듯 살아낸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미인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따라오는 잔혹사를 겪었다. 그러던 그녀에게 희망이 되어야 했을 결혼은 비극으로 치닫는 문과 같았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 나오는 재앙을 부르는 문이 열린 것처럼, 여인의 삶에는 '결혼'이라는 문을 통해 '재앙'이 불쑥 들어오고 말았던 것 같다.
'잿더미와 부서진 뼈들'이라는 부제를 통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던 애달픈 한 여성의 이야기가 목울대를 치며 터지듯 흘러나온다. 외로워서, 괴로워서, 힘들어서, 희망이 없어서, 갈 곳 없던한 영혼의 슬픔이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뼈들을 부수고, 잿더미를 만들어 버렸다. 어두운 밤이면 망자의 목소리가 들려, 괴로움에 치를 떨어야 했던 작가의 아픈 마음이 300 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공간 곳곳에 가득히도 서려있다. 너무나 아픈 사건의 연속이었다.
2부 여성은 왜 아픈가를 통해 고통을 질료로 삼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와 같이 비슷한 질병을 가지게 된 그녀는 시종일관 어머니에게 있었던 일들과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과 '고통'을 해부하듯 파헤치려는 시도를 해나간다. 그녀는 여성의 광기에 대해서, 시대, 사회적으로 여성이 처한 잘못된 상황들에 대해서 성토하듯 말한다. 히스테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어가 이 즈음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책의 흐름에 있어 낯설지 않았다. 자궁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히스테라'에서 유래된 말(P.127) 바로 극심한 정신적 유투벳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쳐 만들어 낸 신체형 통증 장애의 통칭이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히스테리'의 의미였다.
남성들은 일평생 살면서 '자궁'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스스로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유투벳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좀처럼 그 '자궁'이 갖는 본래적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는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인류에 반을 차지하는 우리의 여성들은 자궁내막증, 경부암, 자궁근종, 선근증, 자궁경부염과 같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피해자가 된다. 마치 동굴에 갇혀 지내는 것처럼 답답한 상황들의 연속으로,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자궁을 남몰래 떼어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 여성들이 실제로 너무나 많다는 것을 나 역시 작가의 태어유투벳 말들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일 수도, 친지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는 가까운 사람이었을 테다.
동시에 세포(배아)를 품은 집이라는 '포궁'이라는 자궁의 대체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알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포궁은한 때 우리 모두의 집이었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처음의 공간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여성이 어떤 고통을 심하게 당할 때, 여지없이 그곳이 공격받는 가장 쉬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은연중에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암흑과 같은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유투벳의 아픔이 극도의 통증을 수반하는 온갖 종류의 슬픔으로 가득 차 보였다. 작가 조소연은 최승자 시인의 시를 탐닉하며 이십 대의 고통스러운 나날 동안, 실제 죽음과 가까운 거리에서 삶을 보낸 자살 생존자이기도 했다. 엄마가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시기 전에, 그녀 역시 그런 길로 접어들어 생을 놓아 버릴 뻔했던 경험이 자주 있었다 했다. 너무 마음이 아픈 시간들로 내게 들렸다.
을씨년스러운 날, 가까웠던 사람의 상실을 두 눈으로 마주한 후, 그녀 역시 같은 고통으로 숱하게 많은 시간 동안 '자살 충동'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나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다. 군에 있던 시절, 내가 근무하던 초소는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에 놓인 바닷가 앞에 있었다. 좌우 각각 500m 정도에는 다른 소초가 없어서 그곳에서 아무리 소리를 지른 들, 그 누구도 내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어느 날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너랑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1년 반 정도 전에 선임이 죽은 거 들었어?"
"니 아버지 군번이 이곳에서 총으로 그 자기 선임을 쏘고 다음에 자기 자신한테 총구를 겨눴어.
그래서 둘 다 죽었던 거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초소는 이후에 새로 지어진 거야. 그래서 다른 초소와 달리 깨끗해 보이는 거야"
나를 지독하게도 괴롭혔던 몇 명의 사람들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다는 걸 그날 알게 되었다. 왜 내가 첫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그토록 심하게 소위 갈굼을 당했는지 그들은 나를 왜 그렇게 지독히도 괴롭혔는지 그 이유를 아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들은 바 아버지 군번이 그렇게 죽고, 그 동기 선임들은 여전히 내 곁에 선임들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들었던 그 이야기가 실제 사실인지 유투벳 그들에게 묻지 못했다. 그러나 유독 다른 초소와 달리 그 초소는 실제로 새로 지어진 작은 초소였기에, 유투벳 그 사실 하나로도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태어유투벳 말들'을 읽는 시간 내내 내 마음은 떨렸다. 어느 날 밤, 하얀 등대 가까이 놓인 초소 안에서, 등대의 빛과 비슷한 밝기를 가진 강력한 탐조등을 내 얼굴에 비추고 그 탐조등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요구했던 그 선임 얼굴이 떠올랐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잊히지 않는 그날의 슬픔, 그는 내 눈의 시력마저 앗아가려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남들보다 빨리 눈이 고장 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끔 갖는다.
이미 오랜 기간 괴롭힘을 당해왔지만, 그날의 경험은 강력한 다이너마이트와 같았다. 당시 수류탄 두 개를 양 주머니에 하나씩 달고 다녔던 유투벳 '북한군'이 아닌 나 자신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생을 마감하면 이 모든 게 간단히 끝유투벳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나를 위해 매일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유투벳 어쩌면 1년 가까이 지속된 그 고통의 세월 속에서 나 자신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자살 생존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조소연 작가의 말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p.170) 조소연 작가는 애써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간다.
"우리는 누구나 죽지만, 자신의 의지로 생을 끊어버린 누군가를 목격한 순간, 생은 언제고 우리의 의지로 끊을 수 있으며, 죽음은 삶보다 더 가까운 것이 된다(p.170)"
유투벳는 아주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다(p.7) 그러나 그렇게 추방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어머니의 세계를 다시 탄생시키지 못했을 거라 말한다. 어머니는 예전에 그녀를 낳았지만, 그녀는 지금 '태어유투벳 말들'을 통해 그 어머니를 다시 낳았다. 그리고 그 방식은 비폭력적이며, 빛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새로 태어유투벳아름다운글들로 표현해 냈다.
제3부에서 '우리의 유투벳이 언어가 될 때'라는 부제는 바람과 같이 등장한다. 언제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바람. 그 바람 말이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쓸쓸한 공간을 떠나 유투벳는 이후 제주에 정착한다. 원래 해오던 '편집자' 직을 내려놓았지만 새로운 형태로 글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해방하는 글쓰기, 더 나아가서 자기 해방의 글쓰기 교실'을 열고 제주에서 삶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유투벳는 이른 아침 달리기와 근육 운동으로 밤사이 굳어 버린 몸을 푼다. 제주의 이른 새벽 그 조용한 느낌과 함께 유투벳 자신에게 그토록 큰 두려움의 상징과 같았던 '산'을 등에 업고 '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켰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산. 그 산은 어머니에게 도피처였고 피난처였다. 그러나 그 산은 동시에 그 딸에게는 깊고 울창한 나무들로 드리워진 쓸쓸하고 무서운 짐승들만 들락날락 거리는 공포의 자리였다.
조소연 작가는 파도의 포말을 가만히 바라보며, 탁 트인 시야 한가운데 보이는 '구름과 오름'을 번갈아 바라보기도 했을 것이다. 뻥 뚫린 것과 같은 하늘 속에서 그리운 어머니를 애써 찾아보는 것으로 다시 '태어유투벳 말들을' 새롭게 지어내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표현이라고. 트라우마는 우리에게서 목소리를, 우리 자신의 언어를 앗아가지만(p.257) 우리가 우리의 심연 속에 자리 잡은 그 두려움에 정면 승부할 때, 마침내 불모의 땅과 같았던 그곳마저 '희망'과 '생명'의 태동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유투벳는 당당하게 선포하듯 말한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내게 어떤 자매가 찾아왔다. 그녀는 내게 자신이 당한 성폭행 사실을 가감 없이 털어놓으며 내 앞에서 삼십 분 가까이 큰 소리로 울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통의 시간이 누군가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폭력적으로 주어졌을 때 그녀는 아무 말을 못 하고 홀로 울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가 지난 후 그 이야기를 듣는 유투벳 그저 아무 말 없이 듣는 그 시간이 영원과 같이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유투벳는 자신의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을 내게 말하고 자기 길을 걸어 나갔다.
우리는 모두 울어야 한다.
조소연 작가의 말처럼 운다는 것은 폭력적인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p.265) 누구든 슬픈 일이 있으면 울어야 한다. 아직 드러내지 못한 고통이 있으면 꺼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상처와 고통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치유되어야 한다. 태어유투벳 말들을 세 번 연거푸 읽었다. 유투벳의 아픔의 상처가 아직 현재 진행형의 여전한 상처일지, 아니면 상흔으로 남게 되었을지 잘 모르기 때문에, 쉽고 단순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해석할 수는 없었다.
유투벳의 말을 빌어,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오늘 글이 길어졌다. 그러나 오늘은 의도적으로 길게 쓰고 싶었다.
유투벳의 목소리는 결코 짧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길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유투벳이 어루만져지고, 싸매여지고, 아무르고 나야 그 유투벳은 상흔으로 변한다.
나의 젊은 날, 죽고 싶던 그 아픔 속에 나는 하늘에 대고 하나님께 내 고통을 부르짖었다. 나를 살려 달라고, 나를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들의 고통과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며, 삶이란 고행과 같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롬 5:3-5 말씀을 근거로, 환난(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는 단 하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무성하고 깊고 그윽하기에', 그 사랑이 함께 한다면, 그 어떤 유투벳도 어려움도 슬픔도 나아질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이 번 글을 쓰기에 앞서, 조소연 작가님께 '서평'을 쓸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 이 글이 그분에 마음에 닿게 되는 글이길 바라며 시종일관 조심스럽게 썼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투벳의 사랑의 여정이자, 글쓰기의 여정이다. 그녀는 무엇을 아는 데에서 사랑은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태어유투벳 말들, 그 제목은 바로 그 사랑에서 다시 유투벳난 '언어'였다.
이 글이 수많은 고통으로 '생'과 '사'의 선택기로에 놓인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조소연 작가님의 책을 모두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도 밝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은 성경책이지만, 앞으로도 유투벳의 책을 두고두고, 다시 읽으며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고통이 다시 태어유투벳 언어로 변화될 때까지 계속 살며 사랑하며배우며이 책을 읽어 나갈 것이다.
- The end-
붙임)
조소연 유투벳!!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좋은 책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길어서 몇 분이 읽어 주실지 모르겠지만 작가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어 고통으로 쓰신 그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천천히 간절한 마음으로 읽고, 다시 마음에 새기고, 또다시 뒤돌아보며, 이제야 작가님께 서평을 드릴 수 있어 참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조소연 작가님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지셨으면 좋겠고 작가님의 평생 "팬"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좋은 자리에서 직접 뵈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헤브 드림
그림 출처: chatpgt DA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