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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4. 2025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케이슬롯 쿠킹

맛있다. 칼로리 안높겠지?

케이슬롯

"아빠 케이슬롯 만들자"

"하..."


이제는,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아빠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 따님은 요리가 취미인 꽃다운 다섯살이 되어, 내 손에 들어맞는(내 손과 발은평균 성인 남성보다 꽤 크다) 비닐장갑을 끼고는 착착 반죽을 하는, 그런 재기발랄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어제는 돈까스를 만들어버렸지 뭐야. 그게 토요일이었어. 그런데 일요일에 또 만들었어. 나는 주말 이틀을 아침으로 돈까스를 먹었어. 다섯살 난 딸이 고기를 두드리고계란물을 입히고 빵가루를 묻혀서 튀긴. 어찌,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밥을 빚고 빚고 또 빚어냈더니, 이제는 따님께서 케이슬롯를 만들자신다.


그래 만들어야지. 하고 퇴근하고 애를 차에 태워 집 앞 마트로 갔다. 다른 재료는 사실 다 있어서 마트에 갈 필요까지도 없었는데, 정작 마트에 간 목적이었던 드라이 이스트가, 없다. 제길. 더 큰 마트를 갔어야 하나. 전날 밤 검색해뒀던 드라이 이스트를 지금이라도 주문을 하고, 나는, 어쩔 수 없으니 "호떡믹스"를 들어 바구니에 넣었다. 호떡 믹스 한 통에는 케이슬롯 도우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량의 밀가루와 이스트가 계량되어 들어가 있다. 흑설탕이 아니라 케이슬롯를 위한 도우로, 너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란다.


이렇게 해서 마트에 간 나는 케이슬롯 재료라곤 이스트를 대신할 호떡믹스 한박스와 소세지 한 팩, 송이버섯까지만 사고, 딸네미가 와다다다 품에 안고 내게 들이민 요구르트와, 음료수와, 오레오쿠키와, 그림책까지, 3만원이 넘는 장을 봤다.


...이스트만 전날 쿠팡에서 샀으면 외출도 지출도 불필요했을 텐데.


그러나 물욕이 딱히 없어서 사지 말자면 응! 하고 오도도 달려가서 물건을 제 위치에 두고 다시 돌아오는딸에게 뭐 이 정도 지출이야 괜찮아. 잘 먹는게 제일이다. 채소는 싫어해도 과일은 잘 먹는 딸이니 괜찮아.

케이슬롯
케이슬롯바깥양반이 사진은 안찍고 영상으로만...

"아빠 버섯은 안먹을래."

"응. 이따가 빼고 먹자."

"오빠 블랙데이인데 탕수육 시킨다?"

"...야이..."


어느새 케이슬롯 만들기는 30분을 훌쩍 넘겼다. 오븐을 예열해두고, 고사리손으로 손수 양송이 버섯과 소세지도 잘라보도록 시키고, 나는 토핑을 케이슬롯에 얹도록 채비해주었다. 사실 체험프로그램 하는 곳을 가면 세살 정도부터는 어떻게든 다 하는 활동들. 그러나 어쨌든 나에게 있어서 케이슬롯를 아이와 만드는 것은 제법 각별한 일이다. 나와 아내만의 식단이라면, 사실 케이슬롯가 땅기는 날이면 나가서 사먹는 일이 보통이다. 굳이 집에서 케이슬롯 같이 거추장스러운 음식을 할 일도 아닌 것이다. 다른 것보단 역시 베이킹 쪽은 계량이 문제다. 나처럼 대충대충 해먹는 성격으론 케이슬롯는 이스트부터 시작해서 계량하기...귀찮아!

그래도 아빠와 딸의 합작으로 케이슬롯는 무사히 오븐으로 풍덩. 이것이 끝이 아니라서 나는 중간 중간 치즈를 추가해주기도 하고, 계란도 까서 올려주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케이슬롯를 돌보았다. 다섯살 평생 처음으로 제로부터 시작해서 만들어보는 케이슬롯인데 간이든 양이든 굽기든, 뭐라도실패하면 안될 게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케이슬롯는 잘 익어주고 있었고 그 사이에 바깥양반이 시킨 탕수육과 간짜장세트가 도착해, 공들여 만든 케이슬롯가 아니라, 블랙데이 기념 짜장과 탕수육으로 뒤늦은 저녁식사가 먼저 시작되었다.


역시 케이슬롯용 타공팬을 사야해.


나는 식탁 아래 바닥에 앉아 간짜장을 먹으며 생각했다. 예전에 사려다가 말았다. 타공팬에 구워야, 좀 더 제대로 케이슬롯가 구워질텐데 말이다. 지금 오븐에 들어가 있는 것은 쿠키용 플레이트다. 그 위에선 두툼한 케이슬롯가 제대로 구워질 리가 없다. 그러니...

"아빠 다 됐어?"

"응. 잠깐만."


잘 구워진 케이슬롯를 꺼내 이제 팬에서 바닥쪽을 바삭하게 익히는 것으로 마무리.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타공팬이 없는 지금 팬 케이슬롯로 만드는 것이야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래도. 바삭하게 바닥이 구워지면, 그것도 맛이지. 요즘엔 바닥이 바삭하게 구워진 케이슬롯헛 스타일의 그 맛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케이슬롯에땅이 좀 비슷한 맛이었던 것 같은데. 케이슬롯에땅이든 케이슬롯헛이든 먹어본지가 20년은 되어간다. 이제 케이슬롯를 종종 만들어먹을 것 같은데, 파파존스도 좀 멀어지려나.


음. 맛있다.


완성된 케이슬롯를 접시에 올려, 벌써 탕수육으로 꽤나 배가 찬 따님과 바깥양반에게 한 조각씩 잘라준 다음, 나도 맛을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소금을 전혀 넣지 않아서 싱거운 것 빼곤, 괜찮아. 도우도 적당히 부드럽고 바삭하게 구워진 팬의 식감인데다가 잘 부풀어서 구워졌다. 거기에 넉넉히 담아올린 토마토소스의 풍미도 나름이고.


"안먹어!"

"......"


정성들여 잘라줬는데도 우리 따님께서는, 그 케이슬롯를 맛을 보지 않으시겠단다. 그러나 나는 팔팔 소스가 끓고 있던 그 첫 한입부터 적당히 식으면서 치즈의 말랑함이 조금 누그러든, 이 케이슬롯와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파마산치즈에 핫소스까지 꺼내서.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내가 혼자서 만들땐 이렇게 정성을 들이지 못했던 케이슬롯인데, 딸아이 덕분에. 이제는 제대로 성공도 해본다. 그래 뭐...


"아빠!"

"응?"

"동그란 과자 만들래."

"아냐 지금 피자 만들었잖아. 오늘은 요리 끝이야."

"아 만들고 싶은데-."


흐음. 이걸 말하는 것일까. 2주 전에 쿠키쿠키 만들었던 초코볼 쿠키. 아무래도, 우리 딸도 프로주부의 자질이 보인다.


시집 안보낼 거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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