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샤와 라바카지노18을 통해서는 끝내 알 수 없었던 라바카지노17이라는 인간
*이 글에는 작품 대부분의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01. 산업 사회의 하층 계급 노동자
"미키는 누구/무엇을 상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여러 사람들은 "하층 계급 노동자"라는 해석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 같다. 이것은 <기생충이나 <설국열차에서 이어져 온 봉준호의 주요한 관심사이며, 감독에게 있어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영화는 언제는 소모하고 교체 가능한 노동자 라바카지노의 생존을 메인플롯으로, 외계 이방인과의 소통과 공존을 서브플롯으로 한다. 독재자 VS 노동자, 문명화된 지구인 VS 원시적 외계인이라는 대응항의 병치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미키가 크리퍼와 소통하는 장면들을 통해 쉽게 관객에게 인식된다. "문명"의 오만. 생사여탈권을 쥔 권력 앞에서 미키와 크리퍼가 연대하는 것은 이러한 플롯 구성에서 필연적인 결말이다. 크리퍼를 살림으로써 미키가 살아남는다는.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취할 때, 라바카지노의 의지 없고 수동적인 모습은 단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고액 사채 빚으로 인해 생긴 일시적인, 개인적인 특성을 넘어서 구조화된 하층 계급의 모습임을 암시한다는 점을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여러가지 의문은 해소된다. 왜 저리 미키를 막 다루지? 왜 미키는 저항이란 걸 하지 않지? 왜 모든 게 라바카지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흘러가지? 그것이 현대 산업 사회의 노동자의 초상이다. 현대 산업 사회의 노동자는 미키만큼이나 무력하고, 의지를 발휘할 수 없고, 권력이 없기에 그 어떤 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변화시킬 수 없다.
이러한 인간소외의 담론을 블랙유머를 섞은 SF 블록버스터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계층갈등과 평등에의 갈망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와는 달리 자본주의 질서가 깊이 내면화된 미국에서는 영화에 대해 보다 신선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 중심의 인간 소외의 담론으로 영화를 읽는다면 역으로 "남은 사람들"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영화의 또 다른 핵심 인물, 결말을 장식하는 핵심 주체, 나샤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소외된 하층 남성 백인-구원자 흑인 여성이라는 "역전"적인 구도는 영화가 전세계에 개봉하고 나면 여러 논쟁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역전적인 구도에서 나샤가 과잉하게 이상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상적인 체력과 이성, 미모를 갖춘 "일반인"으로 시작해, 라바카지노의 구원자로 관계를 맺은 뒤,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해결하는 당사자이고 끝내 우주개척민단의 대표자로 변신한다.
그러면 나샤는 누구인가? 나샤에게 있어 미키란 존재는 무엇일까? 왜 나샤는 프린트된 고깃덩어리 취급을 받는 미키를 그녀와 동일한 인간으로 인식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영화는 충분한 단서를 던져주지 않는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은 한결같이 라바카지노의 제한된 인식과 견해만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 심지어 미키18이 왜 죽음을 택하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전혀 제시해주지 못한다.
과도하게 이상화된 나샤 캐릭터는 영화의 메인플롯인 "대체 가능한(익스펜더블) 노동자의 인간 소외" 문제를 소실시킨다. 나샤를 특별한 존재, 영화 후반부의 작은 반전으로 배치된 피에타의 구도에 담긴 '성모'로 이해해야 한다면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자애로움을 보여야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나샤는 미키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미키에 대한 감정 외에는 그녀의 심성 어디에서도 특별함을 알 수 없다. 영화에서 드물게 1인칭 시점을 벗어나 묘사되는 나샤와 카이와의 대화에서조차, 미키를 둘로 나누자는 합리적인 제안에 대해 독점욕을 과시할 뿐이다.(여기서 합리적-독점욕이라는 서술은, 미키17과 미키18이 첫 만남에서 완전히 독립된 자아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정리하자면, 나샤는 미키에 대한 감정 외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사람인데도 과도하게 이상적인 행적을 보인다. 미키에 대한 감정은 그녀의 가장 특별한 점이다. 그런데 대체 왜 그녀가 미키만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지, 어떻게 미키1과 2 이후의 미키들에 대해서 똑같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는 도무지 영화 속에서 알 길이 없다. 미키 스스로 각각의 개체들이 이질감을 보였다고 말했음에도.
그녀의 존재로 인해 인간소외 문제가 중심 내러티브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다. 미키는 늘 나샤로 인해 구원받으며, 소외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산업사회 인간소외 담론의 핵심은 인간성의 상실인데, 미키에게 있어서 죽음의 공포, 소외의 공포가 아닌 나샤에 대한 감정이 18과의 갈등의 핵심으로 꽤 길게 다루어진다.이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유감스럽지만, 그녀는 또 다른 핵심 내러티브를 박살내는 역할을 한다.
02. 나샤와 옥시조폴로 망가트린 멀티플 딜레마
SF로서의 작품의 또 다른 핵심 문제인 멀티플 딜레마 역시 나샤라는 캐릭터로 인해서 소실된다. 미키17이 마샬과의 식사 후 방으로 돌아갔을 때 나샤와 미키18은 옥시조폴이라는 마약에 젖어서 미키를 반긴다. 그리고 셋이서 성교를 하려다, 미키를 위해 약을 가져온 카이로 인해 판이 깨진다.
영화 속에서 옥시조폴은 선원들의 타락을 상징하며, 다른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장면은 없다. 그런데 우선, 나샤는 왜 옥시조폴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전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해 설명은 없기에 알 수 없지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봉준호 감독의 내러티브상의 삑사리의 시도였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제 나샤가 둘을 보고 놀라 뒤집어지겠지. 이렇게 예측하고 있는데 세상에나 마약을 하고 복제인간 둘을 껴서 쓰리썸을 한다고?
만약 나샤의 지고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옥시조폴은 빠졌어야 한다. 이 마약 덕분에 그녀가 17과 18을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이며, 그 둘을 나눠 소유하자는 카이의 제안조차 거부하는 것을 그녀의 애정인지, 소유욕인지, 아니면 마약에 취한 착란 상태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차라리 출처를 알 수 없는 옥시조폴 없이 나샤가 고뇌 끝에 둘을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카이와의 논쟁을 하는 흐름으로 갔다면 납득할 수 있을 것이건만, 그런 전개를 뻔한 것이라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결말에서 나샤와의 섹스가 갈등 해소의 열쇠로 역할하는 것에 대한 복선을 배치하려는 의도였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의도로 옥시조폴이 등장하고, 나샤의 판단을 해석할 기준을 소거함으로써 멀티플 딜레마 역시 마약에 취한 기분이 날아가듯, 날아가버린다. 누가 진짜 나인지, 복제인간의 공존의 길은 무엇인지 알 틈이 없이 미키18의 분노와 마샬의 광기에 휘말려, 미키17의 의지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극은 흘러간다.
이렇게 인간소외의 담론에 이어 멀티플 딜레마 역시 질문만 던지고 극에서 사라진다. 완전히.
03. 라바카지노18는 라바카지노17의 무엇인가?
미키18의 존재는 무엇인가? 멀티플이라면 미키와 통합된 자아일 것이고, 이드라는 손쉬운 설명을 빌리자면 그의 내면에 있던 억압된 자아들이 분출된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한 장면이 아주 짧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대화로서 암시되기는 한다.
그러나 멀티플이라면 멀티플다운, 이드라면 이드다운 기능과 역할이 극중에서 부여되어 있는가 묻는다면, 이 역시 대답하기 어렵다. 둘의 자아는 대면과 동시에 완전히 분열되었다. 멀티플 딜레마 때문에 18은 17을 보자마자 죽이려 하는데 이러한 멀티플 딜레마는 나샤와 옥시조폴로 인해 극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관객으로선 숙고할 여지가 없다. 18은 주도하고 17은 막는 여러 장면들로 보아, 이드로 설정되어 있다는 쪽이 더 설득력 있지만, 그렇게 바라볼 때 18이 죽음을 택하는 핵심적인 장면에서는 17과의 대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17이 크리퍼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에서 멀뚱멀뚱, 18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18이 죽음을 택하는 과정은 17에게 인식되지 않으며, 단지 결과로서만 받아들게 된다.
물론 18의 죽음을 가지고 17과 갈등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면, 그것은 어벤져스3편에서 블랙위도우와 호크아이가 서로 죽겠다며 옥신각신하는 김빠지는 장면의 재현일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드로서의 18의 의사결정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주어지지 않는 것은 주제의식의 전달 측면에서 상당히 실패한 과정이라고 느껴진다. 18의 존재를 통해 마샬도 심판하고, 티모도 심판하고, 17은 구원하였지만 앞서의 멀티플 딜레마가 옥시조폴로 인해 날아가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17과 18의 대립이 내러티브적으로부각되기보다는 18의 영웅적인 행적으로 보인다.이러한 문제는 라바카지노의 친구인 티모의 존재로 인해 더욱 심화된다.옥시조폴과 마찬가지로 티모 역시 내러티브적으로는 아무런 필요도 없는 존재일 뿐 주로 18의 존재를 부각하는 역할을 하는데 만약 18의 의지대로 티모를 죽였다면 중반부의 위기 상황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18의 판단이 맞았다는 것일까?
04. 인간이란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서 처음 나샤와 라바카지노의 성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어, "캬, 인간을 복제하는 방법은 익스펜더블만이 아니지."라는 생각을 품었다. 복제인간 나오고, 섹스가 나오고, 우주개척민단이 나왔으니복제를 통한 인구 증식과 출산을 통한 인구 증식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대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인데 실제로 마샬은 우주개척민단의 대대적인 성관계 장려 캠페인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섹스가 가장 중요한 갈등 해소의 장치로 기능하는 영화에서임신이라는 유전자 복제의 미키에게 있어서는 논의되지 않는다. 가임기란 말도 나오고, baby caring 혹은 carrying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도 정작 미키 본인에게 있어 나샤와의 임신이란 문제는 쏘옥 빠져있다. 매번 죽음을 맞는 미키에게 있어서, 생의 갈망과 섹스는 자신의 분신을 남기는 임신이라는 문제로 닿지 못하는 것일까? 사이클러에서 다른 폐기물들과 섞여 추출된 재료로 프린트된 자신을 매번 대면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임신이라는 선택지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경험인가?
이러한 방식으로 마땅히 더 나아가야 할 문제에 대해 영화는 번번히 멈추고 만다. 그 원인은 라바카지노의 거울인 나샤의, 미키17의 이드인 18의 캐릭터 조형의 문제 및 옥시조폴을 비롯한 몇가지 서사적 장치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다시 첫번째 주제의식으로 돌아가보자. 산업사회 하층계급 노동자의 인간소외 문제. 나샤와의 사랑이 라바카지노의 인간성을 보존하면서, 그는 매번 자아를 유지하고 소외감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그를 고깃덩어리로 여기는 와중에도 그는 나샤 덕분에 멀쩡히 자아를 유지한다. 어째서 나샤가 미키를 "인간"으로 여기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도록 남긴 채로.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모 가능한 노동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여타의 선원들과 나샤는 상반된 관점을 보이는데 그것은 다른 배경 요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나샤 고유의 특성 때문으로 연출되는데, 그러한 나샤가 멀티플 딜레마에 어떻게 대처하며 미키17의 정체성을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정작,사랑인지 마약으로 인한 정신착란으로 인한 감정인지 모르도록 모호하게 남겨두었다. 나샤가 17과 18의 존재를 하나로 규정함에 따라 17과 18의 갈등 역시 사라지고, 갈등이 사라지자 18의 역할도 극 중 갈등을 해소하는 도구로 변모한다. 특히 결말부에 마샬과 함께 폭탄자살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도무지 단서를 남기지 않는다. 만약 18이 라바카지노의 이드라면 원초적 욕구가 더 강할 터인데, 생에의 집착은 17보다 18이 더 강인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음에도 결말부에만 목숨을 바치는 헌신을 한다? 감동적이지만, 일관되지 못한 결말이다.
이처럼 나샤와 미키18의 캐릭터가 구멍이 생기면서 미키17에 대한 내러티브적이해 역시 어렵게 남았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왜 이토록 미키17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산업 사회의 인간소외"라는 손쉬운 답을 우리를 예견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인간, 미키를 어떻게 규정해야할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가능항이 영화 내에 흩뿌려진채로, 수거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는 미키가 어떤 인간, 어떤 존재인지를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즉 <미키17은 내게는 "인간"을 말하지 않는 "인간소외"의 텍스트로 읽혔다.
다른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 영화가 그 명료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호불호의 반응을 얻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미키17은 선명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이지만, 그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서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지점에서 나아가지 않고, 옆길로 새는 삑사리를 냈다. 봉준호의 연출로그런 만듦새의 헛점이 잘 봉합되어 있는 것처럼은 보인다.옥시조폴을 제외한 장면에서의 나샤의 멀티플 딜레마에 대한 판단, 그리고 18의 죽음에 대한 결단 이 두가지만 말끔하게 보여주었더라면영화의 품격은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영화에서 섹스와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봤을 때 17과 18의 화해, 그리고 18의 죽음의 결단 뒤에 나샤의 임신이 배치되고 나샤가 우주개척민단의 대표가 되는 과정에 익스펜더블인 미키와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한 배경이 되었다면 주제의 통합성은 높아졌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