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Anora (이하 아노라)를 보러 대물카지노에 가려다 말았던 날이 있었다. 영화 얘기를 가끔 나누곤 하는 친구 두 명중에 한 명은 별로였다 하고, 다른 한 명은 괜찮았다 하길래 어떤 영화인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집에서 좀 먼 대물카지노에서만 상영하는지라 귀차니즘이 호기심을 이겼고,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아노라가 아카데미에서 무려 5관왕을 받자 그 영화가 별로였다는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영화를 봤냐며... 영화를 보고 어떤지 나의 의견을 자신에게 알려 달라며...
숀 베이커 감독의 영화는 넷플릭스에 없기 때문에 아노라가 넷플릭스에 올라올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그래서 부리나케 영화를 검색했지만 집에서 굳이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해서 포기했던 대물카지노에서 하루에 단 한 번만 상영 중이었다. 아카데미 5관왕 수상소식에 당연히 표는 거의 없었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는데 하필 신용카드가 결제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카드를 바꿔가며 다섯 번 이상 시도 했지만 결국 표를 사지 못 했다. 이유 없이 결제가 안 되는 대물카지노 사이트 때문에 짜증이 났다. 매주 화요일에 영화표가 저렴하기 때문에 꼭 오늘 갔어야 했는데... 실망스러웠다.
몇 시간 후에 그 두 명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 대물카지노 사이트에서 카드 결제가 안 돼서 표를 못 샀어...'
그러자 한 친구가 내게 동네에 저렴한 대물카지노에서도 상영 중이란 사실을 알려줬다. 맞아! 엄청 저렴한 동네 작은 대물카지노이 있었지! 종종 가곤 했었는데 이상하리만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날 밤 9시 40분 영화의 양쪽 맨 끝자리가 하나씩 비어 있었다. 바로 표를 예매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5에... 처음 사려고 했던 영화표는 대기업 대물카지노이라 $15이 조금 넘는 가격이었는데 같은 영화를 3분의 1 가격으로 본다니. 심지어 그 대물카지노은 자칭 '럭셔리 1인용 소파'라고 불리는 의자가 있어 버튼을 누르면 등받이가 뒤로 젖혀지고, 다리 부분이 위로 올라와 반쯤 누운 상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제야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서 영화표를 사지 못 한 사실이 무척 다행스러워졌다.
분명 안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표가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보고 싶은 영화의 표를 카드결제가 안 돼서 못 샀으니까. 결국 영화 자체를 포기했을 텐데 오히려 더 싼 값에 더 편하게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더 좋은 일이 되어 버렸다. 안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일도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 있음을, 대물카지노가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 보니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긍정적으로 풀어 보려고 노력해 왔다. 너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을 땐 운동을 한다던가... 좋은 영화를 보고 엉엉 운다던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해소하는 것도 긍정적이라 생각함) 특별한 요리를 한다던가. 여행 계획을 짠다던가. 어차피 나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냥 잊어버리고, 툭툭 털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더 이상 내가 바꿀 수 없음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아도 머릿속에서 끝까지 물어 늘어지고 있다. 그래서 더 스트레스받고, 잠도 못 자고,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다른 일에 집중하려고 해도 절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어차피 잊을 수 없다면 그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어떻게든 그걸 내게 좋은 쪽으로 만들어보자 결심하게 됐다.
예를 들어, 현재 한 달 넘게 세금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탈세한 거 아님. 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벌금 맞아서 이의신청 했는데 접수는 됐는데 해결이 안 되는 중) 이 일의 긍정적 효과는... 내가 세금 전문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난 이제 캐나다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세금 신고 문제, 이의 신청 하는 방법 등에 대해 전문가 수준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걸 어떻게든 좋은 일로 만들던지 아님 그 일에서 뭔가를 배워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