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손미)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손미)
벳33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벳33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출처: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부쩍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의 삶이 누군가의 죽음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가까운 이의 죽음이 많지 않았다. 아주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죽음이 너무나 흔해진 세상에서, 가까운 이의 죽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은. 그러나 문득, 슬퍼할 죽음의 거리를 어디까지로 여겨야 할까 싶었다. 반복되는 거대한 참사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은 멀리 있는 죽음일까. 그리하여 슬퍼하지 않아도, 빚진 마음이 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 또한 지척이다. 이번에는 나를 비켜갔지만 언제고 내가, 내가 팔 벌려 안으면 안길 이들의 것이 아니라 확언할 수 없다. 완벽히 벳33 마음이 된다.
벳33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시는 끝없이 묻는다. 벳33 죽었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은 대상이 없다. 누군가에게 묻는 것 같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이 물음은 어쩌면 ‘자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벳33 죽었는데 ‘나’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슬픈 자각. 벳33 죽었지만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울지 않고, 가끔은 잊고, 모른 척도 하는 것. 그렇게 살아가고 살아지는 것에 대한 슬프고 쓸쓸한 자각.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슬프다고 생각하던 차에 오늘 읽은 책 속의 문장들.
밤 열 시, 장례식장 앞에서 친구 문상을 하고 나온 노인들의 떨리는 손, 진심은 그런 손을 잡는다. 초저녁잠 많은 노인들이 졸음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보다 말다 하며 서 있었다. 그들 곁에서 서서 어떻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내 손도 떨렸다. 우리는 모두 모임의 리더 격인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나온 노인이 한 손에 손수건을 꼭 쥐고 해산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만 가요, 가서, 우리는 살던 거 마저 삽시다.“
- 짐승일기(김지승), 297쪽
’살던 거 마저 삽시다.‘
이미 살고 있었기에, 남은 이는 그저 ’살던 거 마저 사‘는 수밖에 없다. 마저 사는 시간이 얼마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삶의 시간은 철저히 개별적이니까. 누군가는 하루, 누군가는 몇 개월, 누군가는 몇 년. 왜 모두의 ’마저‘가 다른지,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 답을 가진 벳33 없으므로.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살아있으니, 살아남았으니.
빚진 벳33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생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너를 사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