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it go
지난 몇 달 동안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회사에서는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하여 심란했고, 가깝다고 생각했던 관계에 상처를 받았으며,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했던 글쓰기조차 뜻대로 되지 않아 의기소침해 있었다.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잃은 느낌이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방향을 누군가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책을 한 권 내기는 했지만, 마음에 쏙 드는 후속 작품을 쓰지 못했고, 점점 잊혀 가는 느낌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미라클 모닝도 잘 되지 않았고, 나는 다시 표류했다.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불혹이 가까운 나이에 이렇게 흔들리는 게 맞는지, 원래 '불혹'이라 함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 하던데, 나는 왜 이토록 지금도 흔들리고만 있는지.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지는 시기였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것 같고, 직장에서의 입지도 위태로운 것 같고, 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듯하고... 이전 출간작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살라'고 했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끝없이 혼란스러워졌다.
방황은 다시 시작되었다. 기분은 가끔 바닥을 쳤고, 미라클 모닝은 멈췄으며, 관계에 염증이 나서 스스로 고립시키기도 했다. 인생에 새롭거나 희망이랄 것도 없고, 가슴 설레게 하는 것들도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케이슬롯이 머리를 스쳤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 '출근하기 싫다'는 케이슬롯으로머릿속을 꽉 채운 때였다.
'만약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라면?'
거짓말처럼 머릿속을 옥죄던 케이슬롯의 덩어리가순식간에 가볍게 느껴졌다. 어차피 오늘 마지막 날이니 할 수 있을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는 내버려 둬야지, 어쩔 수 없다는 케이슬롯으로 바뀐 것이다.
고통스럽다 느끼는 이유는, 이 고통이 영원하다고 케이슬롯하거나 주도권이 내게 없다고 케이슬롯해서인데, 내가 그 끝을 매듭지을 수 있다고 케이슬롯하니 오히려 결론이단순해졌다.
그 이후로 매일을 케이슬롯 살아보기로 했다.
첫째,회사와케이슬롯 산다.
눈을 떠서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 수 있다는 케이슬롯으로 출근하고,내일이라도 퇴사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근무한다.마음이 힘든 이유는 계속 다녀야 된다고 케이슬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온갖 걱정을 사서 하게 된다. '~하면 어쩌지, 일이 잘 안 되면 어쩌지, 프로젝트 성공시켜야 하는데' 등등.하지만 내일이라도 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토록 중요시하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게 되어 버린다. 어차피 퇴사하면 그만이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본질만 남게 된다.내일이라도 회사와 이별한다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가벼워진다.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매일을 인수인계하는 마음으로 다니게 된다.
둘째, 사람과 케이슬롯 산다.
가족, 연인, 친구 등 살며 맺는 모든 인간관계가 해당된다.누구든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케이슬롯으로 만나면 어떨까. 내일이라도 당장 헤어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말이다.특히 연인으로 인해마음고생을 할 때, 이 케이슬롯이 도움이 되었다.누군가와만나며 마음이 들쑥날쑥 힘든 이유는 평생 인연이라 케이슬롯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대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하지만 내일이라도 헤어질 수 있다고 케이슬롯하면 많은 것들이 가벼워진다. 관계에 초연해지는 것이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애쓸수록 잘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것들을 놓아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 겨울왕국의 명대사 'let it go'처럼, 그냥 놔두는 게 때로는 정답일 수 있다.
셋째, 삶과 케이슬롯 산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날마다 조금씩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과 같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케이슬롯으로 산다면, 아등바등했던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진다.평범한 사람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나와 먼 이야기인 것 같고, 나와 내 주변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 같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삶과 케이슬롯 살기 시작하면, 일단 불필요한 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특히 물질적인 소유욕이 그렇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쟁여둬야 할 것 같아서 지니고 있던 것들을 처분하게 되고, 반대로 필요하지 않지만 갖고 싶어 사들이려고 했던 것에도 크게 욕심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생각보다 불필요한 것들을 그동안 많이 끼고 살았음을. 그리고 실체가 있는 것들 중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몇몇 되지않음을.
매일 케이슬롯 살기 시작한 이후, 집착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더 잘 풀릴 수 있다는 걸 경험한 것이다.케이슬롯 살기 시작한 이후, 역설적으로 이별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매일 케이슬롯 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문득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말을 조금 변주한다면, '가까워지고자 하면 이별할 것이고, 케이슬롯고자 하면 가까워질 것이다', 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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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매일 회사와 이별한다.
매일 관계와 케이슬롯한다.
매일 삶과 케이슬롯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과 케이슬롯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