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Apr 07. 2025

핀 꽃은 반드시 지는데

이런 세상에 너를 데려온다는 것

남편과 함께한 일주일은 그 어느 때보다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사이 부산에는 막바지 추위와 함께벚꽃이 만개했다. 다시없을 얼굴처럼 활짝 핀 벚꽃과 그 뒤로 펼쳐진 파란 하늘을 남편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임신 15주차를 지나자아랫배가 차오르는 것이 차츰 몸으로 느껴진다. 배가 땡땡해서 이제 조금만 음식을 먹어도 금방 숨이 찬다. 키가 작고 배가 작으니 뱃속 공간도 한 줌밖에 안 되나 싶어 괜히 억울하다. 앞으로 한참 더 배가 나올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남편이 도착했던 지지난 주말의 부산은 몹시 추웠다. 아마도 그때가 마지막 꽃샘추위였으리라. 남편 손에는 부산역에서 샀다는 작은 꽃다발이 들려있었고 남편은 동그랗게 부푼 내 배를 보며 깜짝 놀랐다. 남편을 마주하자마자 내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랜만에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나와 남편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는 그리도 잘 울었건만 이상하게 남편 얼굴만 보면 웃음부터 터지기 때문이다. 하루를 꼴딱 새운 진통 끝에 홀로 이산이를 낳았던 그날도, 어기적거리며 고위험 산모 대기실을 벗어나서야 만나게 된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는 그저 웃어버렸다. 나에게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주저앉은 자리끄트머리에서도 결국은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남편과는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차를 마시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자리에서 잠을 잤다. 남편과의 주된 대화는 당연히 뱃속에 있는 아이와 관련된 대화다. 비교적 자유롭게 잘 먹고 잘 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양육환경에서 자란 나와, 성적과 실적이 인생의 최대 목표라는 환경에서 자란 남편 사이에서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한 이념만큼은 동상이몽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저 부모로서 아이에게 넉넉한 사랑을 주는 게 전부라 말하지만,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이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말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부모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 이사를 다녔고 그 덕분에 버스도 오지 않는 시골에서 모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사교육이라고는 그 시절 흔해빠졌던 피아노/미술/주산학원이 전부였고, 엄마가 큰맘 먹고 불렀던 영어 과외 선생님은 오지까지 오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단 1회 만에 관둬버렸다. 그럼에도 큰 불만 없이 그 시간을 살아냈다. 시골 나름의 인심과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나는 나대로, '나'로 자라났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언니는 나와는 또 다른 사람으로 자랐다. 나보다 둥글고, 품이 넓고, 뒤끝이 없고, 약간은 맹한 구석이 있는 귀여운 사람으로 컸다. 똑같은 환경,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자랐음에도 나와 언니는 무척 다른 느낌의 성인으로 컸다. 이러한 영향 탓인지 내경우, 사람은 어찌 되었건 타고난 대로 자라난다고 믿었다. 부모의 그늘에서 자라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아이의 삶이 어른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남편을 보면서, 또현재 내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와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자랐던 시대는 이제 분명한 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가족 구성원의 지향점이부모 위주의 삶에서 아이 위주의 삶으로바뀐다는 말을 뜻한다. 아직은 솔직히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아마 조만간 나도 그 사실을 인정해야 될 때가 오리라 믿는다.


요즘 남편에게 가장 자주 건네는 말은 무섭다는 말이다.

온라인 바카라이 "무엇이 무섭냐?" 물으면,

그저 "사는 게 무섭다."라고 나는 답한다.

아이가 태어날 세상을생각하면 나는 이 세상이 조금 더 두려워진다. 이쯤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혹은 덕분인지 이 세상이 어릴 때 보던 도덕책 속 세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생각보다 불공평하고 생각보다 야비한 어른들이 많으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이 세상을,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박수와 환호, 승리와 축포가 이어지는 삶이 아닐 이 날이 바짝 선 공간에, 천진무구한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 옳은 일인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도 많다. 그런 두려운 생각을 하다 보면 어찌어찌 자라나서 어른이 된 모든 사람들이 다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런 내 생각의 꼬리를 싹둑 자르는 역할은 당연히남편의 몫이다. 남편 역시 '사는 것이 무섭다' 말한다. 그럼에도 이 무서운 삶을 혼자가 아닌 '나'와 함께라 다행이라 말해준다. 덕분에 생각의 연결고리를 떨어내고 나는 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을 청할 수 있게 된다.(내가 심하게 코를 곤다는 사실을남편이 알려줬다. 아주 심각하다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어지는 것 같다...)


배가 부르고 숨이 차오르는 탓에 남편이 머물렀던 일주일 동안 어디 멀리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은 평소처럼 친정집부근 300m를 벗어나지 못한 채 주변만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그럼에도 좋았다.지난 주말, 온라인 바카라은 다시이스탄불로돌아갔다. 역시나 헤어질 때 울지 않았다. 역까지 가는 택시에 온라인 바카라을태워 보내고 돌아서는 길,여전히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며칠 전보았던 풍경만큼아름답게 느껴지지않았기에,나는 조금 슬퍼진 채로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