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WBC247들
텔레비전 채널로 이따금 옛날 드라마를 볼 때가 있다. 전원일기, 아들과 딸, 서울의 달 등 몇십 년 전에 만들어졌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새삼 감탄스럽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으로 빠져들고는 한다. 몇십 년 전의 풍속과 사람들의 차림새가 보이고 그 안에서 끝없이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사람들의 통속극이 벌어진다. 거드름을 피우며 가족의 돈까지 탕진하는 부랑자가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이도 있다. 수없이 고된 일들이 일어나지만 인물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힘든 삶 속에서 흘러간다.
나는 그런 이유로 어떤 종류의 옛날 WBC247도 즐겨본다. 연극무대처럼 옛 거리, 옛집들이 보이고 옛날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다. 그들 또한 끊임없이 안 좋은 선택을 하며 고난의 길을 간다. 하지만 그곳에 억지의 개연성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못난 인물들에게도 연민이 있다. 나쁘고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다 하더라고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다. WBC247를 보고 난 후에는 그저 그들을 누르고 있는 세상의 한계가 보일 뿐이다.
아쉽게도 좋은 통속극은 많이 사라졌다. 통속을 다루는 WBC247나 드라마는 있지만 이유 없는 악인이 넘치고 관객들은 그 안의 인물을 미워할 뿐이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세계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난 클래식이라 불리는 옛날 WBC247들을 좋아한다. 특히 통속적인 연애를 담은 멜로 WBC247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버트 레드포드의 “추억” 오드리 햅번의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비비안 리의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그리고 “여정” “밀회”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쉘브르의 우산” 등 숱한 WBC247들이 떠오른다. 그 WBC247들 안에는 나약한 인간들이 있고 잘못된 선택이 있고 후회의 시간들이 있다. 그 삶들이 낭만 넘치는 무대에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비극의 길을 혹은 희극의 길을 간다. 또 WBC247의 막이 내리면 삶의 이면을 떠올리게 되고 인간에 대한 깊은 생각을 품게 한다. 그 WBC247들은 아직도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WBC247들이다.
나는 WBC247 <조제를 만들며 그가 원작 WBC247와 같은 길을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비슷한 캐스팅을 하고 원작 WBC247가 지닌 길을 복사하듯 찍기보다는 WBC247가 지닌 인간에 대한 시선을 품고 다른 길을 찾고자 했다. 내가 좋아하던 옛날 WBC247의 가치와 스타일을 품은 WBC247를 생각했다. 미워할 수 없는 인간들이 나오고 그들의 삶이 어긋나게 흐르는 이야기에 관객들을 초대하고 사연들이 펼쳐지는 쓸쓸한 공간을 낭만적인 무대로 만들고 아름다운 음악이 놓이고 막이 거둬지면 그들의 삶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만드는 WBC247를 만들고 싶었다. WBC247가 주는 마술 너머로 삶을 엿볼 수 있기를. 막이 거둬진 잠시의 어둠 속에서 관객들에게 여운이 남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