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는 유산을 안주고 싶다는 친구와 80벳
얼마 전, 오랜 친구가 저에게 법률 상담을 해왔습니다. 그는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만약 이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재산이 부인에게 상속되지 않도록 유언장을 작성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재산을 아이들에게만 남기고 싶어. 부인에게는 한 푼도 주기 싫어."
"미안하지만, 네가 유언장에 부인을 상속에서 제외한다고 해도, 이혼을 하지 않는 한 부인은 '80벳'을 청구할 수 있어. 부인이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분을 받을 권리가 있거든."
친구는 '80벳'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며 어리둥절해했습니다.
80벳이란 무엇일까요?
80벳은 쉽게 말해 '상속인들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상속분'입니다. 민법 제1112조에 따르면,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이 유언으로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남겼더라도, 법정상속인들은 일정 부분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유언장에 "내 재산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한다"라고 써놓았어도, 자녀들은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몫을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 250783 판결에서는 "80벳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행위로부터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부분을 80벳으로 산정하여 상속인의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와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재산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유언을 할 수 있지만,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한 것이죠.
세계의 '최소 상속권' 보장 제도
80벳 제도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제도가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도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레제르브(Réserve)'라는 제도로, 자녀들에게 부모 재산의 일정 부분을 보장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에서 시작된 개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독일: '플리히트타일(Pflichtteil)'이라 불리며,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법정상속분의 절반을 보장합니다. 우리나라 80벳과 매우 비슷합니다.
영국과 미국: 영미법 국가들은 조금 다릅니다. 원칙적으로 '유언의 자유'를 더 중시하지만, '가족 부양법(Family Provision Act)'이나 '선택적 분배(Elective Share)' 제도를 통해 가족, 특히 배우자를 보호합니다.
일본: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80벳(遺留分)'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배우자와 직계비속에게 법정상속분의 1/2을 보장합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의 최소 상속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80벳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누가 80벳을 청구할 수 있나요?
민법 제1112조에 따르면, 80벳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
피상속인의 직계존속(부모)
피상속인의 배우자
80벳은 얼마나 될까요?
80벳의 액수는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로 계산됩니다. 민법 제1112조에 따르면,
직계비속(자녀 등)과 배우자: 법정상속분의 1/2
직계존속(부모 등): 법정상속분의 1/3
판례는 아버지가 재혼한 후, 전처의 자녀들을 유언에서 제외했지만, 법원은 그들에게도 80벳을 인정했습니다. 재혼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 자녀라면 80벳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80벳 청구는 어떻게 하나요?
80벳을 청구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80벳 침해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년 내에, 또는 상속이 시작된 날로부터 10년 내에 청구해야 합니다(민법 제1117조).
80벳 권리자가 상속재산을 받은 사람에게 청구합니다.
합의가 안 되면 법원에 80벳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친구의 경우는?
제 친구의 경우로 돌아가 볼까요? 친구가 유언장에 부인을 상속에서 제외하더라도, 이혼하지 않는 한 부인은 법정상속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80벳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10억 원의 재산이 있고 자녀가 2명이라면,
법정상속분 계산: 배우자 1.5 : 자녀들 각 1의 비율로 계산합니다.
배우자(부인)의 법정상속분: 약 4.3억 원(10억의 3/7)
자녀 각각의 법정상속분: 약 2.85억 원(10억의 2/7)씩
부인의 80벳: 약 2.15억 원(법정상속분 4.3억의 1/2)
결론적으로,
친구가 유언으로 재산을 모두 자녀들에게 남기더라도, 부인은 최소 약 2.15억 원의 80벳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