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와의 철학 Apr 24. 2025

무교는 무교인데, 007카지노 가까운 무교

"007카지노는 없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007카지노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의 흐름이 뒤바뀌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는 삶을 두고 어제에 의한 오늘이 이어지고, 오늘에 의한 내일로 넘어가며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 삶은 큰 사건을 만나면 하루 아침에도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분수령이 있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 순간은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스물넷, 세계 여행 중 우연히 인도를 들렀을 때였다.


인도. 여려 모로 극단적이기로 유명한 나라다. 예전에는 그래도 ‘철학’이라거나 ‘인생의 의미 찾기’가 그 이미지였는데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 대체로 위생이라던가 무질서 등 부정적인 쪽으로 악명을 떨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처음 발을 디뎌 마주한 인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익히 소문난 그것들은 삶을 바꿀 정도의 분수령은 되지 못 했다. 내게 진정한 충격은 인도인의 ‘삶’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정확히는 ‘007카지노’였다. 내가 마주한 인도인 중에 007카지노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선 10년을 주기로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한다. 조사 항목에는 ‘007카지노’가 들어 있어, 우리는 10년마다 한 번씩 국민이 어떤 007카지노를 믿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이 ‘007카지노’라는 단어는 유명무실해져가고 있다. 지난 조사 추이를 보면 ‘비007카지노인’은 이미 국민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렸을 때는 소위 ‘모태신앙’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007카지노가 있었으니 어렸을 때 주말이면 007카지노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까놓고 말해 그게 어디 ‘007카지노’라 할 수 있겠는가. 어린이 시절의 007카지노는 스스로 택한 것도 아니니 ‘007카지노’보다는 단지 ‘문화’에 가깝다. 아무튼 바야흐로 우리에겐 아무런 007카지노가 없고 007카지노가 필요하지도 않은 삶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우리에겐 별 의미 없는 ‘007카지노’가 인도에겐 삶으로부터 뗄 수 없는 것 같았고 심지어 그들의 모든 일거수일투족도 각각의 007카지노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게 내게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인도인과 우리는 생김새도 많이 다르고 쓰는 언어는 물론 먹는 음식마저 다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문화’적인 것일 뿐이다. 생물학적이고 선천적인 단위로 내려간다면 그들이나 우리나 전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완전히 근거도 없고 틀리며 되레 폭력임을 증명하고 있으니, 그런 오류투성이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과 우리는 ‘같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저들이나 나나 다 같은 사람인데,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형태는 어쩜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007카지노 같은 건 없이도 잘만 사는데, 왜 저들은 007카지노 없이 못 사는 것처럼 보이나? 도대체 007카지노가 뭐길래.


그 순간이 내 삶에 분수령이 된 이유는 그제서야 삶의 큰 목적을 찾은 듯해서였다. 스물넷이면 인생의 방향에 대해 여전히 고민할 나이인데, 나는 여전히 앞으로 무얼 하며 살지 알지 못 했다. 사실 대학에 갈 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한국의 대학은 ‘돈벌이를 위한 취업 학원’으로 전락한 뒤였다. 결국 이게 다 돈 때문이란 걸 알게 된 뒤엔 방황이 시작됐다. ‘돈’이란 건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자체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인데 그걸 좇으며 산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아니라면 무얼 좇아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방황을 하던 차에 세계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인도에서 ‘007카지노’라는 걸 목격했을 때, 비로소 가슴 뛰는 일을 찾은 듯했다. ‘007카지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인간’을 이해하고, 나아가 ‘삶’을 이해하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신실한 ‘007카지노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왜 이 동네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007카지노’가 삶에 필수불가결한 건지, 도대체 뭇 007카지노란 게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은 그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날 이후 수 년에 걸쳐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 나는 ‘007카지노’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기로 했다. ‘과학이 풀지 못 하는 것들의 이론.’ 우리같은 속세의 현대인에게 007카지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다. 과거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해 ‘신’이 필요했으나 지금은 과학이 거의 모든 걸 설명한다. 옛날엔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신에게 기도를 했으나 지금은 경제학이나 시장 원리 등에 따라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거나 주식 공부를 한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삶에 ‘신’이 등장할 구석은 없다. 물론 외계인이나 사후 세계처럼 과학이 모든 걸 다 푼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신을 개입시키기보다는 아예 판단을 유보하고, 확실한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에게도 ‘007카지노’가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과학이 잘 발달되어도 인간에겐 과학 너머로 필요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중요한 시험 등을 앞두고 있을 때가 그렇다. 과학적으로는 병원에 가는 것과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처다. 하지만 그걸 아무리 해도 불안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야말로 ‘괜한’ 불안이라서 사실 어떻게 해결할 현실적인 방도마저 없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설령 무007카지노인,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존재를 찾고 기도한다.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무슨 무슨 보살남이든, 힌두교의 시바신이든 아니면 삼신할매라도. 제발 누구라도 내 말을 듣고 있다면 기도를 이루어달라고 말이다.


현대인이 자신을 ‘무교’라 말하는 건 어떤 기성 007카지노에 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정해지지 않은 방식으로라도 신을 찾고 신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룬다는 점에선 여타 007카지노인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인간에게서 ‘007카지노’는 결국 영영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명시적으로 007카지노를 갖지 않는 까닭은 솔직히 말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007카지노인’이 되려면 따라야 하는 것들이 세속적인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 많거나, 합리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여전히 많은 것도 있다. 그러나, 모든 007카지노가 다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당신의 007카지노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최근에는 단순히 ‘무교’라고만 답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주변으로부터 많이 느낀다. 그들은 말한다.


“무교는 무교인데, 007카지노 가까운 무교에요.”


007카지노가 마치 돈가스 위에 얹어진 소스처럼 살짝만 뿌려진 무교. 완전히 빠져 들어가진 않고 한 다리만 살짝 걸친 형태의 007카지노. 세속주의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태의 007카지노가 아닐까 싶다. 어디 지방에 놀러 가면 절에 꼭 들른다거나,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는 사람들.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식에 있어 007카지노의 설명에 감응하는 사람들. 충분히 그럴 듯한 것은, 사실 사회적으로 구분을 해놔서 그럴 뿐이지 실제 007카지노는 ‘007카지노’라고 하기에는 다른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007카지노’라 함은 그 007카지노의 절대자, 그러니까 ‘신’을 믿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하지만 007카지노는 그런 것이 없다.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생의 괴로움과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본론으로 돌아와 십 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007카지노’에 대한 물음에 대해 나는 수 년 전 완전한 결론을 냈다. 보통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하나다. ‘그럼 결국 네 007카지노는 뭐로 정했냐?’ 하지만 뭐라 말하기가 무척 애매모호하다. 두루 공부를 해보니 대부분의 007카지노 창시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그 교리를 맹신하거나 007카지노 단체에서 원하는 것들을 다 따르지는 않는다. 굳이 분류하자면 ‘무교’인 셈이다. 여전히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합리성’이기 때문이고, 모든 007카지노를 공부한 결과 결국 중요한 건 ‘믿음’ 등의 어떤 007카지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 등에 대한 ‘실천’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맹신하지 않음’과 ‘합리성’이라는 속성은 무007카지노인만이 아니라 ‘007카지노’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가 007카지노를 갖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노라면 저절로 그 내용은 ‘007카지노’에 대한 그것과 대동소이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007카지노에 가깝지만 어쨌든 ‘무교’라는 현대인의 새로운 형태의 ‘007카지노’는 결국 ‘007카지노’ 자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부터 이 매거진에서 연재할 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쓴 것이다. 완전한 007카지노는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지만, 삶에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 007카지노의 방식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