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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와의 철학 Jul 03. 2024

#0. 대물카지노이라는 가스라이팅

열심히 살지 않으면 생기는 죄책감에 관하여

"대물카지노"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갓(god, 신)’과 ‘대물카지노’의 합성어로, 마치 신에 견줄 정도로 잘 살고 있는 바람직한 대물카지노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이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신화 얘기도 아니고직접적으로 ‘신’에 빗댄 대물카지노이란 뜻은 아니다. 단지 현대인은 각종 좋은 것들에 ‘킹(왕정 사회 최고의 수식어)’이라던가 ‘갓(신정 사회 최고의 수식어)’ 등의 접두사를 붙이는 귀여운 언어 습관을 갖고 있어서 만들어진 말이다.그렇지만 ‘아주 좋다’라는 의미에서 ‘갓’이 붙은 것임에는 틀림 없다. 다만 이 신조어의 한 가지 특징은, 그래서 그 ‘좋은 대물카지노’이 어떤 대물카지노인지는 단어 자체만 놓고 봤을 땐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조어의 의미가 즉시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먼저 추측을 한다. ‘신’이라는 최고의 접두사까지 붙은 삶은 어떤 형태일 것인가. 혹은 현대인은 어떤 삶을 두고 신에 빗댈 만큼 ‘좋은 대물카지노’이라 부르는가. 나도 고작 30대 초반이니 ‘요즘 사람’에 속하기는 한다. 하지만 ‘갓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주류의 사회인은 아니다. 나도 그 뜻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그게 어렵지는 않았다. 내겐 딱 와닿는 한 가지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하루하루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런 스트레스도 고민도 고충까지도 없는 그저 편안한 삶. 몸도 마음도 바쁘지 않아서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대물카지노. 내 주관적인 기준에선 그게 ‘좋은 대물카지노’이었다. 당연히 그 뜻이 맞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 삶을 싫어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실제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어긋난 수준도 아니고, 아예 정 반대였다.


주류의 현대인이 만든 신조어로서의 ‘갓생’이란, 하루 하루를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알차고 생산적으로 ‘열심히 사는 대물카지노’이다. 바쁘지 않은 게 아니라, 바쁜 대물카지노 중에서도 더 바쁘게 살아가는 알찬 대물카지노.

보통 이렇게 내 추측이 빗나가면 사람은 크건 작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갓생’의 진짜 의미는 내게 충격을 주지 못 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맥락을 생각한다면 ‘노력하는 대물카지노’이 ‘갓생’으로 여겨지는 거야말로 더 당연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선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근면하게 노력하며 부지런히 사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것이다.


근면성으로 터를 닦고, 피나는 노력과 고생으로 이루어낸 나라. 근현대에도 숱한 역경이 있었지만 국제 사회의 예측마저 뚫고 초고속으로 회복과 성장에 성공한 나라. 고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바람에 하물며 일상적 인사도 노력을 더 권하는 의미의 ‘고생하세요’다. 모두 노력하고, 모두가 노력의 궁극적 목적인 성공을 좇는다.


어쩌면 기성 세대는 젊은 현대인이 만든 ‘갓생’이란 신조어를 기특하게 볼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기성 세대가 한 것만 못할 것이고, ‘저 녀석’들은 편한 걸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열심히 사는 걸 좋은 대물카지노이라고 생각한다니. 그러고 보면 열심히 산다는 건 우리의 대표적인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되게 마련이다.


열심히 사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긴장의 연속이요, 긴장은 곧 여유와 휴식의 결핍이다. 열심히 사는 것을 당연시하면할수록, 우리는 여유와 휴식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사회에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 또는 지금껏 열심히 산 사람도 잠깐이라도 쉬려고 하면 불안이 엄습한다. 심지어 때론 이렇게 살면 안 될 것같은 죄책감마저 든다. 하지만 명백한 범죄나 부도덕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어떤 것에 죄책감까지 든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때로 어떤 죄책감은 인간의 본능이라거나 보편적 도덕 법칙이 아닌, 일종의 사회적 가스라이팅에 의해 생겨나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이란 누군가의 심리를 지배하는 방법으로 자주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여,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실제론 마냥 자신의 탓만이 아님에도 오로지자기 탓을 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역시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좀 열심히 살고 있지 않거나 딱히 이룬 게 없는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이 우릴 가스라이팅하는 게 아닐까.


더욱 건강한 삶을 위해, 모두가 각자를 착취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한 번쯤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왜 열심히 사는 게 당연하고, 우리는 열심히 안 살면 죄책감까지 느껴야 하는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시대에 왜 여전히 노력과 고생에 목매어 살아야 할까. 열심히 사는 것에는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왜 우리는 서로를 혹사나 착취까지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누구에게나 대물카지노은 자유로운 것이고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인데, 왜 우리는 자유롭지 못 하고 힘겹게 살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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