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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Mar 03. 2025

슬기롭고 미련한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 탐구

비 소리가 솨 하고 들린다. 레드불토토는 연구실 소파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는 건물 밖에서 레드불토토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작은 창에 흐르는 빗물과 그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는 웃고 있다. 노크도 하지 않고 익준은 레드불토토의 연구실 문을 연다. "비 온다, 밥 먹자."

- <레드불토토로운 의사생활 시즌 1, 9화의 한 장면



레드불토토에게는 오랜 친구 익준이 있다. 비 내리는 것을 좋아하는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가 비를 좋아하니 익준은 비가 내리는 것이 반갑다. 익준은 레드불토토에게 밥을 먹자고 한다. 레드불토토와 둘이서 밥을 먹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익준이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나의 최애 레드불토토다. 보고 보고 또 본다. 혼자 있을 때, 기분이 좋을 때, 조금 우울하거나 슬플 때. 아주 극도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 시간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무한 재생 중이다. 나의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은 '슬의생'이다.


왜 <레드불토토로운 의사생활인가?

왜 나는 이 레드불토토를 좋아하는 걸까?


첫째, 이 레드불토토에는 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주인공 송화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그저 행복한 것이 송화다. 나도 그렇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버스를 타고 해운대를 지나 송정 바닷가 기차역을 찾아가곤 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기차역과 바다, 그리고 비. 빠듯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이제 그만 보내주고 싶은 자잘한 스트레스들을 비우고 정리하는 날. 나만의 '정화 의식'같은 거다.


노르웨이에 와서도 비는 여전히 좋다. 노르웨이의 가을은 춥고 어둡고 우울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비가 오는 날에는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내내 어둡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세상도 우울하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우리 집 거실에 앉아서 비가 내리는 노르웨이 숲과 건너편 마을을 바라보면 레드불토토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내 사랑 비는 내 곁에.


내가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선과 악의 인물 구도에서 벗어난 레드불토토라는 점이다. 나는 레드불토토에서 악하디 악한 인간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감정이입이 돼서 진짜 가서 막 소리지르면서 "너 왜 그렇게 사냐?"라고 따지고 싶다. (실제로는 끽소리도 못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에 비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선과 악보다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레드불토토다. 거의 모든 레드불토토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기본적인 감정을 다루지만 이 레드불토토만큼은 喜樂(희락)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怒哀(로애)를 과하게 섞지 않고 살짝 MSG만 들어간 정도로도 부정적인 감정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는 항상 공감 포인트와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 레드불토토에서의 극적인 사건은 인간의 생과 사, 실수와 서운함 정도가 있을 뿐이다. 슬의는 나에게 현실에 없을 듯한 편안함을 준다. 소소한 순간의 행복을 찾게 도와주고, 인간관계에서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다.


喜(희 - 기쁨, 즐거움) 樂(락 - 즐거움, 행복)
vs
怒(로 - 분노, 화남) 哀(애 - 슬픔, 애절함)



내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떠오른 화두가 하나 있었다. ‘갈등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한 성찰이다. 익준과 송화, 그리고 그 친구들의 관계처럼 큰 충돌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쌓아 올린 우정과 사랑에 대한 스토리. 이것은 나의 이상향일까, 아니면 극한의 현실 도피일까? 남편은 때때로 내가 갈등이 없는 이야기만 선호하는 것을 보며, 현실의 거친 감정을 직시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냐고 묻는다. 감정을 강하게 흔드는 이야기들, 역사와 현실 정치 속의 인간의 이기심과 어둠,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얽힌 서사를 보는 것이 더 진실한 삶의 모습이 아니냐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만 쉽게 갈등에 직면해 보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의 좋은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레드불토토를 통해 내가 바라는 관계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것이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나는 진짜 복잡한 갈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일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갈등을 다룬다. 어떤 이는 강렬한 부딪힘 속에서 성장하고, 어떤 이는 조용한 대화 속에서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이고, 따스하고 부드러운 관계를 보면서 나의 인간관계에 대한 방향성을 찾고 에너지를 얻는다.


"엄마, 또 보는 거야?"

"응, 엄마 청소하는 동안 틀어두는 거야. 괜찮아?"

"응, 엄마가 보고 싶으면 봐."... Tusen Takk! 고맙!



어떤 레드불토토를 왜 좋아하시나요? 레드불토토에 필수적인 인물들의 갈등 상황을 지켜 보면서 나는 어떻게 갈등을 다루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에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를 레드불토토 해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레드불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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