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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하 Norway Jan 23. 2025

미각의 취향 - 벳33를 빼기로 했습니다.

오감 찾기 프로젝트 - 미각 (노하 작가)


노르웨이에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을 보면 “이거 먹어봤어요?”라고 권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Lakris(라크리스)라는 검은색 젤리다. 일단 권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입꼬리가 실룩거리는 걸 봐서는 맛이 좋은 건 아닐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젤리니까 우리가 상상하는 맛 영역 안에 존재하지 않을까 싶어서 먹어 보기로 했다. 길쭉한 모양의 검은색 젤리를 한 입 베어 물고 맛을 느껴본다. 쓰고, 짜다. 중간에 살짝 달콤해서 안도했다가 다시 쓴 맛과 짠맛, 흙을 먹는 것 같은 향까지 퍼진다. 얼른 목구멍으로 넘겨 버렸다. 이 짜고 쓴 맛의 독특한 조화 때문에 처음 이 젤리를 먹어본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지못미가 된다. 그래서 노르웨이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만나면 이 젤리를 권하면서 노르웨이 문화의 재미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 마트에 가면 젤리 코너에서 Lakris(라크리스) 젤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남녀노소 다 즐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노르웨이 사람들 중에서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에게도 학교 친구들이 Lakris(라크리스) 젤리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정말 좋아하는 애들도 있고, 정말 싫어하는 애들도 있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Lakris(라크리스)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감초인데, 감초는 소화에도 좋고 호흡기 질환이나 항산화 효과도 좋은 약재다. 감초는 다른 약재의 쓴 맛이나 독특한 맛을 중화시키고 단맛을 내서 한약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중요한 약재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라는 말을 표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박하사탕이나 인삼 젤리를 먹듯이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몸에 좋은 감초를 Lakris(라크리스) 젤리로 만들어서 먹는 듯하다.


그런데 노르웨이 사람들은 감초에는 없는 짠맛(염화암모늄 Salmiak)을 추가해서 짜고 쌉쌀하면서 단맛을 가진 Lakris(라크리스)를 먹는다. 이 젤리 맛의 충격과 여파는 크다. 감초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는 일단 Lakris(라크리스)가 들어간 젤리며 초콜릿, 캐러멜, 캔디 등등을 모두 배제하는 나만의 벳33이 생겼다.


벳33



나만의 벳33을 찾는 법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노르웨이는 알코올 규제가 심한 나라라서 와인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4.7% 이상이기 때문에 Vinmonopolet이라는 정부가 운영하는 독점 주류 매장에서만 구입이 가능한데 영업시간이 짧고 매장도 많이 없다. 마음을 먹고 매장에 찾아가도 어려움이 있다. 와인의 종류가 워낙 많으니 내 벳33의 와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와인 진열장 앞을 서성거리다가 다른 사람들이 사가는 와인을 따라 사기도 하고, 지인의 추천을 받은 와인을 직원에게 찾아달라고 해 마셔 보기도 한다. 하지만 뭔가 내가 주도적으로 고르지 못했기에 와인의 마실 때의 행복감이 상쇄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골라 보자고 마음을 먹고 노르웨이어로 적힌 와인 라벨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Lakris(라크리스)라는 단어였다. ‘어라, 이 단어가 여기에 있네?’


나는 일단 와인을 고를 때 Lakris(라크리스) 향이 포함된 와인을 자연스럽게 거르기 시작했다. 사실 와인에서의 Lakris(라크리스)는 포도 품종과 숙정의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감초향을 의미하는 것이지 감초 성분을 직접 와인에 넣는 건 아니다. 벳33을 정확하게 알려면 일관되게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Ripasso라는 제조 기법이 사용된 와인을 순서 대로 마셔보고 있다. Lakris(라크리스) 향이 들어가 있는 것에 비해서 빠져있는 것들이 확실히 더 맛있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걸 마셔보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어. 와인을 잘 모르니까’라고 했었다면 이제는 ‘Lakris(라크리스) 향이 없고 베리류나 견과류 향이 있는 걸로 골랐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한다.


나이가 점점 들수록, "이건 싫어"라고 느끼는 것들이 늘어난다. 아집이 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점점 더 명확히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주인공 블룸은 하루 동안 도시를 걸으며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점차적으로 인식한다. 그는 번잡한 도시 소음, 가식적인 사람들, 어울리지 않는 장소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고요'와 '안락함'을 찾아간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으로 자신의 벳33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북유럽에 살면서 나도 가끔 강력한 자극으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발견할 기회를 얻는다. 그 출발점은 '싫어하는 맛'이었다. Lakris(라크리스)를 내 벳33에서 일단 배제한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맛’을 하나씩 빼가면서 좋아하는 맛과 그 나머지 것들을 찾아 나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의 벳33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결과물이다.


아마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조금 더 선명해질 것이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거리를 두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내 삶에서 뺄셈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내가 진짜로 내 인생에 남기고 싶은 것이 남을 것이다. 만약 나이가 더 들어 비워지고 홀쭉하게 남은 나를 스스로 보았을 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삐뚤어지지 않고 유연하면서도 따뜻한 벳33을 가진 매력 덩어리 할머니이길 바라본다.


뺄셈으로 얻은
미각의 벳33:
당신은 어떤 맛을
싫어하시나요?


벳33
벳33
라크리스향이 없는 와인, 라크리스가 들어간 다크 초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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