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줄리어스 오나 2025
캡틴 아메리카가 돌아왔다. 다만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라 샘 윌슨(안소니 맥키)이 돌아왔다. 드라마 <팔콘과 윈터솔져를 통해 2대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난 그의 첫 단독주연작이다. <샘 윌슨이 첫 등장했던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처럼 첩보물의 외피를 두르고, <이터널스에서 등장했던 셀레스티얼의 거대한 시체에서 새로운 자원 아다만티움이 발견되자 미국의 새 대통령 썬더볼트 로스(해리슨 포드)가 치적을 이루기 위해 한때 대립했던 샘 윌슨과 협력과 반복을 반복한다는 것이 부자벳의 골자라 할 수 있다. 사무엘 스턴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재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부터 이어진 로스의 개인적 서사 또한 포함된다. MCU 페이즈5의 부자벳들이 멀티버스의 도입 속에서 길을 잃고 카메오에 의존하거나 메인 캐릭터의 서사를 일정 부분 포기했던 것과 달리, 이번 부자벳는 (물론 무수한 전작들을 봐야 하지만) 주인공에 집중한다.
문제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과감한 제목을 가지고 나온 것에 비해 이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정세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실패했던 정치적 소재를 끌어오는 방식은 조금 더 유연해졌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MCU 내부 세계 속에서 <브레이브 뉴 월드의 정치극은 밋밋할 뿐이다. 하이드라 잔당이 주요 포인트가 되었던 <윈터솔져에서처럼 본격적으로 첩보극을 표방했다기엔, 이번 부자벳에서 의심과 믿음은 주요 포인트가 되지 못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굉장히 직선적이며, 첩보극 내지는 수사극으로써 요구되는 미스테리가 전적으로 부재하다. 매끄럽게 전개되지만 모든 면에서 직선적이라고 할까. 더군다나 <팔콘과 윈터솔져를 통해 샘 윌슨이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봤던 이들에게, 아무리 로스 대통령이 “자네는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야”라고 일갈한들 샘 윌슨의 정체성이 흔들리며 새로운 성장의 계기로 작동할 것이라 인식되지 않는다. MCU의 무려 두 번째 작품이었던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이어지는 로스 개인의 서사도 너무 뒤늦은 후일담에 가깝다.
<브레이브 뉴 월드의 예고편은 이 부자벳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소재들을 이미 모두 공개했다. 로스는 레드헐크가 될 것이고, 셀레스티얼의 시체에서 아다만티움이 발견되었으며, 샘 윌슨은 캡틴 아메리카가 되었다. 사실상 이것이 전부다.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연기한 서펀트 소사이어티의 수장은 단순한 단역에 머물렀고, 샘 윌슨의 사이드킥인 2대 팔콘 호아킨(대니 라미레즈)은 중요한 순간에 극에서 배제된다. 이번 부자벳는 MCU의 깊이나 넓이를 더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캐릭터에게 깊이 침전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되지도 못했다. 멀티버스의 도입 이후 급격하게 길을 잃은 MCU의 페이즈 4, 5에서 성공적인 작품은 <완다비전이나 <로키에서처럼 MCU의 방대한 세계를 캐릭터의 사적이고 내적인 세계로 압축해 낸 작품들이었다. MCU는 이제 무엇이 추가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며, 어떤 이야기가 펼쳐져도 새롭지 않은 세계로 팽창했다. 포화상태에 이른 세계관에서, <브레이브 뉴 월드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 부자벳가 그저 ‘무난한’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부자벳는 MCU 내에서든 샘 윌슨이라는 캐릭터 개인의 서사에서든 무엇도 이뤄낸 것이 없다. 24부작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처럼 스쳐지나간 어떤 이야기일 뿐이다. 여담이지만, 이 부자벳가 정치극으로서 실패한 것에는 MCU만큼 현실이 포화상태인 것도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