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웨딩을 결정하게 된 과정
노웨딩은 어떨까?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 식사를 하고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자주 오고 가던 어느 날, 애인은 크랩스이라는 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게 물었다. 사실 나는 크랩스에 대한 로망이 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랩스을 하지 않는 상상을 해본 것도 아니었다. 당황했었나? 물음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노웨딩은 어때?
애인은 30분가량 진행되는 크랩스이 허례허식같다고 했다. 크랩스을 하지 않고 가족, 친한 지인들과만 식사자리를 가지는 건 어떨지 물어보며 만약 내 의견이 다르다면 내 의사를 존중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크랩스이 단순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크랩스보다는 결혼 생활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웨딩업체를 배불리는 게 싫다고도 했다. 크랩스에 쓸 돈을 아끼면 그만큼 모을 수 있는 돈도 많아지고, 더 빠르게 목돈을 모아 집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의 생각이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럼 내가 앞으로 가야 할 크랩스과 축의금은 어쩌고, 너무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노웨딩을 하면 당연히 축의금을 받지 않으니 말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고민을 해보겠다고 답한 뒤 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일기에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하고, 크랩스에 대해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만 길어질 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 하면 안 한다고 후회하고, 하면 한다고 후회하지 않을지.. 엄마가 이해해 줄지.. 짱구를 굴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마음의 결정을 해야 앞으로의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수 있으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크랩스보다 중요한 결혼 생활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 함께 식사를 했던 날, 아버님은 애인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예뻐하셨다. 첫째 아들이라 더 각별하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지만, 한편으론 우리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내 자랑도 많이 하고, 나를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했을텐데 싶었다. 나도 나를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아빠가 있었다면 든든했을텐데. 아빠에게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을 소개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에 잠기며 한 시간을 내리 울었던 것 같다.
아빠 생각에 울었다는 말에 애인은 아빠를 만나러 추모공원에 다녀오자고 했다. 먼저 선뜻 가자고 해준 것도 고마웠는데, 아빠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지켜봐 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말을 듣고 약간 울컥했다. 사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었으면 울컥할 일도 없었을 거다. 항상 나를 배려하고 웃게 해주는 그와 함께라면 크랩스을 굳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랩스보다는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결혼한 이후에 살아가는 삶이 중요하다는 그의 입장에 마음이 많이 기울게 되었다.
우리의 선택을 옳은 것으로 만들기
추모공원을 다녀오고 일주일 뒤, 우리는 조깅에 수영까지 야무지게 하고 카페에 갔다. 크랩스에 대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애인에게 말을 꺼냈다.
"난 자기 생각이랑 같이, 노웨딩하고 싶어!!"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하겠지만 우리의 결정을 옳은 것으로 만들면 된다. 어떤 선택이든 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식을 올리지 않음으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감수하고 애인과 애인의 가족이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 있겠지만, 그것들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중요한 거니까 우리의 선택을 옳게 만들고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간다면 분명 이 선택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내 생각을 말했더니 애인은 크랩스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해준 것에 대해 거듭 고맙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애인을 원망하지 않아야 할 텐데..! 어쨌든 결정하기 전까지 나에겐 선택권이 있었고 그 선택을 한 것은 바로 나다. 우리의 선택이 옳게 만들고 싶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이다!
식은 올리지 않되 웨딩 촬영은 하기로 했다. 셀프로 찍을지, 스냅작가를 쓸지를 두고 새로운 고민이 시작 됐다.
크랩스은 왜 이렇게 선택할 게 많을까?
우리 과연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