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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2. 2025

[세이벳일기] 스타벅스에서 애엄마들에게 번호 따이다

공동세이벳의 짜릿한 맛 이제야 알게된 썰

세이벳사진ⓒpexels


나만 조리원 동기 없어...,


세이벳 산후조리원 동기가 없었다. 코로나 시대가 낳은 쓸쓸한 풍경일지, 내가 간 조리원은 식사도 모두 방으로 받아 혼자 식사하는 시스템이었고, 어쩌다 수유실이나 수업에서 마주친 여자들과도 좀처럼 친해질 만한 빌미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엔 나도 그다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지가 않았던 터라 더더욱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랜만에 조동 모임~’,

‘한 번 만나면 수다가 끊이질 않는 조동’


조동 조동..., 아기 세이벳라면 무릇 하나의 잇템처럼 장착하는 그것을, 나는 산후조리원을 떠나는 날까지 그렇게 끝끝내 만들지 못한 채 퇴소하고 말았다.





세이벳사진ⓒpexels


수원에서 아이를 낳은 나는 세 달 후 용인으로 이사를 했다. 태어나 용인에 처음 살아보는지라 달리 아는 곳도 없었고 당연하지만 동네 친구도 없었다. 사람 다운 소통도 못하고, 꼼짝없이 집에 갇혀 세이벳만 하다 보니 나는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당시 나의 유일한 낙은 이제 막 100일이 넘은 아기를 데리고 집 근처 스타벅스를 다녀오는 것뿐. ‘진짜 조리원 동기라도 사귀어 놓을 걸 그랬나...’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세이벳를 다녀오며 하나마나한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던 때였다.





세이벳사진ⓒpexels


그 날 세이벳 일어난 일


그날도 아기를 데리고 무작정 스타벅스로 출근해 옛 친구와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 둘이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랑 출산한 시기가 비슷한지 커다란 유모차에 갓난쟁이들을 안은 아기세이벳이었다. 반가울 법도 한데, 호르몬의 대폭발로 마음이 뾰족했던 나는 ‘뭐야, 왜 자꾸 쳐다봐’하는 반감이 먼저 들었고, 일부러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긴긴 통화가 끝나자 두 아기 세이벳 중 한 명이 나에게 성큼 다가와 묻는 게 아닌가.


“저... 혹시 여기 힐스테이트 사시나요? 우리도 여기 살거든요”


희한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뾰족했던 나의 마음이 그 사근한 한마디에 사르르 녹는 것이었다. 소심한 성격에 직접 누군가에게 다가가긴 싫고, 누군가 내게 다가와주길만을 기다렸던 걸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두 아기세이벳는 자신들의 커피잔을 들고 내 테이블로 넘어왔고, 그렇게 영화 같은 한 장면이 어느 볕 좋은 가을날 내 삶에 훅, 들어왔다.





사진ⓒpexels


우리는 일명 힐스테이트 세이벳동지들이다. 아기엄마 지희씨는 작년 6월에 둘째를 낳은 엄마로 붙임성이 매우 좋았다. 둘째 맘이다 보니 아는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녀와 있으면 세이벳용품부터 발달지식까지 하루에도 몇 개씩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를 얻어갈 수 있었다. 교사인 아기엄마 수란씨는 작년 4월에 아기를 낳은 엄마로, 둥글둥글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일회성 만남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인연이었지만, 그녀들은 경계심이 많은 내게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걸어주었으며, 단톡방을 만들어 공동세이벳의 짜릿한 세계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그만큼 나는 느리지만 성실하게 녹아들었다.


성실한 인연 앞에 장사 있을까.

우리는 그 이후 같이 장을 보고, 카페를 다니고,

서로의 집에서 마라 엽떡을 시켜 먹으며

삽시간에 동네친구가 되어버렸다.





사진ⓒpexels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아파트단지 내 아기세이벳의 커뮤니티가 생겼는데, 그곳에서 한 아기엄마를 또 알게 되었다. 여느 날처럼 셋이서 장을 보러 가려는데, 아기엄마 연아씨가 같이 가도 되냐며 합류한 것이었다. 그녀는 작년 8월에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이제 막 코 끝이 추워지려 하는 늦가을이었는데, 유모차 방풍커버(바람을 막아주는 유모차 추가 구성품)도 없이 허겁지겁 갓난쟁이를 끌고 나온 것이, 누가 봐도 한 달 전의 내 모습이었다.아무것도, 아무도 모르는 이곳 외딴섬에서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고팠던 나의 모습.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사진ⓒpexels


세이벳동지에게서 얻는 인생의 위로

그렇게 지희씨 수란씨 나, 그리고 연아씨까지, 우리는 짝수까지 맞춘 완전체 세이벳팸이 되어 한 주도 빠짐없이 만남을 이어나갔다.“저 방풍커버 달았어요!”, “이유식 용기 뭐 사야 돼요?”, “지금 OO마트 할인한다는데 같이 가볼까요?”. “오늘은 누구네 집에서 모이죠?”우리는 서로의 집을 드나들고, 아기옷과 세이벳용품을 공동구매했으며, 장을 보고 양파나 감자를 나눠 가졌다.


뿐만인가. 서로의 집에 갈 때는 가끔 턱받이나 분윳물도 안 챙겨 다니는 경지에 이르렀더랬다. 그렇게 가을이 갔고, 겨울이 되었으며,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그 사이 우리 세이벳들 사이에서는 더 어마어마한 혁명들이 일어났는데. 고개도 못 가누던 연아씨네 아가는 이제 스스로 앉아 놀이를 하고 있으며, 수란씨네 아가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곧 돌을 앞두고 있다. 우리 집 꼬마돼지 해인이는? 처음 그녀들을 만났을 때 제 힘으로 앉지도 못했는데, 이제 침대를 붙잡고 스스로 일어나겠다며 난리부르스다.





사진ⓒpexels


친구에 대한 가치관도 세이벳를 하면서 변해간다. 예전엔 다른 공통분모가 없는데 아기를 낳았다고 친해질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웬걸. 이제 우리는 넷이 모이면 아기 이유식 얘기 만으로도 하루 반나절은 떠들 수 있게 되었으니. 아기 잠 얘기, 밥 얘기, 세이벳용품 얘기가 엄마들의 시간을 가득가득 채워 나가고 있다. 세상에 그 어떤 공통분모보다 거대한 공통분모가 바로 ‘세이벳’란 걸 왜 몰랐을까.


외롭고 치열했던 나의 세이벳라이프에 그녀들이 나타나주어 어찌나 다행인지 문득 생각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사라진다는데. 미치게 힘든 세이벳의 시간은 확실히 함께하면 덜 힘드니, 그래서 다들 조동조동 하는지도. 비록 조리원동기 만들기에는 실패했지만, 아파트단지 세이벳동기가 생겼으니 인생은 공평한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 견딜 수 없는 일들도 그녀들의 “나도 그랬어요, 듬지씨 힘내요”라는 말 한마디로 사르르, 견뎌지는 요즘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PDF 인간관계 비법서 『오늘보다 내일 나은 인간관계


■ CONTACT

인세이벳그램@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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