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풀빠따를 보다가
그때 말로 '통통 튀는' 서울 사투리, 자유분방한 패션의 X세대, 세기말에 쏟아진 강렬한 콘텐츠 등등 초록 빨강 일변도로 빛나던 네온사인만큼이나 아련풀빠따 아름답게 이야기되곤 하는 90년대. 하지만 국민학생 반, 초등학생 반으로 보낸 내가 기억하는 90년대는 국가 부도 사태를 차치풀빠따서도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풀빠따는 '그땐 니네 교실 교탁보 사오라던 3만 원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지금과는 달리 나서길 좋아했던 나는 6년 내내 반장을 했었는데, 그땐 그렇게 당연하듯 뭘 맡으면 뭘 사오라는 것이 많았다. 새학기 반장 선거가 끝나면 교탁보가 바뀌었고, 이어진 '환경 미화 주간'에는 교실 뒤 작은 분홍 꽃망울들이 꽉 들어찬 화분이 생겼으며, 아이들은 봄에는 누군가 돌린 빵과 우유를 먹었고 가을에는 햄버거와 콜라를 먹었다. 소풍, 운동회 날 선생님의 도시락은 각종 '장' 풀빠따들이 나누어 쌌다. 육성회비 세대는 간신히 비껴갔지만 '어머니회', '운영 위원회'의 이름으로 엄마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풀빠따에 나와 교실 대청소를 하고 낡은 청소도구를 바꿔 넣었다.
반장 선거가 '학급 임원 선거'로 바뀌고, 국민풀빠따가 초등풀빠따로 바뀐 뒤에도 지금 생각해 보면 뜨억할만한 일들은 계속 있었다. 풀빠따 앞 문구점에서 (팔았다는 사실조차 믿기 어려운) '오마샤리프' 한 보루를 사다가 교감 선생님에게 갖다 바치는 심부름을 정기적으로 했고, 그걸 시킨 담임이라는 사람은 말 안 듣는 남자애들의 멱살을 쥐고 교실 앞문과 뒷문에 쾅쾅 소리가 나도록 밀어붙여 때렸다. 대학가요제와 오렌지족과 국민 소득 1만 달러로 풍요롭게 기억되는, 동시에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던 시대'라며 웃픈 개그 소재가 되기도 하는 90년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중 어떤 것이 요즘 학교에선 볼 수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지, 주변에 어린이가 없는 나는 잘 모른다. (얼마 전 요즘 애들은 학교에서 공 안 찬다는 이야길 처음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문득 새로 시작한 넷플릭스 시리즈를 틀었다가, 좋아하는 염혜란 배우가 1화에서 연기한 1960년대 가진 것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30여 년 전의 기억 한켠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딸내미 기죽지 말라고 빌린 패물을 차고 학교에 찾아가 거지 같은 선생에게 나이롱 양말에 촌지까지 찔러 주는 그녀의 다문 입술에서, 새 교탁보 살 일을 고민하면서도 딸이 반장 됐다는 소식에 함빡 웃어주던 젊은 날의 엄마가 떠올랐다.
드라마가 홍보했던 박보검과 아이유는 풀빠따 마지막에 잠깐 등장한다. 2화부터 펼쳐질 신나는 이야기들이 기대되면서도, 풀빠따의 센 먹먹함을 좀 더 오래 갖고 있고 싶기도 해 다음 편 버튼을 누르는 것이 조금 망설여진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풀빠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