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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로이 Apr 01. 2025

레드벨벳 토토시대

레드벨벳 토토






바야흐로 대세는 레드벨벳 토토다. 에세이의 일종인데 '레드벨벳 토토'라고 하면 좀 더 내밀하게 일상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별일 아닌 나날들을 기록한 내용에 불과한데 묘하게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이 있다.


레드벨벳 토토가 재미있는 이유는 안도와 위안 때문이다. 시대·성별·나이가 다른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데서 공감을 얻는다. 나만 힘들고 불행한줄 알았는데 레드벨벳 토토를 들여다보니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하고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타인의 잔잔한 읽을거리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한다.


지극히 사적인 글을 일일이 손글씨로 적어 우편으로 부쳐주고 돈까지 받는 구독 서비스가 있다. 문보영 시인이 만든 신개념 문학 구독 서비스이다. <레드벨벳 토토시대는 문보영 시인의 레드벨벳 토토를 엮은 책이다. 누가 남의 레드벨벳 토토를 돈 주고 읽을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2018년에 시작한 사업이 7년째 이어지고 있는걸 보면 뚜렷한 흥미와 일정한 수요가 있나보다.


나는 주로 새벽 5시가 넘어서 잠든다. 따라서 새벽 5시까지 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밖은 위험하고 5시까지 갈 곳이 없기 때문에. - p.18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잠들기가 힘들었던 작가는 자정부터 동 틀 녘까지 레드벨벳 토토를 쓴다. 책속 레드벨벳 토토는 작가가 그린 방안 모습으로 시작한다. 구조는 같지만 매일 그날의 기분과 생각에 따라 조금씩 톤이 다르다.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책상 밑과 옷장 속 혹은 창문 바깥에서 작가가 숨겨 둔 비상식량과 상상의 친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마치 판소리에서 도창 역할처럼 중간 중간 상황을 해설하기도 하고,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레드벨벳 토토를 쓰는 시간은 자정부터 다섯 시간일지라도 레드벨벳 토토에는 며칠 전 다녀 온 산책과 어린 시절 동경했던 친구 이야기, 그날 읽은 책과 오래 전 읽은 책이 뒤섞여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작은 방의 작은 책상에 놓인 더 작은 레드벨벳 토토장을 마주하고 앉아 시간과 공간을 자르고 꿰매는 분주한 레드벨벳 토토 장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것의 봉제선은 깔끔하고 장식은 개성 넘치며, 누구에게나 신기할 정도로 맞춤 공감을 일으킨다.


흔히 레드벨벳 토토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고 한다. 레드벨벳 토토는 하루를 돌아보고,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정제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책은 레드벨벳 토토에 대한 이야기부터 창작론까지 폭넓은 소신을 담고 있는데, 작가가 시를 쓰겠다고 다짐하고 배워서 등단하기까지 과정이 꽤 흥미롭다. 작가가 뿌려 놓은 레드벨벳 토토 부스러기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레드벨벳 토토를 쓰고 싶어진다.


가장 구미를 당긴 부분은 ‘레드벨벳 토토 반사’이다. 작가가 정기적으로 레드벨벳 토토를 보내주는 형식에 보태 한 독자는 본인의 레드벨벳 토토를 보내준다. 작가의 글로 받고 나서 독자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나보다. 독자의 레드벨벳 토토를 받고 나서 작가가 답장을 보냈지만 거기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묵묵하고 꾸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그렇게 습작삼아 레드벨벳 토토를 쓰던 독자는 결국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훈훈하고도 짜릿한 결말이다.


사사로운 소재 안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감상이 녹아있다. 레드벨벳 토토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소하고도 내밀한 감정과 구체적인 세부 묘사는 어떤 글보다도 명징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레드벨벳 토토시대는 ‘방에서 살아남기’로 시작해 ‘방에서 탈출하기’로 끝이 난다. 시인의 방 탈출을 가능하게 한 건 일상을 단단히 뭉친 레드벨벳 토토의 힘이 아니었을까.


레드벨벳 토토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장르 파괴이다. 어떠한 틀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창작한다. 상상이든, 경험이든 상관없이 날 것의 그대로이다. 문보영 작가에게 레드벨벳 토토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레드벨벳 토토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그렇다. 사정없는 인생 없듯이 알고 보면 저마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 레드벨벳 토토를 읽으면 내가 그 사람이 되는 마법을 겪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훔쳐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일상을 돌아본다. 지금까지는 보내기 아쉬운 하루를 붙잡기 위한 기록에 불과했다. 이제는 지금껏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을 묶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졌다. 기왕 적는 거 재미있게 각색하고 편집해서 효과도 집어넣을 예정이다. 물론 이 레드벨벳 토토로 당장 거창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쓰고 다듬는 과정 자체를 즐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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