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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헤븐카지노'과 '현실' 너머

‘뉴헤븐카지노’적으로 살고 싶었다. 돈이 없어도 배낭 하나 메고 해외로 떠나는 친구들이 그리도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배낭을 메고 근사하게 떠나는 친구들을 뒤에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현실’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자란 내가 그리도 미웠다. ‘뉴헤븐카지노’적으로 살지 못하는 내가 그리도 미웠다.


나는 ‘현실’에서 자랐다. 패배감, 우울, 좌절, 절망 그리고 그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악다구니들의 세계. 나는 그 생선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에서 자랐다. ‘뉴헤븐카지노’은 ‘현실’ 앞에서 숨을 쉬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든 돈이 제법 되었지만,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현실’에서 자란 나는,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헤븐카지노’의 향기는 생선 비린내 앞에서 악취가 되었다.


나는 이제 ‘뉴헤븐카지노’적인 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뉴헤븐카지노’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현실’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뉴헤븐카지노’적일 수 있었던 건, ‘현실’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그것이 더 이상 그 친구들이 ‘뉴헤븐카지노’적인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유였다. 마흔을 훌쩍 넘어서야 그들은 ‘현실’에 발을 딛게 되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뉴헤븐카지노’적으로 살고 싶다. 생계조차 불가능한 글을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삶. 싸우지 말아야 할 수 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링에 올라 기꺼이 싸우는 삶. 돈이 없어도 어느 날 눈을 떠서 해외로 떠나는 삶. 목숨을 걸어 내가 아끼는 이를 구원하는 삶. 나는 진짜로 ‘뉴헤븐카지노’적으로 살고 싶다. ‘현실’을 몰라서 아니라,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뉴헤븐카지노’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진짜 뉴헤븐카지노’이니까.


‘진짜 뉴헤븐카지노’은 ‘뉴헤븐카지노’과 ‘현실’ 너머에 있다. 그곳에 ‘철학’이 있다. 나는 ‘철학’으로 그 썩은 비린내가 진동하는 ‘현실’을 가로질러 지중해 햇살이 넘실거리는 ‘뉴헤븐카지노’으로 가고 싶다.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나의 ‘뉴헤븐카지노’을 찾으러. 나는 철학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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