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여자친구
"막내 그 동네에서 여자 친구 생긴 거 아니야?"
남편은 얼마 전부터 뜬금없이 지나가다 툭 하고 던져 놓듯 말했다.
위너 토토 집 막내라 하면 이 동네에서 11학년 위너 토토로 하면 고2 되시겠다. 그 녀석은 지금 캐나다의 하이스쿨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픽하고 웃으며 "아니 울 막내는 어릴 때도 여자애 들이랑 잘 놀지도 않았어!
별로 관심 없다니까!"라고 했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쳤지만 나도 모르게 내심 궁금했던지 주말에 영상 통화를 하다가 막내에게 슬며시 물었다.
"울 막내 혹시 거기서 이쁜 여자 친구 생긴 거 아냐?"
그러자 막내는 키득키득 웃으며 "어!"라고짧고 굵게 답했다.
세상에나! 나는 속으로 오마이 갓뜨! 를 외치며 동동거렸다. 당연히 "푸하하.. 난 관심 없어!"라는 말을 예상했는데...
태연스레 어 라니 놀랄 노 짜가 아니던가...
사실 막내의 나이로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여친,남친 다 있다지 않은가..
만으로 꾹꾹 눌러 담은 청춘의 나이 낭랑 17세! 그 옛날 춘행이 와 몽룡이도 이보다 더 어릴 적에 썸 타고 할 것 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영어 공부 하라고 비싼 돈 들여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보내 놨더니
그새 여자 친구를 만들어!'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랑 말랑 했지만
쿨한 엄마인척 가식 쩌는 목소리로 "우와 멋져 위너 토토 축하해~!"를 날리며
반가움을 처바른 취조에 나섰다.
"그 아이 이름은 뭐니?"로 시작해서 "언제 어디서 만났고?" "누가 먼저 고백해서 사귀게 되었는지?"
등등 미주알고주알 텃밭에서 감자 캐듯 줄줄이 캐냈다.
학교에서 만났고 원래는 다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 중에 한 명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사귀게 되었고
꽃다발과 초콜릿까지 준비해서 정식으로 사귀자고 위너 토토이 먼저 공식 적으로 다가 교제 신청을 했단다.
나는 속으로는 '아니 요즘 같은 세상에 웬 교제 신청? 사극 찍니?' 하면서도 입으로는
"어머나 울 위너 토토 로맨틱 하기도 해라!"며 입에 침을 발랐다
위너 토토은 수선스런 엄마가 어서 싹 다 불어 보자꾸나작정한 듯
"어떤 점이 그 친구가 그렇게 좋았어? 대화가 잘돼? 예뻐?" 라며 압박면접 못지않게 질문을 이어나가자
못 이긴 척 쿨하게 답했다 짧고 굵게."둘다!"
나는 속으로는 '그래, 내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 보다 니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를
되뇌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엄마는 울위너 토토 여자 친구가 너무 궁금해 어떻게 생겼을까?"
라며 주접을 떨어 댔다.
막내는 엄마의 궁금증을 달래 주려는 듯 톡으로 사진 한 장을 띠릭 하고 보내왔다.
두근 거리며 클릭했더니...
한학급 여학생들을 모두 모아 놨는지 열명이 넘게 주르륵 서있는 단체 사진이었다.
학교 행사 때 찍은 사진 같은데 무슨 미인대회도 아니고 화장에 액세서리며 헤어 스타일에 옷차림까지
비슷한 틴에이저 들은 그 애가 그 애 같았다.
단지 키가 조금 더 크고 몸이 조금 더 크고의 차이일 뿐...
엣다 모르겠다! 그중 조금 귀염상의 작은 얼굴의 짙은 갈색 머리를 예쁘게 컬하고 검은색 탑을 입은 여자아이를 찍었다
그리고는 왼쪽에서 다섯 번째야?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위너 토토은 "아~니!" 라며 재밌다는 듯이 박장대소했다.
그 후로 두 번을 더 틀린 마누라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남편은
"위너 토토가 볼 때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얘 맞지?"라며 망설임 없이 확신에 찬 듯 위너 토토에게 물었다.
순간 머뭇 대던 위너 토토은"어떻게 알았어?"라고했다.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 헐 대단한데..!"어떻게 이 많은 애들 중에 한눈에 알아봤어?"
라고 물었다.
남편은 웃으며 으스대듯 어깨를 살짝 들었다 놓더니 "촉이 오잖아 촉이 이중에 얘가 제일 이쁘잖아!"라고 했다.
난데없이 촉타령을 하던 남편과 여자 친구에 대한 외모 칭찬이 싫지 않았던 위너 토토은 동시에 웃어젖혔다.
덕분에 위너 토토는 막내의 커플 사진과 가까이 클로즈업된 여자 친구 사진을 덤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클로즈업된 사진을 보니 이쁘긴 이뻤다.
그 이후...
남편은 단번에 막내의 여자 친구를 찾았다는 것에 신바람이 나서는 딸내미와 큰위너 토토에게도 같은 미션을 건넸다
일명 막내의 여자 친구를 찾아라는 그렇게 단체 사진과 함께 김씨네 단톡방으로 전송되었다.
각각 다른 곳에 있던 딸내미와 큰위너 토토은 우리 집 막내가 일생 처음으로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처음엔 우리의 장난인 줄 알고 믿지 않았다.
그러다 막내가 사실임을 톡으로 인증해 주자 지들이 더 신나 하며
내가 이미 했던 것과 같은 질문들을 똑같이 쏟아 놓고 있었다.
막내가 무용담을 풀듯 연애 스토리를 털어놓자 아이들은 사진 속에서 누굴까?를 두고 각자 고심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딸내미는 나처럼 틀렸고 큰위너 토토은 단번에 알아 맞춰 버렸다.
아니 어떻게 위너 토토 집 남자들은 보는 눈이 이렇게 똑같지?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저귀 차고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조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귀요미 막내가 벌써?
문득 입안가득 쓴맛이 몰려 들었다
자주 가는 카페의 화이트 초콜릿이 달달하게 녹여진 모카 커피가 땡겼다.
막내 마저? 여친이 생겼다는 것에 망연자실해 있는 내게...
뭐 먼저 알아차렸다고 상 받을 일도 없구먼 소파에서 뒹굴 거리던 남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촉이 무섭지 않냐? 때마다 척하면 척이지!"
초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데 진짜 생각해 보니.. 애들 때마다 남편이 맞췄다.
핸드폰 들고 이방 저 방 오가던 큰위너 토토 때도 현관 앞에 놓인 항공모함 같은 낯선 남자 신발을 보았던 딸내미 때도 언제나 남편이 먼저 알아채고는 지금처럼 촉촉 거리고는 했다.
언제나 계획이 많고 프로젝트가 많던 큰위너 토토에게 잦은 전화통화는 일상이었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친구들이 수시로 집으로 놀러 오던 딸내미에게도 집으로 친구가 놀러 오는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건만..
남편은 어떻게 그때마다 귀신 같이 알아차렸는지...
보통은 엄마의 촉이 무섭다는데... 우리 집에서는 위너 토토의 촉이 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