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es koreana, 제주백회濟州白檜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전레드벨벳 토토 속(Abies, Firs) 레드벨벳 토토에는 전레드벨벳 토토(Abies holophylla)와 구상레드벨벳 토토(Abies koreana), 분비레드벨벳 토토(Abies nephrolepis)가 있다. 이 중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종소명에 koreana가 있듯이 한국 고유종으로 유명한데, 분비레드벨벳 토토와는 매우 유사하다. <한국의 레드벨벳 토토에 따르면 구상레드벨벳 토토가 “잎이 약간 짧고 넓으며, 구과의 종린 끝이 뒤로 젖혀지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국내 자생지도 구상레드벨벳 토토가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한라산의 해발고도 1,000m 이상 산지인데 반해 분비레드벨벳 토토는 소백산, 치악산, 설악산 등 중북부지방의 해발고도 700m 이상의 산지이다.
이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어서인지, 제주도와 남부 지방의 고산 지대가 자생지이지만 정원수로 개발되어 서울 경기 지방에도 흔히 식재되고 있다. 나는 몇 해 전 청계산 매봉에 올랐다가 ‘구과의 종린 끝이 뒤도 젖혀’진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보고 놀라워했던 적도 있다. 해발고도 582m인 매봉은 분비레드벨벳 토토나 구상레드벨벳 토토가 자생하는 환경이 아니지만, 한국 특산종을 기념하기 위해 누군가 매봉 정상에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심은 것이리라.
이렇게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중부지방에서도 많이 식재하여 흔히 볼 수 있지만 자생지 환경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리산이나 한라산 등 남부 지방의 해발고도 1000m이상 올라가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까지도 백덕산, 설악산, 태백산, 화악산, 오대산 등 중부지방의 고산지대에서 자생지 환경의 분비레드벨벳 토토는 자주 감상했지만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감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2024년 가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에도 분명히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봤을 테지만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제대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간신히 구과가 거꾸로 매달리는 가문비레드벨벳 토토 한 그루를 식별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지난 지난 4월 초순 제주도 여행에서는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안고 몇 분 선배님들과 한라산 영실코스를 올랐던 것이다.
영실 코스 입구는 울창한 소레드벨벳 토토 숲이었다. 이 소레드벨벳 토토 숲 속에 주목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다. 과연 고도가 높아지면서 자생지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만날 수 있어서, 잎이며 가지며, 수형, 군락 모습을 감상하면서 사진으로 담았다. 특히 1400~1500m 고지에 올랐을 때에는 사스래레드벨벳 토토와 함께 자라고 있는 구상레드벨벳 토토 군락이 일품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서는 우천 관계로 제대로 감상하지도, 사진으로 찍지도 못한 아쉬움을 영실코스를 오르면서 완전히 털어내었던 것이다. 이 영실코스 트래킹에서는 구상레드벨벳 토토 뿐 아니라 시로미와 눈향레드벨벳 토토도 자생지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하루에 3종의 레드벨벳 토토를 자생지 환경에서 처음 감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렇게 한국 고유종으로 유명한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1920년 윌슨(Wilson)이 하버드대 아놀드수목원이 발간하는 연구논문지 <아놀드수목원 회보 (Journal of the Arnold Arboretum)에 “한국의 새로운 침엽수 4종 (FOUR NEW CONIFERS FROM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학계에 처음 보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식물애호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 진선생이 연초에 이 논문을 알려주셔서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이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영국의 식물학자인 어니스트 헨리 윌슨(Ernest Henry Wilson)이 일제강점기인 1917년 제주도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직접 채집 활동을 한 후, Thusa koraiensis Nakai (눈측백 or 찝빵레드벨벳 토토), Abies nephrolepis (분비레드벨벳 토토), Larix dahurica (잎갈레드벨벳 토토)와 함께 Abies koreana E.H.Wilson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학계에 보고했던 것이다. 특히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윌슨 이전에는 제주도에서 채집했던 동종의 레드벨벳 토토를 Abies nephrolepis (분비레드벨벳 토토)로 동정했던 것을 윌슨이 한국 고유종 Abies koreana (구상레드벨벳 토토)로 확정했다. 아놀드수목원 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관련 부분을 다소 길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Abies koreana (구상레드벨벳 토토) - 이 새로운 전레드벨벳 토토류(Fir)는 한국 식물상에 매우 흥미로운 추가종으로, 화산섬인 제주도(Quelpaert)와 한반도 남부의 지리산 일대에만 제한적으로 분포한다. 이 레드벨벳 토토의 특징은 원뿔형 수형과 깊게 갈라진 거친 레드벨벳 토토껍질, 돌출된 포(bracts)를 가진 구과이다. 이 종은 근연종인 Abies nephrolepis Maxim.(분비레드벨벳 토토), A. sachalinensis Mast., A. Veitchii Lindl.와 대부분의 특징을 함께하고 있다. 첫 번째 분비레드벨벳 토토는 비슷하지만 레드벨벳 토토껍질이 덜 거칠고 중앙에 수지관이 있는 잎이 더 길고, 구과의 포가 (안으로) 말려 있다는 점이 다르다. Abies sachalinensis는 돌출되고 뒤로 젖혀진 포를 가진 구과를 가지지만, 연한 자주색이며, 잎에는 중앙 수지관이 있고, 레드벨벳 토토껍질은 완전히 매끈하며 뚜렷한 수지 돌기가 있다. Abies Veitchii는 비슷한 수형과 측면에 수지관이 있는 잎을 가지지만, 이 종은 레드벨벳 토토껍질이 항상 매끈하고 구과의 포가 종린보다 짧거나 아주 조금 더 길다. 이 새로운 종은 아주 확실하게 구별되며, 매우 거친 레드벨벳 토토껍질은 이 그룹의 다른 종들 중에서도 특이한 점이다.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고산 수종으로, 한라산에서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도에서 많이 분포하며, 순림을 이루거나 사스래레드벨벳 토토와 섞여 자라지만, 레드벨벳 토토가 크지는 않다. 본토의 지리산에서는 해발 1,200m 이상부터 정상(1,850m)까지 흔하게 분포하며, 낙엽활엽수와 가문비레드벨벳 토토와 함께 자라고, 이곳에서는 레드벨벳 토토가 최대로 성장한다. 어릴 때부터 중령기까지 이 레드벨벳 토토는, 가지가 무성하고 아래쪽 가지가 땅에 닿을 정도로 늘어지는 멋진 레드벨벳 토토이다. 수형은 다소 넓은 원뿔 모양이며, 반짝이는 녹색 잎과 잎 뒷면의 흰색이 이 레드벨벳 토토의 특징에 더해진다. 비교적 구과를 잘 맺지만, 분비레드벨벳 토토보다는 적게 맺는다. 오래된 레드벨벳 토토는 앙상하고 매력적이지 않다. 나카이 박사는 이 종을 분비레드벨벳 토토와 혼동했으나, 함께 한라산을 탐사할 때 내가 차이점을 지적했으며, 그 두 레드벨벳 토토가 확실히 다른 종임을 그도 기꺼이 동의했다.
포리 신부(Père U. Faurie)가 이 전레드벨벳 토토 류를 처음 발견하였고, 그의 표본은 타케 신부(Père Taquet)의 표본과 함께 몇 년 동안 이 식물표본관에 이름 없이 보관되어 있었다. 『Plantae Wilsonianae』를 위해 중국산 전레드벨벳 토토 류들을, 『일본의 침엽수와 주목 류 (Conifers and Taxads of Japan)』을 위해 일본산 전레드벨벳 토토 류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제주도 레드벨벳 토토가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고 살아 있는 레드벨벳 토토를 연구하기 위해 1917년에 그 섬을 방문했다. 나는 이 전레드벨벳 토토 류의 종자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아널드수목원으로 보냈으며, 현재 그곳에서 이 레드벨벳 토토들이 자라고 있다.”*
실제로 내가 영실코스에서 만난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사스래레드벨벳 토토와 섞여 자라고 있었고,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상록 교목이며 높이 18m, 지름 1m 정도로 자란다”고 했지만, 사실 영실코스에서 만난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한결같이 키가 대략 5m 정도 이내였던 것이다. 아마도 거센 바람 때문에 크게 자라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윌슨 박사의 논문에서 “한라산에서는 해발 1,000m 이상의 고도에서 많이 분포하며, 순림을 이루거나 사스래레드벨벳 토토와 섞여 자라지만, 레드벨벳 토토가 크지는 않다.”라고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Wilson이 Abies koreana를 학계에 보고한 후,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은 이 학명에 ‘구상레드벨벳 토토(Gusang-namu)’라는 우리말 이름을 부여했다. 정태현의 <조선삼림식물도설에서는 ‘구상레드벨벳 토토’는 제주 방언을 채록한 것이라고 하며, 한자명으로 ‘제주백회濟州白檜’라고 했다.
겨울철 푸르른 구상레드벨벳 토토가 제주도에서 ‘고채목’으로 불리는 흰 사스래레드벨벳 토토와 함께 자라는 한라산 풍경을 떠올리며, 구상레드벨벳 토토를 읊은 시를 찾아본다. 문충선 시인의 ‘구상레드벨벳 토토’가 마음에 와 닿는다.**
1천5백여 종 넘게 풋레드벨벳 토토들 사는 할락산
중허리에 무리 지어 사느니 언제나 파랗게
고고한 것은 인간들 만드는
시시한 절개 흉내냄 아니다
아무 데나 뿌리 내려 살지 않는다 욕심 있는 인간들 모래 파내다
제 집 정원에 심어 물주고 살기 강요하지만
그런 사람과는 살지 않는다
차라리 노랗게 죽어버린다
…
구상레드벨벳 토토 베어 테우 만들고 제주바다
험한 바다 물결 재우며
…
여름날 할락산에서 하룻밤 지샌 적 있느냐
하루가 열리는 장엄한 새벽 보았느냐
부서지는 햇살들 구상레드벨벳 토토 열매에 걸려 내지르는 보랏빛 소리 들었느냐
…
<끝
*E. H. Wilson, FOUR NEW CONIFERS FROM KOREA, Journal of the Arnold Arboretum, January 1920, Vol.1, No.3, pp.186~190 :
Abies koreana,
KOREA: Quelpaert Island, Hallai-san, alt. 1000-1900 meters, October 31, Novem- ber 5, 1917, E. H. Wilson (Nos. 9486, type, 9486a); same locality, May, June, July, August, 1907, U. Faurei (Nos. 1517, 1518, 1519, 1520, 1522); same locality, June, July, 1909, Émile Taquet (Nos. 3263, 3265, 3266); prov. South Keisho, Chiri-san, alt. 1000-1840 meters, November 16, 1917, E. H. Wilson (No. 9602).
This new Fir is a most interesting addition to the flora of Korea where it is confined to the volcanic island of Quelpaert and to the Chiri-san range in the south of the peninsula. It is characterized by its pyramidal habit, its deeply fissured rough bark and by its cones with exserted bracts. It combines most of the characters of the three related species Abies nephrolepis Maxim., A. sachalinensis Mast. and A. Veitchii Lindl. The first has similar but less rough bark, longer leaves with median resin-ducts and the bracts of the cone are included; Abies sachalinensis has a cone with exserted reflexed bracts but is greenish purple in color; the leaves have median resin-ducts and the bark is perfectly smooth with prominent resin pustules; Abies Veitchii has a similar habit and leaves with lateral resin-ducts, but in this species the bark is always smooth and the bracts of the cone-scales are shorter or only slightly longer than the scales. The new species is certainly very distinct and its very rough bark is unique among the species of its group.
Abies koreana Wils. is an alpine species and on Hallai-san is abundant above altitudes of 1000 meters, either forming pure woods or mixed with Betula Ermani Cham., but the trees are not large. On Chiri-san, on the mainland, it is common above 1200 meters to the summit (1850 meters), growing with mixed deciduous leafed trees and Picea jezoënsis Carr., and there the trees reach their maximum development. From youth to middle age it is a handsome tree, densely branched and with its lower branches sweeping the ground; the habit is rather broadly pyramidal, and the lus- trous green leaves with their white undersurfaces add character to the tree. It produces cones rather freely but less so than A. nephrolepis Maxim. Old trees are scrawny and not attractive. Dr. T. Nakai confused this species with A. nephrolepis Maxim., but when traveling together on Hallai-san I pointed out differences and he readily concurred that the two were quite distinct species.
Père U. Faurie was the first to discover this Fir, and his specimens together with those of Père Taquet have been for some years in this herbarium unnamed. When studying the Chinese Firs for Plantae Wilsonianae and those of Japan for my Conifers and Taxads of Japan I noted the difference of the Quelpaert plant and in 1917 visited the island to study the living tree. I was able to secure a supply of seeds of this Fir which were sent to the Arnold Arboretum where plants are now growing. (이 학술 문장의 번역은 AI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
** 문충성 시인의 ‘구상레드벨벳 토토’ 일부는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한라산 총서 VII – 한라산이야기에서 인용했다. (문충성 시인은 시집이 여러권인데,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댓글로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상레드벨벳 토토 군락 (2025.4.5 제주도 한라산 영실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