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설치한 블라인드 사이로 아침 햇살이 채 스며들기도 전, 케이카지노는 침대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오히려 각성 상태가 된 것인지 깊게 잠이 들지 못해 밤새 뒤척거린 상태다. 옆으로 누운 채 반쯤 감긴 눈으로 휴대폰을 들어 지금이 몇 시인지 확인했다. 영상을 업로드한 지 10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리기엔 그의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도, 인터넷으로 좋아하는 만화를 보는 것도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곧바로 휴대폰에 미리 깔아 둔 유튜브 스튜디오 앱을 터치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어제 올린 영상의 조회수와 시청 시간이 표시된 화면이 두 눈을 덮쳤다. 0과 0. 애써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해도 밀려드는 실망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그는 휴대폰을 머리맡 쪽에 던지듯 두고서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던져진 휴대폰은 아무도 확인하진 않지만 어디에 버튼이 눌러진 건지 자신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했다. 컴컴한 방 안에 유일하게 빛이 훅 들어온다. 오전 5시 09분. 정확히 10시간 31분 만에 그는 다시 실패자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영수는 겨우 일어나 책과 노트북을 챙겨 자주 가던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불합격된 지 이제 4일째니 마지막 방문으로부터 오늘까지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며칠 간 아예 공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서 그랬으리라. 오후 케이카지노이라그런지 빈자리가많진 않았지만 답답할 만큼 사람이 많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행히 평소 앉던 자리는 비어 있어 짐을 내려놓은 뒤 케이카지노를 한 잔 마시기 위해 휴게실로 걸어갔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서는 동시에 시큼한 땀냄새 같은 것이 코 안을 사정없이 휘젓는다. 오랜만에 와서 잊고 있던 냄새다. 스터디카페든 도서관이든 어디를 가든 간에 그런 냄새를 풍기는 인간이 한 둘은 꼭 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땐 한동안 이 냄새에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젠 자연스럽게 커피머신 앞으로 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는다. 냄새를 제거하기보단 다른 향으로 대체하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초가 지나자 향긋한 커피 향이 휴게실 안에 가득 퍼지자 시큼한 냄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다 내려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들이키자 향을 맡았을 때보다도 기분이 더욱 좋다.최근 유튜브를 하느라 생활 패턴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탓인지, 어찌어찌 오긴 했지만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집에 혼자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는 피곤해도 밖으로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재차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고 난 뒤 커피 향을 한 번 더 맡고는 서둘러 자리로 돌아간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신문을 읽고 있던 중년 남자까지 고개를 돌리는 시간은 다르지만 눈동자의 방향은 일제히 한 곳을 가리킨다. 그 끝엔 엎드린 채 드르렁거리며 코를 고는 사람이 있다. 여기저기서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만아무도 자신이 불편한 역할을 맡으려 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호기심과 설렘이 공존하는 눈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목적지가 화장실이나 휴게실인 걸 보며 실망한 듯 다시 몸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누군가 일어나지만 사람들은 앞서 일어난 일들 탓에 더 이상 그를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천천히 걸어가 그가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 앞에 다다르자 그제야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이들까지 그 상황을 유심히 지켜본다. 서 있는 그의 시선엔 엎드린 남자의 등과 커피가 있었던 종이컵 여러 개와 책상 한쪽 구석에 쌓인 책들이 보인다.
"흠, 흠." 두 번 헛기침을 하더니 남자는 검지손가락으로 엎드린 사람의 등을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린다. 여전히 미동도 없다. 다시 한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엎드린 남자에게 부푼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이봐요, 학생."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등이 움찔한다. 반응이 보이자 남자는 이번엔 말하지 않고 세 번째로 엎드린 남자의 등을 두드린다. 그러자 엎드린 남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마침내 자신을 깨운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엎드린 남자는 자신보다 최소 몇 십 년은 더 나이를 먹은 듯한 남자를, 그는 자신의 아들 또래인 남자를 본다.
"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이제 막 잠에서 깬 영수는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중년의 아저씨, 주변에서 이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는 곧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한다.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알 수 없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빨리 짐을 싸서 나가려는데 갑자기 등 쪽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깜짝 놀란 그가 고개를 들자 자신을 깨운 아저씨가 자신의 등에 손을 대고 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집에 가서 좀 쉬어요."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일어난 그는 커다랗고 투박한 손바닥으로 영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책상에 놓은 신문을 마저 읽는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여기저기서 그를 향한 시선들도 다시 거둬진다.
민망함에 서둘러 짐을 싸서 나온 영수는 그제야 자신이 스터디카페에 온 지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안다. 2시간 중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쉰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자러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를 골면서 잠들었다니. 아까 잠에서 깬 자신에게 향한 시선들을 떠올리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다. 얼마나 자신을 한심하게 보았을까! 그도 종종 스터디카페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공부하러 와서 저렇게 잘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와?' 어쩌면 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곧이어 자신을 깨운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던 특유의 스킨과 로션 냄새. 수염이 거뭇거뭇 나 있고 하얗기보단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피부색. 짧은 스포츠 헤어에 구레나룻에 보이던 몇 가닥의 흰머리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아저씨의 눈을 보았을 때였다. 피곤하니 집에 가서 쉬라는 말을 할 때 그는 아저씨의 눈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자신에 대한 '걱정'.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던 눈. 피해 끼치지 말고 꺼지라는 듯한 뉘앙스로 그가 말을 했다면 영수는 몇 시간이고 앉아있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날 밤 영수는 10시 전에 잠에 든 뒤 새벽에 단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