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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라 룰 온도 Apr 02. 2025

#09. 바카라 룰 동거

[목련나무 아이, 열두 달 나무 아이_최숙희_2017]

4월에 태어난 너는 목련나무 아이. 봄밤을 환히 밝히는 등불 같은 아이



AM 6:30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지금 일어나면 오늘 운수대통~ 벌떡 일어납니다!


약속하면 빵구 한번 안 내는 성실한 알람양이 어김없이 울린다.

알람양의 지시대로 벌떡~ 일어나려는데, 옆자리의 남편이 잠꼬대처럼 읊는다.

"더 자. 당신 출근 안 하잖아."

맞다. 나 어제 그만뒀지. 맞다. 출근 안 해도 되네.


AM 6:45 다시 알람양이 외친다.

-지금 일어나면 운수대통 기회, 한번 더!


시간만 입력하면 될걸,

알람이름에 뭔 구호를 이리도 박아놨는지. 징그럽다.

하긴 그때는 이게 '사는 재미'라고 낄낄거리며 입력을 했었지.

전주부터 짜증 게이지가 올라가는 알람소리를 중화시켜 주는 진정제 처방이라며.


침대에 누워 알람 리스트를 열어본다.

AM 7:00

-따님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깨웁니다

AM 7:30

-따님이 그대로면 샤우팅을 허락합니다

AM 7:40

-따님 인생 참견 말고 당신 인생 찾아 운동하러 가세요


나는 아침마다 456억은커녕, 456원도 안 생기는 오징어게임을 치렀다.

나 홀로 1인 1각으로 종종거리며 10분 단위의 미션을 완수했다.

해결을 못하면 바로 빵-바카라 룰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선수처럼.





처음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 아침을 맞이바카라 룰.


내 기억이 허락하는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아침은 늘 부산스러웠다.

의무교육 시절에는 빠른 비트의 엄마 성화에 박자를 맞춰 펄떡펄떡 뛰며 쫓겼고,

대학생일 때는 반수면 상태로 화장실에서 앉아서

머리를 감을 것인가, 안 감고 조금 더 잘 것인가~ 시간과의 갈등으로 쫓겼고,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택시를 타고 앉아서 불안해할 것인가, 버스를 타고 서서 불안해할 것인가~ 돈과의 갈등으로 쫓겼다.


결혼을 바카라 룰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면서, 그 부산함은 두 배가 되었다.

머리를 감을 것인가, 참을 것인가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으나,

내 머리를 감는 대신- 아이 머리를 땋느라 허둥댔고,

방탈출을 하듯 이방 저 방 문을 열고, 서랍을 열고 뒤지는 일도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으나,

내 옷을 고르는 대신- 아이의 10개 발꼬락을 타이즈에 넣어야 하는 씨름으로 낑낑댔다.


나의 아침은 발이 제일 바빴다.

초속 1.6m의 걸음걸이로 세계에서 빠르기로 소문난 오사카 사람들처럼 종종댔으며

운전대를 잡으면 브레이크와 액셀이 8분의 12박자 자진모리장단으로 쿵덕쿵덕 댔다.


언제쯤이면, 당연하게 머리를 감고 말리는 아침이 올까.

아이가 크면, 허둥대지 않고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을 매칭하는 아침이 올까.

사장이 되면, 겔포스가 아닌 브렉퍼스트로 달걀노른자를 터트리는 아침이 올까.

오랫동안 희망했던 그 아침은, 출근하는 내내 한 번도 오지 않았고,

결국 내가 먼저 출근을 끊었다.

오랜 시간 희망고문을 당한 대가로 소심한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나, 오늘 머리를 감지 않겠어.'


가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인네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여는 기생충처럼 방에서 어슬렁 나온다.

혹시 누군가 남아있지는 않나 하는 염탐으로 아무도 없는 집안을 둘러본다.

내 집이고, 늘 살고 있는 집이고, 어제도 그제도 뒹굴고 맨몸을 씻었던 집인데,

어.색.하.다.


집구경을 양해받은 세입자처럼 조심스럽게 집안을 서성인다.

장식장을 열어보고 , 벽을 만져보며 대리석이 진짜일까 가짜일까를 점쳐본다.

싱크대 문을 열어보고, 절수기를 눌러 수압을 체크하듯 물줄기를 확인한다.


이불과 침대 커버를 확- 벗기고 빨래를 해볼까?

옷장 정리를 해볼까?

안 입는 옷들이 꽤 있는데 팔아볼까? 그럼 당근앱부터 깔아야겠네.

주방이 나도~ 나도~ 부른다. 그릇 정리부터 해볼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이 중증 질환은 발병을 시작바카라 룰.

바카라 룰함이 옆에서 속삭인다.

'아니야~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일단 좀 앉으시라고.'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기로 바카라 룰.

계획대로라면 벌러덩 자빠져 다리 한쪽을 등받이 걸치고 덜덜덜 퍼질 텐데,

예의 갖춘 세입자는 소파 끝자락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손님처럼 앉는다.

금방이라도 요이땅~하면 바로 튈 듯, 어정쩡한 자세로. 그렇게 한참 동안.



PM 3:00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비타민 충전 타임~ 파이팅



알람양이 오후 미션을 안내방송바카라 룰.

출근을 바카라 룰 상담과 안내, 다양한 참견으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나를 까먹기 일쑤다.

비타민 몇 알 넘기는 것도 미션이었다. 먹고살기 위한.


비타민을 삼키며 책상에 앉아 플래너를 열어본다.

메모와 낙서를 좋아바카라 룰, 정리와 체크가 체질인 나의 플래너는 늘 빼곡했다.

매월 달이 바뀌면 이번 달 생일자를 옮겨놓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달에 해야 할 대형 계획들을 적어놓는다.

데일리 박스에는 그날 그날 해야 할 소형 계획들이 차렷~ 경롓~ 줄을 서 있다.


출근을 바카라 룰 커피가 준비되면 플래너를 펼치는 일이 루틴이었다.

미리 예약되어 있는 계획들을 복기바카라 룰, 오늘 일을 채워 넣는다.

특별한 명령이 없는 날은 '밥값을 못하는 하루'같아 뭐라도 쑤셔 넣었다.

건강보험공단 문의하기. 딸 학원 연락하기. 남편 운동화 주문. 샴푸 구입하기.

빼곡하게 칸칸이 채운 오늘을 보면 숙제를 다 한 듯, 배가 불렀다.


플래너를 휘리릭 넘기다가 멈춘다.

버킷리스트 (feat. 언젠가 일을 그만둔다면)


1.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잠자기.

허리가 아파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까지 누워있어야지.

삼시 세 끼를 전폐바카라 룰 1박 2일 동안 자다가 자연인이 될 때까지 격하게 늘어져볼 테다.

2. 소울메이트 경애 만나기.

내가 일을 그만두면 가장 놀라고 가장 반가워할 친구.

오랜 시간 함께 방송작가로 활동한 친구는 어느 날 프로그램 하차를 선언했다.

대학원으로 이동을 한 친구는 그 어렵다는 1급 심리상담가로 변신,

대학교와 기관에서 야무지게 경력을 채우고, <바카라 룰이 바카라 룰대로 안 될 때라는

내 바카라 룰과 같은 책을 출간을 했다.

마포에서 개업 인테리어 중인데 첫 번째 방문록을 내가 쓰면 좋겠다.


3. 대학 친구 혜경이한테 전화하기.

태어나서 한 번도 자기 손으로 10원도 안 벌어봤다며 푸념을 하는 친구.

억울인지 자랑인지 그 소리를 못 들은 지도 10년이 넘었네.

전교권 혜경이 1등 아들 덕분에 삼총사로 몰려다녔던 대학친구 모임은

질투가 기반인 서운함과 오해가 반복되다가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10원도 안 벌고 잘 사는 너의 인생이 최고다.라는 얘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그 외에도

밤새 맥주 마시며 넷플릭스 보기. 다음날 해장라면에 반주 하기.

오발탄에서 멈춘 한국문학전집 도장 깨고 세계문학전집 정주행하기.


이건 버킷리스트인가 그냥 바스켓인가.

유럽 일주,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단어라도 추가하면 부티가 좀 나려나.

펜케이스에서 볼펜을 꺼내려는데,

바카라 룰함이 곁에서 속삭인다.

'지금부터 생각금지령을 내립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기로 바카라 룰.

창가에 매달린 비둘기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오후 내내 달리는 차를 구경바카라 룰 막히는 차를 구경했다.



PM 8:00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오늘 일정 마감합니다.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즐퇴~~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줌바댄스를 추다가 거울에서 나를 마주한 그날,

내가 나를 안쓰럽다고 생각한 그때,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었던 그 순간,

나에게서 뭔가가 툭- 떨어져 튀어나온 것을 느꼈다.

오랜 염증으로 곪을 대로 곪은 맹장이 이젠 할 일 다 했다며- 메마른 덩어리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내 안에서 내 바카라 룰이 분리되어 나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 같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내가 가는 길이기에 따라와 주는 걸 당연하게 요구했고,

내가 힘들면 조금만 더 힘을 내달라고 당연하게 들이댔다.

옆에서, 곁에서 속삭이는 조언을 당연하게 무시했다.


나는,

내 바카라 룰이 식어가도 차가운 줄 눈치채지 못했다.

더 냉정해져야 살아남는 거라고 아이스버킷을 해댔다.

내 바카라 룰이 화상을 입어도 뜨거운 줄 느끼지 못했다.

더 열심히 달리자고 핫팩을 들이댔다.


칭찬보다는 반성이 많았던 걸 사과바카라 룰.

당근보다는 채찍이 많았던 걸, 사과바카라 룰.

비우자며 빼곡히 채웠던 걸, 사과바카라 룰.

내 안에 있어, 내 거라고,

무심바카라 룰 무례하게 대했던 걸, 사과바카라 룰.


나는,

나에게서 분리되어 마주하게 된 '바카라 룰'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더 이상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대한민국 강아지 이름 1위가 코코, 2위가 보리, 3위 콩이, 5위가 두부란다.

벤치마킹은 포기하기로 바카라 룰.


찾.았.다.
[온도]

내 바카라 룰 온도를 정상으로 맞추고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것.

내 바카라 룰 건강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한 버킷리스트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부터 당연한 건 없기로 바카라 룰.

어떤 경우든 양해를 구바카라 룰 의논을 우선하기로 한다.

온도씨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



어마무시했던 알람을 삭제하고,

빼곡했던 플래너를 백지화바카라 룰,

버킷리스트를 제로로 세팅바카라 룰,

넘치도록 무거운 바카라 룰 바스켓을 비우기로 한다.


단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남기고, 아무것도 안 하기로 바카라 룰.

나와 온도씨가 신나는 일.


'하루에 좋아하는 것, 하나만 하기'



그렇게 나는

나와의 바카라 룰 동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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